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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 조선시대 불상을 조각한 다섯 승려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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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 17세기 조선의 조각승과 유파
송은석 지음 | 사회평론 | 2012-11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는데 불교미술사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임진왜란 이후 파괴된 사찰이 재건되면서 불화와 불상이 새로이 제작되었는데 불교조각사에서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는 전기와 구분되는 후기의 출발점이다.


불상을 제작한 이들은 승려들로 조각승(彫刻僧)이라 지칭되는데 이들은 집단을 형성하여 일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였다. 조각승에 대한 용어로는 수화사(首畵師)로 불리는 우두머리 조각승 아래 차화사(次畵師), 그리고 일반 조각승으로 구성되었는데 경우에 따라 수화사보다 높은 직급의 화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조각승 이름이 기록된 16세기 불상 중 가장 이른 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조정덕십년명지장보살좌상>으로 대좌 뒷면에 음각된 명문에 의해 불상을 조성한 조각가를 확인 할 수 있으나 다른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아 활동에 관해 확인할 수 없다. 다만 16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각승 향엄이 조성한 불상을 통해 전라남도 나주를 중심으로 활동했음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17세기에 들어서야 조각승 유파가 본격적으로 성립되었는데 많은 사찰이 재건되면서 불상 또한 조각승 집단을 필요로 할 정도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유파의 규모는 상당했는데 큰 집단의 경우 30여 명이나 됐다. 17세기 전반에는 각 유파의 수장이 등장하여 유파를 이루어 활동했던 시기였으며 17세기 후반에는 유파에 소속되어 유파의 수장에게서 배운 제자들이 활동을 한 시기이다.

이 책에서는 조각승 유파가 본격적으로 성립된 17세기에 활동했던 조각승 유파를 현진
청헌파, 응원인균파, 수연파, 법령파, 무염파 다섯 유파로 분류하고 작품의 특징을 분석하여 비슷하게만 보이는 불상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한편 불상에 대해 관심을 이끌어 특징을 파악하며 다시 한 번 보게끔 유도한다. 연구서인 만큼 쉽게 읽힌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무명의 누군가가 만들었겠지 하며 지나쳤던 불상을 제작한 승려와 그 유파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흥미를 이끌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표와 도판이 이해를 돕는다.



현진, <소조비로자나불좌상, 1626년,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넓적한 얼굴에 직각 턱, 장대하며 안정감있는 신체, 대의 자락의 U자형 옷주름, 양 다리에 두개씩 양각 문양으로 옷주름을 형상화한 점은 이후 현진파 양식의 전형으로 자리잡은 요소이다. (121p)

청헌, <목조석가불좌상>, 1636년, 구례 화엄사 대웅전
청헌의 작품 중 가장 이른 예이다. 청헌은 청허라는 조각승과 동일인으로 거론될 만큼 작풍이 유사하나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동일 유파에 속한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139p/청허의 작품=149P 확인)


현진
청헌파는 현진에서 시작하여 청헌을 거쳐 승일, 응혜, 희장으로 이어진 17세기에 가장 먼저 성립한 유파이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인 유파이기도 하며 경상북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경상, 전라, 충청 등에서 두루 활동하였다.


응원, <목조아미타불좌상>, 1624영, 순천 송광사 광원암
응원이 만든 가장 이른시기의불상으로 응원과 함께 불상을 제작한 9명의 조각승 중에 후에 수조각승이 되어 자신의 불상을 남긴 조각승으로는 인균만 확인되며 그 외 조각승들이 수조각승으로 제작한 불상은 발견되지 않았다.(225p)

인균, <소조석가불좌상>, 1633년, 김제 귀신가 영산전
처음 수조각승으로 참여하였으며 협시보상상에 도금을 하지 않고 채색을 입혀 이채롭다.(231p)

응원인균파는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조성한 불상은 20건 39점에 이르며 1624년에서 1659년까지 분포하고 있다. 작품을 살펴보면 시기적 차이를 불문하고 양감이 발달된 얼굴과 부드러운 손, 유려한 옷 주름이 특징이다.

 
수연, <목조아미타불좌상>, 1619년, 서천 봉서사 극락전
수연이 조성한 불상 중에 가장 이른 예이다.(257p)

영철, <목조지장보살좌상>, 1649년, 서울 화계사 명부전
당당한 몸체가 수연의 작풍과 유사하다.(267p)

수연파는 17세기 전반에는 수연과 영철을 중심으로 전라북도, 충청남도, 경기도 해안 지역에서 활동, 17세기 후반에는 운혜와 경림을 중심으로 전라남도 지역에서 활동한 유파로 수연파에 속한 조각승은 모두 68명으로 확인된다. 사각의 얼굴과 상체가 발달하였고 옷 주름의 입체적 처리가 특징인데 수연의 불상 양식을 이어받은 영철은 좀 더 세련되게 발전시켰으며 운혜는 이목구비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옷주름도 율동적으로 하여 입체성과 실재성을 발달시켰다. 운혜의 제자인 경림은 영철 또는 운혜 초기 작품에 가깝게 날렵하고 경쾌한 묘사를 보인다.

 


법령, <목조석가불좌상>, 1629년, 군산 은적사 대웅전
직사각형 얼굴의 아래쪽 뺌이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다른 불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을 보인다. (296p)


법령, <목조아미타불좌상>, 1640년, 익산 숭림사 안심당
수조각승인 법령을 따라 햬희와 조능이 불상 조성에 참여하였다.(299p)


법령파는 1610년 법령이 수장으로 유파를 이루었으며 법령에게 수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혜희와 조능이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귀와 하반신 옷주름이 특이한데 이륜이 돌출하였으며 옷 주름이 매우 깊어 요철이 강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목조약사불좌상>, 1633, 고창 선운사 대웅전
무염파 조각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으나 이후 제작된 무염파의 작품과 차이를 보인다. 가늘고 긴 조형 감각은 불전과 불단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의문의 여지는 남아있다.(325p)

무염, <목조석가불좌상>, 1635년, 영광 불갑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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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심, <목조지장보살좌상>, 1653년, 고장 문수사 명부전
해심이 수조각승으로서 처음 조성한 작품으로 얼굴과 신체의 세부적인 부분은 스승인 무염의 작풍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전체 몸의 표현이나 부분들에서 차이를 보인다.(339p)

무염파는 무염, 해심, 도우를 중심으로 1630년대에서 1660년대까지 전라도 일대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한 유파이다. 17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80명의 조각승으로 이루어졌으며 실질적으로 무염파를 계승한 조각승은 도우의 후배인 해심이다. 팽팽한 양감이 강조된 얼굴과 신체, 양각과 음각을 함께 사용하여 입체감을 표현한 옷 주름이 특징이다.

이 다섯유파 외에도 17세기에 석불상을 주로 조성한 승호파등이 있으나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반으로 이어졌기에 책에서는 제외하였다. 책 내용 외에 더 궁금한 점은 각주를 참고하면 될 듯하다.

현재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불상은 수천 점 이상 남아있다. 우리가 무심코 보았던 불상도 포함된다. 이를 제작한 조각승과 그 유파를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림도 그러하지만 조각은 입체작품인 만큼 직접 보는 것이 중요한데 일일이 찾아다니며 확인할 수 없는 이들에게 필자가 촬영한 도판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불상들은 이전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책을 통해 그저 예불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불상도 각 양식이 발현되어 있는‘미술품’임을 깨닫게 된다.


글/사진
업데이트 2019.04.2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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