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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사행기록화] - 옛 그림속에 담긴 그들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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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행기록화
정은주 지음 | 사회평론 | 2012. 7


“누런빛이 공중에 비치고 금빛 하늘이 위아래로 번쩍이는 것만 볼 수 있었다.‥‥(중략)
뱃사공은 황룡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글은 1624년 중국사행을 다녀온 이덕형이 중국령의 해로에 대해 언급한 기록이다.


《연행도폭》제3폭 <석성도>, 17세기, 지본담채, 37.5x65cm, 국립중앙도서관

17세기에 석성도 부근을 그린 그림은 좀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제시하는데 이국 바다에서 만난 악천후와 어룡의 대한 공포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대기의 불안정으로 물기둥이 치솟는 용오름 현상이 그리보였을터. 그림에 그려진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흥미롭다.

조선시대에는 명과 청에 조선사절을 파견하였는데, 이때 그려진 부경사행 관련 기록화는 크게 조천도와 연행도로 구분된다. 조선사절을 명의 수도에 파견한 조천도는 해로 노정에 치중된 반면 청과의 관계에서 연경에 파견한 조선사절의 활동을 담은 연행도는 북경일대 유적과 명승을 표현하고 있다.


《조천도》제4폭 <황현>부분, 19세기모사, 지본채색, 35.8x64cm, 육군박물관
황현은 등주부에 속하는 지역으로
홍익한의 『조천항해록』에 의하면 황현일대의 주요 사적으로 진중자 구처와 마고선적을 언급하였는데, 화면에 마고선의 유적을 기념한 비석이 있어 황현에서 황산역을 향해 지나는 길에 이를 목도했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천도>, <항해조천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연행도폭>, 육군박물관 소장 <조천도>는 위험했던 순간을 포착하듯 담고 있어 당시 긴박했을 상황을 짐작하게 하며, 사료의 기록과도 일치하는 사적의 표현은 기록화가 지닌 사실성을 주지하게끔 한다.

김윤겸, 《사대가화묘》<호병도>, 18세기, 지본담채, 57x33cm, 국립중앙박물관
김윤겸이 그린 <호병도>는 청나라 병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김윤겸이 청국으로 가는 사행에 동행했음을 짐작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시기에 그려진 기록화는 중국사행에서의 문화 교류와 그에 관한 기록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며, 그림을 그린 화원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하지만 부경화원에 대해서는 누락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사로삼기첩》제3폭 <계문연수>, 지본수묵, 23.3x27.5cm, 국립중앙박물관
강세황은 1778년 연행하는 박제가에게 주었던 별장시에서 중국에서 태어나지 못하여 견식을 넓힐 수도 없고 중국 문인들을 만나 교유하지 못하고 늙음을 탄식하였는데, 1784년 10월 부터 1785년 2월까지 진하사은겸동지사행의 부사로 연행하였다. 연행 노정에서 중국실경과 공식 사행활동을 그린 《사로삼기첩》과《영대기관첩》이 전하고 있다.

화원은 중국사행뿐 아니라 조선에 파견된 중국사신의 접대를 담당하는 관반 일행으로도 참여하였는데, 중국 사행을 그린 화가는 화원 외에 강세황과 같은 사대부화가도 포함되어 주목된다. 

중국에 파견된 조선사절이 제작한 기록화외에 조선사신의 모습을 담은 청나라의 궁정기록화, 청국 사신의 조선사행 노정을 그린 작품까지 살펴볼 수있어 사행관련 기록화가 단지 중국사행시기에 그려진 그림만을 일컫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선, <서교전연>, 1731년, 지본수묵, 26.9x47cm, 국립중앙박물관

정선이 그린 <서교전연>은 1731년 이춘제 등 연행사 일행이 말을 타고 진입하는 장면을 담고 있는데, 조문명의 『학암집』「서교전별」에는 연행사절단이 서교의 영은문 주변에서 가족 친지들과 이별을 고한다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사행을 떠나는 일원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이 그림은 당시 서교의 주요 건축물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영조어필, 《심양관도첩》제1폭, 1761년, 지본묵서, 43.6x54.8cm, 명지대 LG 연암문고

18세기 대청사행 기록화로 중요시 되는《심양관도첩》은 영조의 어명으로 비롯되었는데, 대외관계에서 핵심역할을 했던 심양관 옛터를 비롯하여 북경으로 진입하는 산해관, 북경 내 문묘와 국자가, 역대제왕묘 등 사절단이 거쳐 간 주요 사적을 글과 그림으로 담고 있다. 

