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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한국에 등장한 백자청화 보상당초문 잔받침

1994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309만 달러, 당시 시세로 약 40억 원의 기록적인 가격으로 낙찰됐던 백자 접시. 15세기 광주 일대의 관요(도마리, 우산리 등)에서 제작돤 백자청화 보상화당초문 반으로, 지난 해 서울 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에 개인 소장품으로 화려하게 모습을 선보였다.


<백자청화 보상당초문 잔받침> 조선, 15세기, 높이 2.2cm, 입지름 21.8cm, 개인


중심 저면에 여섯 송이의 상상의 꽃 보상화를 그리고 그 주변을 덩굴 무늬-당초문으로 가득 채웠다.(페르시아 팔메트 문양에서 기원하는 보상화문寶相華文은 우리나라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전돌, 와당, 탑비, 고려시대 향완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청화백자를 제작하기 시작하는 시점인 이 시기, 명나라 홍무 연간(1368-98) 청화에 많이 사용됐던 보상화 문양이 유입되어 크게 유행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에는 이러한 문양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접시의 입술 부분은 파도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넓고 편평한 바닥, 살짝 꺾여 면을 이룬 입술부, 납작한 몸체 등 15세기 잔받침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뒷면에는 티벳 불교의 상징인 칠진보가 그려져 있다. 세종(재위 1418-1450) 실록 <오례의>에 금잔과 함께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궁중 의례용 주기의 잔탁(잔받침)임을 알 수 있다.

거의 비슷해서 바로 비교하기 전에는 구분하기 어려운 한 점의 유물이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있다. 위의 접시와 한 쌍으로 만들어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품 앞면과 뒷면
(스미토모住友그룹 기증/ 아타카安宅 컬렉션)



일본 네즈미술관에도 기형과 문양의 구성이 유사한 접시가 한 점 더 있다. 
업데이트 2024.05.0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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