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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 - 그 시대의 여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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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
강명관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 4

옛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듯 연구 또한 꼭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의 몫은 아닌듯하다. 오히려 비전공자가 새로운 시선으로 그림을 볼 수 있으며 새로운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지만 그 동안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를 비롯하여 『조선 풍속사 -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등을 통해 그림 보는 것을 넘어서 읽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물론 회화의 기법이나 그 시대 회화의 경향 속에서 갖는 의의등을 전문적으로 소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림 속 인물들을 바깥세상으로 끌어낸다는 점에서 그림을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이번에는 그림을 통해 조선 여성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여성을 회화의 제재로 삼은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봤을 때 여성에 관한 문헌들을 중심으로 그림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참으로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림을 끼워 넣는 식은 아닌데,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미술사적으로도 더 많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전문 서적들도 다독했음을 알 수 있다.


작자미상, <공민왕 영정>,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태조 4년 종묘를 세울 당시 바람결에 그림이 날아들어 그곳에 공민왕 영전을 세우고 이를 받들도록 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회화를 통해 조선시대의 여성을 살펴보기에 앞서 고려시대의 여성상을 살펴보면 노국대장공주의 초상화가 남아있어 여성의 모습을 추측케 한다. 또한 문헌자료를 통해 고려시대에도 미인도가 적지 않게 제작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사후에 초상화로 그린 사례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친족제도가 있었기에 남성중심주의 사회였음은 분명하지만 조선시대에 비해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지배되는 삶을 살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여성 초상화가 남성의 초상화와 함께 제작되고(여성의초상화만 따로 제작하여 별도의 영당을 짓는 경우도 있었다.) 동일한 화면 속에서 대등한 지위로 그려진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작자미상, <조반 부인상> / <조반 초상>, 국립중앙박물관

작자미상, <박연 부부상>, 충북 영동군 난계사

『조선왕조실록』등의 문헌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왕과 왕후의 초상을 함께 그려 봉안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지만 숙종대 이후로 왕후의 초상에 관한 기록은 사라진다. 대신 귀족이나 고급 관료의 부부 초상이 남아있어 살펴볼 수 있는데 조반 부부상의 경우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이모본이지만 원형을 간직하고 있기에 중요한 자료가 되며 박연 부부 초상을 통해 부부가 등장하는 고려의 풍습이 조선 초까지 여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 전기에도 미인도가 제작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문헌을 통해 강희안도 <여인도>를 그렸음을 알 수 있으며 성종이 관료들에게 하사한 세화또한 중녀를 그린 <채화도>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풍습은 화상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초상을 그려 전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다....(중략) 우리나라가 화상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은 정말 개탄스런 일이다.”
-허균,『惺所覆瓿稿』

그러나 16세기 말 이후에는 여성의 초상화 뿐 아니라 남성의 초상을 그리는 풍습마저 사라지고 있었는데 성리학의 도입으로 초상화를 봉안하는 영당과 영전의 건립이 적어진 것도 이유라 할 수 있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를 살았던 허균 또한 글을 통해 화상을 그리는 일이 드물어졌음을 얘기하고 있어 여성의 초상은 더더욱 희귀해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임란과 병란을 거치며 유교적 가부장제는 강고하게 정착되었고 회화 속 여성의 형상에도 변화가 일어났는데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의 초상화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떨어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로인해 가부장제의 의도에 부합하는 여성 형상이 그려졌는데 열녀도가 그것이다.


<김씨사적>, 《삼강행실도》(초간본), 열녀편, 국립중앙박물관
김언경의 아내김씨는 1287년 왜구가 강간하려 들자 죽을지언정 욕을 당할 수 없다며 저항하다 살해되었다.《삼강행실도》열녀편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이 죽음을 택하거나 죽음을 당하거나 하는 잔혹한 장면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부추애>,《동국신속삼강행실도》, 열녀편, 규장각
권굉의 아내 박씨와 권굉의 아내이자 한영립의 아내인 권씨가 왜적을 만나자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모습을 그렸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또한 여성이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남성에 대한 충성과 절재를 실천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임씨단족>,《오륜행실도》, 열녀편, 국립중앙박물관

세종때 처음 만든 《삼강행실도》는《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거쳐 조선 후기 정조 때 《오륜행실도》에 이르기까지 간행되었는데, 남성에 대한 성적 종속성을 실천하기 위해 실체와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형상으로 그려졌다.


작자미상, <칠태부인경수연도> 부분, 1691년, 개인소장
가부장제가 정착한 시기에 그려진 <칠태부인경수연도>를 보면 여성의 자리에는 주안상만 그려졌을 뿐 여성의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유교적 가부장제는 다른 여성의 형상도 만들었는데 나이가 많은 여성과 어머니로서의 여성에 대해서는 존경심과 효라는 윤리를 설정하여 잔치를 하고 그림으로 남겼다. 그러나 가부장제가 정착되는 시기에 그려진 경수연도를 보면 여성의 모습이 사라져 유교적 가부장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가 저락해갔음을 보여준다.


조영석, <재봉>, 개인소장


김홍도, <부부행상>《단원풍속화첩》, 국립중앙박물관

17세기가 지나면서는 가정 내에 여성 노동이 갖는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경직도에서 여성의 노동을 따로 떼어낸 속화가 그려졌는데, 대부분 농업노동과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지만 희소하나마 상업 활동을 하는 여성의 모습도 그려졌다.


성현, <길거리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작자미상, <미인도>, 18세기, 해남 윤씨 가문 소장
미인도의 경우 문헌상의 내용과 유사하여 당시 현실을 반영했음을 알 수 있으며 미인상의 모습과 복식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속화에는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여성의 형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 존재하는데, 미인도 역시 사대부 남성의 감상물로 유행하여 이와 같은 범주로 볼 수 있다.


신윤복, <기방난투>《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그리고 다양한 여성의 형상이 그려지면서 기녀가 그림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데, 가부장제에 의해 여성주체가 사라진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피동적인 존재만이 아닌 남성이 성적 욕망을 집행하는 것을 교묘히 역이용하면서 생존을 모색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주제는『이춘풍전』등의 소설로도 등장했으며 그림에서도 남성들의 난투를 조롱하듯 바라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윤복, <절로 가는 길>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세상에 혹 부인네들이 관왕묘나 절에가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집안의 법도가 무너진 것을 알 만하다.”
-이덕무,『士小節』

 
신윤복, <춘화구경>《건곤일회도첩》

이 외에 종교적 영역에서 자신의 주체를 찾았던 여성의 모습과 여성의 성적 욕망이 진전되어 그려진 춘화를 소개하여 자신들의 쾌락을 추구했던 주체로서의 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림을 통해 그 시대의 여성의 지위나 위치 등을 살펴봄으로서 그림에는 그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어쩌면 그 시대 여성들의 삶에 대해 그 동안 외면해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는데, 문헌상의 기록과 그림을 통해 당시 여성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의미 있지만 여성이 그려진 그림만을 한데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차다.

 

편집 스마트K (koreanart21@naver.com)
업데이트 2019.06.2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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