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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어용화사 가노파狩野派와 조선 관련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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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순, 「日本 御用畵師 가노파狩野派와 朝鮮 관련 繪畫」, 『미술사학』 vol 38,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9.08.

일본의 어용화가인 가노파 화가들이 일본과 조선의 회화교류에서 수행한 다양한 활동들을 고찰한 논문이다. 
이들은 이들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본 막부의 명을 받고 조선과 관련된 회화 활동에 참여했다. 예를 들어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를 위한 선사품 제작, 통신사 관련 회화적 기록, 조선회화의 감정, 감평활동, 사신단과 화가 접대 등이다. 
조선 통신사와 관련된 것은 에도(江戸) 가노파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상위그룹인 오쿠에시(奥絵師)로 17세기의 가노 단유(狩野探幽 1602-1674), 가노 야스노부(狩野安信,1614-1685), 18세기의 가노 쓰네노부(狩野常信,1636-1713), 가노 미치노부(狩野典信, 1730-1790), 19세기의 가노 나가노부(狩野榮信,1775-1828) 등 오쿠에시의 수장들이 지속적으로 조선통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 증정용 병풍과 예물 제작
가노파는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중기 이후 메이지(明治) 維新에 이르기 까지 막부를 등에 업고 400여 년간 일본 화단을 지배한 대표적인 공식 화사 집단이다. 이들은 무가 특유의 미의식을 반영한 양식을 형성하고 제자를 키워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확산시켰다.
통신사가 오면 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가장 중요한 활동은 증정용 병풍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매번 10쌍에서 20쌍에 이르는 병풍을 제작해 증정했다. 


『朝鮮國ヘ被遺物絵形』 1748년 제 10차 통신사 때 조선에 보낼 예물을 제작하기 위한 그림 포맷으로 예물을 만드는 데 소용된 각종 장식화의 밑그림을 수록한 화본이다.


병풍 그림의 주제는 각종 영모화와 화조화, 일본적인 物語繪, 일본의 명소를 담은 名所繪, 일본의 역사고사를 다룬 故事畵, 일본 풍속화 등 다양한데 화려한 금박과 금분을 사용해 가노파 특유의 화풍을 구사하여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정교한 특징을 보인다. 기록으로 남은 제작자 명단을 보아도 최상위 집단에 의한 최고 수준 작품이며 성의를 다해 준비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현전하는 작품은 적은 편인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새롭게 발견되고 연구되어 주목받고 있다.

통신사 관련 회화의 제작: 행렬도·행사도·초상화 外
1. 행렬도
현재 17세기 이후 12차에 걸쳐 파견된 통신사의 행렬을 그린 작품들은 많은 숫자가 전해지고 있다. 가노파 계열의 어용화가와 민간화가가 그린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가노파 계열의 것은 정교한 표현에 사실적인 화풍, 절제된 모습으로 통신사를 표현하는 경향이 있고, 민간화가들의 것은 편안하고 느슨한 필치 다양한 자세와 표정,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단 조선과 유구의 사절을 모두 당인이라고 동일시하는 경향이 보인다. 


작자미상 <조선통신사행렬도> 병풍. 내용으로 보아 칸에이 연간(寬英 年間(1624-1645)) 즉  2차(1624) 3차(1636) 4차(1643) 중 하나의 모습이다.



가노 에케이(狩野永敬, 1662- 1702) <朝鮮通信使行列圖卷> 뉴욕시립도서관 스펜서컬렉션 소장. 1682년 7차 행렬의 모습
에도가노파 뿐만 아니라 교토 활동 교가노파 화가도 통신사 관련 회화 제작했음을 의미한다.



오노 도린小野等林 <조선통신사행렬 에마키>1682년
사실적이지 않은 특징. 가노파의 화가들이 보다 현실적 사실적 묘사와 기록을 추구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가노 쓰네노부 <正德度朝鮮通信使行列繪卷> 1711년 제8차 통신사


작자미상, <朝鮮通信使登城行列圖卷>(통신사 삼사 부분), 4권 중 4권, 1711년, 지본채색, 27.0×4300.0cm,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쓰시마 종가에서는 가노 쓰네노부의 제자이자 쓰시마 출신 어용회사 다와라 기자에몬(俵喜左衛門)에게 행렬도를 그리게 하였다. 짧은 시간 안에 수행을 위해 에도에서 활동하던 町繪師들을 동원. 결과적으로 가노파 화가의 행렬도와 달리 다양한 표정과 자세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전의 행렬도에 비하여 사신단의 복식과 풍모, 각종 기물들을 정확히 관찰하고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1711년 이후 통신사의 행렬을 담은 작품은 민간에서도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후 가노파 화가가 제작한 행렬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가노파 화가들은 다양한 방식의 행사도를 제작하면서 조선과 관련된 繪事를 수행하였다.


