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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홍준의 미술을 보는 눈 『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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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안목』, 눌와, 2017.01


유홍준의 미술을 보는 눈 시리즈의 마지막은 『안목』이라는 제목으로 귀결되었다. 경향신문에 연재된 ‘안목’을 주제로 한 부분이 1장과 2장, 2016년 한 해 대가들의 회고전과 기획전 서문이나 리뷰를 고쳐서 실은 부분이 3장과 4장에 병렬적으로 더해져 있다. 책이 기승전결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이 책을 다 읽을 무렵 우리 미술을 보는 ‘안목’이 좀 높아질 수 있지 않았을까도 생각되지만, 역시 으뜸가는 이야기꾼이신지라 어떻게 미술품을 볼 것인가에 대한 것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이해시키는 데는 무리가 없다.

먼저 귀양살이 이후의 추사의 글씨에 마침내 스스로 일법을 이룬 것을 지적한 박규수,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궁궐 건축의 미를 찾은 김부식과 정도전, 청죽화사를 통해 조선시대 역대 화가들의 예술적 성과를 낱낱이 서술한 남태응, 당대의 권위자이자 미술평론가였던 강세황, 서화사를 집대성한 오세창, 한국미를 정립한 최순우 등 우리 옛 미술의 가치를 발견하고 더 발전할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미술에 대한 안목이라 하면 일단 그 시대의 미술비평에 확연히 나타날 텐데,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미술비평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18세기 문예부흥기인 영정조 시대로 이르면 화론이 조금씩 나오게 되는데, 남태응의 뛰어난 미술평론도 이때 등장한다. 첫번째 저작은 <청죽화사>로, 단순하게 본 것을 적거나 의례적인 찬사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조선 역대 명화가들의 예술적 성과를 낱낱이 평가하고 있는 드물고 귀한 케이스이다. 남태응이야말로 시대에 앞선 예리하고 높은 비평적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청죽화사>에 보면 앞 시기의 대표적인 화가 김명국, 이징, 윤두서 세 명의 작품세계를 아주 풍부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비평적으로 증언했다. 안목도 높지만 문장도 훌륭하다. 그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문장가에 삼품이 있는데, 신품神品, 법품法品, 묘품妙品이 그것이다. 이것을 화가에 비유해서 말한다면 김명국은 신품에 가깝고, 이징은 법품에 가깝고, 윤두서는 묘품에 가깝다.
이를 학문에 비유하자면 김명국은 태어나면서 아는 생이지지生而知之이고, 윤두서는 배워서 아는 학이지지學而知之, 이징은 노력해서 아는 곤이지지困而知之이다. 그러나 이루어지면 매한가지이다.
또 이것을 서예가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김명국은 봉래 양사언 류이고, 이징은 석봉 한호 류이고, 윤두서는 안평대군 이용 류에 속한다.
김명국의 폐단은 거친 데 있고, 이징의 폐단은 속된 데 있으며, 윤두서의 폐단은 작음에 있다. 작은 것은 크게 할 수 있고, 거친 것은 정밀하게 할 수 있으나, 속된 것은 고치기 힘들다.
김명국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며, 윤두서는 배울 수 있으나 이루기 힘들고, 이징은 배울 수 있고 또한 가능하다.
...
김명국은 그 재주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고, 그 기술을 끝까지 구사하지 못했다. 따라서 비록 신품이라도 거친 자취를 가리지 못했다. 윤두서는 그 재주를 극진히 다했고, 그 기술을 끝까지 다하였다. 따라서 묘妙하기는 하나 난숙함이 조금 모자랐다. 이징은 이미 재주를 극진히 다했고, 그 기술도 극진히 했으며 또 난숙했다. 그러나 법도의 밖에서 논할 그 무엇이 없었다. 
...
김명국은 그림의 귀신이다. 그 화법은 앞 시대 사람의 자취를 밟으며 따라간 것이 아니라 미친 듯이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주어진 법도 밖으로 뛰쳐나갔으니, 포치와 화법 어느 것 하나 천기 아님이 없었다.
 


김명국 <은사도> 종이에 수묵, 60.6x39.1cm,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는 일찍이 서화 감상에 "금강안金剛眼과 혹리수酷吏手"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금강역사 같은 무서운 눈과 혹독한 세리의 손끝 같은 치밀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세상 사람들은 추사를 '금강안'이라고 불렀다. 추사는 다른 사람의 작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에도 금강안을 들이대었고, 제자들에게도 세심히 가르쳐주었다. 많은 학예인들이 그러한 추사를 따르면서 일세를 풍미하는 예술사조를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완당바람'이다. 1849년 추사 나이 64세에 제주 귀양살이에서 돌아와 용산에 머무를 때, 젊은 서화가들이 그에게 지도를 받는 자리를 마련했다. 6월20일부터 7월14일까지 글씨와 그림으로 19세기 후반을 대표하던 서화가 14명이 추사 앞에 작품을 내밀고 품평을 받았다. 이 때 추사가 각 작품에 내린 논평을 고람 전기가 일일이 받아 써 두었던 기록이 <예림갑을록>이다. 고람 전기의 글씨에 대한 평의 일부를 보면 얼마나 자상한 가르침이었는지 알 수 있다.

