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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 박물관 ∙ 미술관 경영은 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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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호림박물관 (지은이) | 눌와 | 2012.10

얼마전 한국에서 사라진 조선시대 제왕의 투구와 갑옷이 미국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한꺼번에 발견됐다는 뉴스기사(중앙일보 기사 참조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412/10705412.html?ctg=1301&cloc=joongang|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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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보도됐다. 이 외에도 어느 나라에서 우리의 문화재가 발견됐다거나 약탈해간 것이라는 기사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 동안 몰랐던 유물을 새롭게 접하게 되어 반가운 마음도 들지만 이국땅에서 존재를 알리지 못했을 문화재를 생각하면 씁쓸함이 밀려온다.

해외 반출문화재는 정부가 협상을 통해 환수하거나 돈을 주고 사들여야 하기에 국가가 할 수 없다면 개인 수집가들이 나서야했는데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 호암미술관, 호림미술관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 곳들이다. 그 중 호림미술관은 전시 때마다 매스컴을 통해 많이 접하게 되는 두 곳에 비해 비교적 조용히 운영되고 있지만 국보 8건과 보물 46건을 포함하여 1만 5천여 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호림박물관의 설립자인 윤장섭 회장은 본래 성보실업, 유화증권, 성보화학을 운영하는 개성출신 사업가였다. 개성출신 미술사학자였던 최순우, 황수영 선생에 의해 비용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월간《고고미술》의 발간비용을 후원하면서 고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거기에 개성출신 미술사학자 진홍섭 선생 등 개성 3인방과 교분을 나누면서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에 새겼다.

 

청자상감유로연죽문표형주자

1971년 5월 26일 고미술품 중개인 양영복 씨에게 250만원에 구입한 첫 유물


국보 222호 백자청화매죽문호
호림박물관을 대표하는 이 백자는 1982년 당시 서울 변두리에 있는 집 한 채가 100-200만원,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빌딩이 4000만원일 때 4000만원에 수수료까지 얹어주면서 구입한 유물이다. 15-16세기 청화백자는 남아있는 수량 자체가 많지 않아 현재는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구입할 수없는 진귀한 유물이다.


보물 1457호 백자사각제기
그리 관심가는 유물은 아니었으나 중간상인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거래에 응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그 가치가 드러났다. 비슷한 형태의 제기는 없으며 국내에 사각제기는 이 작품 한 점밖에 없다. 


개성 3인방 선배들의 도움을 받으며 상감청자 1점을 시작으로 1만 점이 넘는 유물을 가진 대수장가가 되기까지 숫한 노력과 어려움도 따랐는데 기적이나 운명처럼 다가온 유물이 있는가 하면 유물거래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거나 가품을 구입한 적도 있었다. 돈이 많아도 가치 있는 유물을 만나지 못하면 살 수 없고 좋은 유물을 만나도 안목이 없으면 손에 잡았다가고 놓치는 법. 전시를 수백 번 보는 것보다 제 주머니를 털어 미술 작품을 한 점 사는게 안목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거래의 원칙은 소장자가 값을 부르면 절대 낮추지 않고 중간상인과는 흥정을 하지만 수수료를 후하게 지불하였는데 그래야 좋은 물건이 생겼을 때 먼저 연락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방패모양토기
출토된 예가 없는 유일한 형태의 토기로 가야 고분에서 나온 토기는 생활용구를 본 뜬 형태가 많기에 실용기를 토기로 만든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모은 유물은 “숫자가 많아져서 집에 다 보관할 수 없어서” “집 안에 놓고 보는 건 별로 관심이 없어서” “영구히 보존해서 후손들이 다 보면 좋지 않겠느냐”는 이유로 세워진 박물관에 보관되어 모두가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 거기에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유물의 소유권을 넘기고 부동산과 유가증권 같은 수입원을 재단에 기부하여 자급자족이 가능한 박물관이 될 수 있도록 개인 재산을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그리고는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배운 대로 실천했을 뿐 자신이 한 일이 특별히 놀랄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하여 유물 수집을 재산을 증식하는 수단으로도 돈 많은 자산가의 소일거리로도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호림박물관 신림본관


호림아트센터
호림아트센터의 건축을 규정짓는 모티브는 선사의 추상 무늬와 불가의 연꽃이다.


호림박물관은 신림동에 위치한 본관과 강남에 위치한 호림아트센터 신사분관으로 구분되는데 본관은 서울 동남부의 유일한 사립박물관으로 신사분관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만남 같은 실험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호림아트센터의 경우 국보와 보물을 보호하기 위해 지진 규모 8 이상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설계되어 있어 우스갯소리 같지만 강남 일대를 걷다가 지진이 난다면 호림아트센터로 달려가면 된단다.

           
대치동 상가에 자리 잡은 호림미술관 개관식


1990년대 호림박물관의 청자컬렉션을 선보였던 세 번의 청자 전시 도록


이처럼 튼튼한 박물관이 지어지기까지는 대치동 상가 3층에 문을 연 옹색한 임대 박물관을 거쳤는데 지진과 도난 사고에 대한 걱정은 악몽으로 이어지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0여년이 지나서도 회자되는 ‘고려 초조대장경’ 특별전 과 세 차례의 청자 전시를 개최하는 등 이를 기반으로 현재 위치로 도약할 수 있었다.

 



호림박물관은 사립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재력과 안목이 갖추어 진 곳이며 유물 구입과 전시. 연구 등 박물관의 대표적인 역할을 꾸준히 하고 있기에 주목되는 곳이다. 게다가 유물이 개인 소장이 아닌 재단에 귀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호림박물관의 시스템이 갖는 의미 또한 크다. 유물을 내 손에 쥐고 있다는 욕심은 부질없고 박물관에서 여러 사람이 같이 볼 수 있는 것이 기쁨이며 후대로 이어진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호림 윤장섭 회장이 있기에 호림박물관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글/사진 SmartK
업데이트 2019.04.2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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