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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자의 삶, 그림으로 배우다] - 인물화 다가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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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삶, 그림으로 배우다
조인수 지음 | 다섯수레 | 2013. 5

책장을 보다보면 언제 어떻게 이 자리에 꽂히게 됐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책들이 있다. 아마도 책 위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데에는 나의 게으름, 그리고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내용이 한 몫 했을 것이다. 특히나 전문서적을 읽다보면 마치 갈래 길이 많은 낮선 장소에서 길을 찾는 것만큼이나 혼란스럽고 어렵게 느껴진다. 앞의 내용을 다시 보고나서야 한 줄을 읽어나갈 수 있기도 한데 저자가 모든 독자의 수준을 동시에 맞춰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쉬울수록 무조건 좋고 전문서일수록 더욱더 그러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특히 옛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청소년을 위해 만들어진 책부터 정독하기를 추천해주고 싶다. 가볍게 읽히지만 그에 담긴 지식과 내용의 질은 결코 가볍지 않은 책들이 출판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 책 또한 포함된다. 저자는 중학생이 된 딸을 독자로 생각하며 집필했다고 하는데, 볼 기회가 적은 인물화를 쉽고 세세하게 설명하여 청소년 뿐 만아니라 전 연령층의 독자를 아우른다.

인물화는 산수화보다 먼저 발달하였는데 신화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나 교훈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윤리를 중시하는 삶의 가치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인물화는 그 내용에 따라 인물을 그린 초상화, 상류층 여인을 그린 사녀도(仕女圖), 일상의 모습을 묘사한 풍속인물화, 도교나 불교의 종교 인물을 그린 도석인물화,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고사인물화로 나뉘는데 칠기, 도자기, 직물 등 각종 공예품을 장식할 때에도 그려 넣었다.


작자미상, <안향초상>, 비단에 채색, 88.8x53.3cm, 국립중앙박물관
후대에 다시 그린것이지만 고려시대 초상화와 인물의 모습을 알려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강세황, <오 부인 초상>, 1761년, 비단에 채색, 78.3x60.1cm, 개인소장
조선초기에는 왕비를 비롯한 여인의 초상화가 제법 그려졌으나 성리학이 뿌리내리면서
왕족이나 여성의 얼굴을 화가가 쳐다보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절에 어긋난다고 여겨져 거의 그려지지 않게 되었다.
오 부인의 맏아들이 친척인 강세황에게 부탁하여 그려진 이 그림은 86세가 된 오부인을 그린 중요한 사례이다.


초상화는 삼국시대부터 그려졌는데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기도 했다. 조선후기 초상화는 정확한 원근법과 과학적인 명암법 등 서양화 기법을 볼 수 있어 흥미로운데 그만큼 제대로 그려 내기위해 여러 기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속, <금궤도>, 1636년, 비단에 채색, 105.5x56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그림 중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이야기를 그린 경우는 매우 드물고 중화 사상을 따랐는데
이 작품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그려 희귀한 경우이다.



김명국, <투기도>, 비단에 채색, 172x100.2cm, 국립중앙박물관
위나라에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밭에서 일하는 소년을 보니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년에게 술 한 병과 안주를 준비해
뽕나무 아래서 바둑 두는 노인에게 인사 하고 오라고 하여 그리 하였는데 죽음을 다루는 북두칠성과 삶을 다루는 남두육성이었던 노인은 그 보답으로 19세 소년의 수명의 91세로 늘려주었다고 한다. 김명국은 이 고사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한 듯하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중 <순흥화상>, 1617년, 27x20.2, 서울대 규장각
손순흥의 효심을 표현한 그림


고사인물화는 역사속의 인물, 신화와 전설, 문학작품의 주인공과 불교나 도교 관련 내용도 포함된다. 그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교훈을 주려는 교육적 목적으로 그려졌는데 삼강행실도처럼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출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사정, <절름발이 신선 이철괴>, 비단에 채색, 29.7x20cm, 국립중앙박물관
이철괴는 쇠로 만든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 신선으로 신통력을 발휘하여 육체에서 혼백만 빠져나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도와주곤 했다. 한 번은 제자에게 혼백이 7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육체를 수습하라고 했는데 스승이 지상에서 다시는 내려오지 않는다고 믿은 제자가 6일째 되는 날 스승의 육체를 장례를 지냈다. 돌아와보니 들어갈 육체가 없어진
이철괴는 굶어 죽은 거지의 시체에 들어갔고 이때부터 헐벗은 모습으로 절뚝거리며 돌아다녔다고 전한다.

도석인물화는 일찍이 삼국 시대부터 도교와 불교가 번성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도교와 관련된 신선도는 도교를 믿지 않는 양반사대부들도 무병장수하기를 소망하면서 좋아했다. 불화는 고려시대에는 많이 그려지다가 조선초기에는 유교 정치 이념으로 다소 쇠퇴하였지만 조선후기에 들어 다시 부흥했는데, 대개 승려화가들이 그렸으며 사대부와 일반 백성의 시주로 많이 만들어졌다.


 
<수월관음보살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119.2x59.8cm, 보물 제926호, 삼성미술관 리움



<감로도>, 1759, 비단에 채색, 228x182cm, 삼성미술관 리움

불화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그린 석가팔상도, 서방정토에 머물며 중생이 죽은 뒤에 극락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이끄는 부처인 아미타여래와 협시보살을 그린 아미타삼존도, 곤경에 처한 사람이 부르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서 도와주는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을 그린 관음보살도, 지옥에서 신음하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장보살도,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음식을 공양하는 의식절차를 그린 감로도 등 다양하게 전한다.

다양한 인물화를 통해 교훈도 얻고, 흥미도 얻고, 소망하고, 의지하고, 구원받고자 하는 마음까지 다스렸으니 인물화의 기능 또한 종류만큼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후기를 보면 이 책이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우리 옛 그림의 재미와 매력에 다가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우리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접기 전 저자의 목적은 이미 달성을 넘어선듯하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9.06.20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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