   
              이필성 《심양관도첩》제14폭 <산해관내도>                   진황도 산해관 동성 천하제일관 누각
              1761년, 46.1x55.2cm,  명지대 LG 연암문고 
《심양관도첩》은 건물도형, 배반도, 실경도로 그려져 공적인 제작 목적이 두드러지며, 당시 사행을 기록한 이상봉의『북원록』을 통해 화원 이필성이 사행에 참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어 화가 또한 알 수 있다. 책에서는 그림에 표현된 사적과 실제의 모습을 비교분석하였는데, 그림을 문헌의 기록과 함께 살펴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정여, 《봉사도》제 6폭, 전원풍속, 견본채색, 40x51cm, 중국민족도서관

                                
                      《봉사도》제 6폭 부분                       김두량, 김덕하 《사계산수도》부분


정여, 《봉사도》제18폭, 관소연청 전연부분, 견본채색, 40x51cm, 중국민족도서관
사신이 청국으로 회정하는 당일 전연을 행하는 장면이다.

18세기 청나라 사신 아극돈은 1717년부터 1725년까지 네 차례 조선사행에 참여했는데, 조선사행 견문을 묘사한《봉사도》는 청에서 제작된 조선사행 관련 기록화로 유일하다. 아극돈은 사행을 마치고 청국의 화가 정여에게 화첩을 그리도록 하였는데, 조선사행시기에 조선 화공에게 화제를 제시하여 그려간 그림은 정여에게 조선의 실경과 풍속을 그리는데 참고가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흥미로운 점은 아극돈이 그림을 주문했을시 도화서 소속의 화원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아극돈이 산수와 풍속을 원했기에 당시 화원 중에 김두량이 차출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와 관련하여 김두량이 아들 김덕하와 함께 제작한《사계산수도》와 비슷한 소재가 그려져 주목되며 사신에 대한 연향과 공연, 궁중의례가 자세히 그려져 있어 중요시된다.


나빙, 《치지회수첩》<박제가 초상>, 1790년, 지본담채, 22.9x26.6cm, 개인


주학년, <추사전별연도>, 1810년, 지본담채, 30x26cm, 개인소장

한편 청나라 궁중회화와 청인이 그린 그림에 묘사된 조선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나빙은 1790년 건륭제의 팔순절을 축하하기 위해 연행한 박제가의 초상을 그리고 제시를 남겼으며 주학년은 1809년 10월 연행했던 김정희가 귀국하기 전 전별연을 배경으로 그림을 남겼다.


진방정, <남이웅 초상>, 1627년, 견본채색, 164x103cm, 개인
남이웅초상은 명나라 궁정화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석주초상>, 17세기, 견본채색, 178x130cm, 실학박물관
1683년 사은사로 연행한 김석주는 강희연간 궁정화원인 초병정에게 초상화 초본을 받고 시정햐야할 사항을 요구하였다. 초병정은 중국에 들어온 서양인 선교사에게 서양화법을 배워 참고하였기 때문에 김석주가 자신의 초상화에서 간취되는 서양화법을 수용하기에는 생소하였을것이라 짐작할 수있다. 이는 당시 서양화법적 요소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며 실학박물관 소장 김석주 초상는 김석주의 요구를 반영한 초병정의 작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사절단이 중국 화가에게 주문하여 제작한 초상화가 다수 유입되기도 하였는데, 조선후기 중국에서 제작한 서양화법과 관련한 조선사신의 초상화는 조선의 유입된 서양화법의 경로를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송조천객귀국시장도>, 15세기전반, 견본채색, 103.6x163cm, 국립중앙박물관
명나라 사행을 주제로 한 기록화 중 가장 이른 작품은 <송조천객귀국시장도>로 최근까지 17세기 초 해로사행을 배경으로 북경의 자금성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왔다. 저자는 1409년부터 1621년 이전까지 육로로 이동했던 것을 감안할 때 사행했던1370년부터 1409년 사이 사행과 관련 있으며 북경으로 천도하기 전 명나라의 수도였던 남경성을 그린 것이라 시정하였다. 그림위에 명 감찰어사 금유심이 쓴 전별시중 “해역을 항해하여 황성에 조공 와서”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해로사행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사신을 전송하는 장면임을 알 수 있다.

사행관련회화의 범위를 확대하여 연구한 결과가 담긴 이 책은  제작연도가 1760년으로 알려져온 숭실대 한국기독교 박물관 소장 《연행도》가 벽옹이 준공된 1784년 작으로 비정하는 등 기존의 정보들을 수정하여 담고있으며 화원의 역할을 고찰하고 부경사행의 화원을 보충하는 등 사행관련 회화를 흥미로운 주제로 이끌고 있다. 

다만 이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의 전문가적인 설명은 조금 어려운 감이 있으나 그 동안 크게 주목하지 못했던 사행관련 기록화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음을 600여장의 분량에 담긴 글과 자료들이 증명한다.

 

 

편집 스마트K (koreanart21@naver.com)
업데이트 2019.06.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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