대련 글씨 중 오른쪽 한 줄은 아주 뛰어나고 아름다워 과연 법도에 맞는다고 일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왼쪽 한 줄은 아직 정리되지 않아 표준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것은 행을 나누는 데 주의를 하지 않아서 이렇게 비뚤어지게 된 것이다. '자自' 자 위의 삐침이 너무 제멋대로여서 전혀 먹을 아끼는 뜻이 없고, 여섯 번째, 일곱 번째 글자는 아래위에 갈고리처럼 돌려 꺾은 것이 도무지 제자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오른쪽 한 줄을 잘 썼기 때문에 최고의 상등으로 뽑아놓는 것이다.


<예림갑을록> 1849년, 남농미술문화재단


이러한 예들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뿌듯한 일일 반면, 조금 더 이렇게 안목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면, 그 안목을 다양한 비평 활동을 통해 공유하셨던 분들이 많았다면 우리 미술이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도 만든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청자가 가진 천하제일의 비색을 칭송했지만, 청자들이 무수히 일본으로 빠져나가도 우리나라의 것임을 알아보지 못한 고종의 말은 허망하기까지 하다.


김광국의 <석농화원>에 포함된 네덜란드 동판화. 페테르 솅크 <술타니에 풍경> 에칭, 그림 22.0x26.9cm, 청관재 소장



1938년 보화각 개관일. 왼쪽부터 이상범, 박종화, 고희동, 안종원, 오세창, 전형필, 박종목, 노수현.


훌륭한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수장가라면 반드시 필요한 덕목도 미술품을 보는 눈이다. 조선 초의 대 컬렉터였던 안평대군 이용, 수집한 서화로 <석농화원> 이라는 화첩을 만든 석농 김광국의 예와 송은 이병직, 수정 박병래, 소전 손재형, 간송 전형필 등 근대의 미술품 수장가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들로 우리 근대화기의 아픈 역사도 돌아본다. 

"...그런 점에서 박병래 선생은 가장 존경받을 수장가였다. 우리 도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수집을 시작하여 평생 모은 애장품을, 본인의 말대로 사랑하는 딸자식 시집보내듯 모두 박물관에 기증하고 떠났다. 그러나 모두가 그와 같을 수만은 없었다.... 송은 이병직은 미술 애호가로 평생을 살다가 마지막에는 모든 수장품을 경매에 부쳐 그 돈을 육영사업에 기부하고 떠났다. 항문외과 의사였던 박창훈은 1940년과 1941년 경성미술구락부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박창훈 박사 소장품 경매회'를 열어 그 뛰어난 서화 컬렉션을 처분하고 이후 한국 전쟁 중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조선미술관의 오봉빈은 그의 행태를 아쉬워하면서 비판하였지만 그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었다. 장택상은 정계에 투신하는 바람에 그렇게 뛰어난 컬렉션을 매각하고 그 돈을 정치하는 데 다 써버렸다....치과의사 함석태는 일제강점기 말인 1944년 10월 일제의 소개령에 따라 자신의 소장품을 세 대의 차에 싣고 자신의 고향인 평안북도 영변으로 귀향한 이후 소식을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소장품으로 알려진 것이 지금 북한에 일부 남아 있다..."

감상이란 것은 개인적인 차원일 뿐이라지만,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 그러한 작품을 골라낼 수 있다는 것은 본인 뿐 아니라 시대를 위해 큰 복이 된다. 안목있는 사람이 없다면 반대로 큰 불행인 것이고. 좋은 작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창작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세상에 나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면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까지도 무너져버린다. 미술시장이 투기로 혼란스러워지고 좋은 작품들이 세상에 선보일 기회가 사라지더라도 높은 안목을 지닌 사람들이 안개를 거두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 그나마 조금씩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범인凡人도 아름답고 좋은 것을 보면 당연히 아름답고 좋다는 것을 느낀다. 다만 안목 있는 사람이 그 앞에 세워 보게 해 주지 않으면 다른 것을 보기 바쁜 우리들은 그냥 지나치고 만다. 최순우, 김환기 선생 같은 분들이 달항아리를 예찬해 주지 않았다면 보통 사람들은 달항아리를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지 않았을까. 책의 후반부, 2016년에 있었던 변월룡, 이중섭, 박수근, 오윤, 신영복 선생의 회고전에 대한 글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귀중한 것들이 눈 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길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17.07.28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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