2. 통신사 관련 행사도 제작
가노파 화가들이 어용화파로서 지위가 확보된 시기는 조선과의 교류가 시작된 즈음과 겹친다. 에도 성의 그림에 통신사를 삽입한 것은 일본 막부와 쇼군의 정치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작자미상(가노파 화가), <江戶圖屛風> 左隻(부분), 6曲1雙, 178.4×381.6cm, 日本 國立歷史民俗博物館
이전의 통신사를 참고한 그림으로 실제 절차 등과 차이가 있다. 통신사를 조공을 바치고 있는 듯이 표현하여 쇼군의 권위를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가노 단유는 교류에서 중요 역할을 수행했는데, 4차, 5차 통신사 일행과 직접 만났고, 4차 통신사 일행이 에도에서 닛코의 도쇼구(東照宮) 방문 광경을 <朝鮮通信使參入之圖>로 기록하기도 했다.


가노 단유狩野探幽, <朝鮮通信使參入之圖>(부분),東照社緣起 卷4 중, 지본채색, 26.0×153.0cm, 日本 東照宮 寶物館
3대 장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가 조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숭모하기 위하여 東照社緣起를 제작하도록 명하였다.
가노 단유의 그림으로 조선인의 실제 복식과 풍모와 차이가 있고 가마도 비사실적이다. 



스미요시 죠케이住吉如慶 東照社緣起繪卷 卷4(부분) 지본채색 36.2×189.1cm 日本 東照宮 寶物館



가노 마스노부(狩野益信,1625 -1694) <朝鮮通信使歡待圖> 6曲 병풍 1쌍(교토 센뉴우지(泉通寺) 소장) 1655년 제 6차 통신사
가노파 대표 화가가 쇼군의 명으로 그린, 최고 수준의 작품이다. 



가노 단신(狩野探信, 1653-1718)의 <朝鮮通信使船團圖屛風> 6曲1雙 부분.
비고(備後, 지금의 히로시마(廣島))의 명승지인 도모노우라에 입항하는 통신사의 선단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노 단신은 가노 단유의 삼남



3. 초상화
가노파 화가들은 조선 통신사가 에도에 도착한 이후 쇼군 관료 등의 명으로 숙소를 방문해 초상을 그렸다. 초상화 뿐 아니라 통신사 행렬을 기록하기 위해서 기본 작업으로 실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가노파 행렬도는 민간인의 작품보다 사실적인 경향)

1643 5차에서 일본 유학자 하야시 라잔(林羅山, 1583-1657)이 통신사 제술관인 朴安期(1608-?)를 가노 단유에게 소개, 박안기의 초상을 그렸고, 박안기는 하야시 라잔에게 초상화의 제찬을 청하였다. 같은 1643에 가노 단유의 동생인 가노 나오노부(狩野尙信, 1607- 1650)가 통신사의 정사인 윤순지尹順之(1591-1666)의 초상을 그렸고, 이 작품에 윤순지가 제찬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 외에 1682년 유학자 일행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배석한 수행화원 함제건咸悌健의 그림 4매를 얻어가기도 했다. 조선측 홍세태도 가노 쓰네노부의 <寒江獨釣圖>를 얻고 또한 그에게 초상화도 그려 받았다. 

1711년에는 가노 쓰네노부가 통신사 정사인 趙泰億(1675-1728)의 초상을 그렸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해지는 <조태억상>은 녹색 공복에 사모를 쓰고 拱手한 채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狩野常信 趙泰億像 견본채색 97.1×47.1cm 국립중앙박물관



통신사 수행원 및 화원과의 교류

가노파 화가들 사이 17세기 중엽 ‘조선풍’ 용어가 정착되었고 통신사와의 교류 과정에서 조선을 경험한 배경을 보여주었으나 가노파 화가들이 조선의 화풍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다린 민간화가들과의 교류에서처럼 조선회화의 일부 요소들을 수용한 바가 있는지 확인은 어렵다. 중요한 작품으로 가노 나가노부가 그린 조선풍의 <月夜葡萄圖>이다.


가노 나가노부 狩野榮信 月夜葡萄圖屛風 右隻, 6曲 1雙, 紙本金地水墨, 각172.2×363.6cm, 日本 靜岡縣立美術館



조선 회화의 감정과 축도 제작

일본 국내에 유통되던 조선의 그림들의 감정, 감평 분야에서 가노파 화가들의 역할이 컸고 가노 단유 등 당대의 유명한 감정가가 중국, 일본, 조선 작품들을 모사본, 축도로 기록하거나 작품 감정을 한 기록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그는 현재 교토 고려미술관에 있는 나옹 이정의 용호도를 축도로 남기고 “용호도 두 폭이 나옹의 필이며, 남송 畵龍의 명수 所翁 陳容과 같은 類의 화가지만, 소옹보다는 조금 못하다. 희귀한 筆者”라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조선 작품으로 알려진 산수도(소상팔경도)를 중국 작품이라고 감정하기도하고 국적을 잘못 말한 적이 많아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어용화사 다니 분쵸(谷文晁, 1763-1841)도 조선 그림들을 감정을 하고 축도를 남겼는데, 중국 작품들과 혼동-오판하기도 했다. 

가노파 화가들은 일본의 화가 집단 중 조선과의 외교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여한 집단이었다. 결과적으로 가노파 화가들은 조선회화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이는 교토나 오사카의 민간 지식인 화가들이 조선 통신사 수행원 및 화가와의 교류에 적극적이고 조선의 화법 등을 수용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는 면모이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0.02.2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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