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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이선란>의 장택상 인장 새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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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수, 「<불이선란(不二禪蘭)>의 구성과 전승 : 화제 글씨와 수장인을 중심으로」, 『추사박물관 학술총서Ⅴ: 다산과 추사, 정벽 유최관』, 2015년12월, 추사박물관

조선시대 그림 가운데 인장이 가장 많이 찍혀 있는 그림을 꼽자면 단연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그린 난초 그림인 <불이선란(不二禪蘭)>이 거론된다. 이 그림에는 무려 15과의 인장이 찍혀있다. 그 외에 왼쪽 아래에는 지워진 흔적 2곳이 더 있기도 하다.
 
인장뿐아니라 아니라 추사의 글도 다섯구절이나 들어 있어 추사의 난 그림 철학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물론 소위 문인화의 제작과 유통이 어떤 프라이빗한 환경에서 이뤄졌는지도 말해주고 있다. 글의 내용은 난이란 함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우연히 득의(得意)의 그림이 되었는데 중간에 제자 오규일(吳圭一, 호는 小山)이 보고서 탐을 내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 대해서는 4개 문장이 적힌 순서 그리고 수많은 인장의 주인 등에 대해 다소 이견이 있었고 미해결의 문제도 있었다. 특히 위쪽의 두 문장은 전통적인 한문 글쓰기법과 달리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써가는 소위 우행서(右行書)로 이뤄져 있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즉 이 두 문장을 한꺼번에 쓰고 난 뒤에 아래 글들을 썼다는 것이다. 

이번에 추사박물관 학술총서 Ⅴ에 실린 황정수씨의 글은 지금까지의 논의와는 달리 새롭게 글의 순서와 인장의 주인을 해석하고 눈길을 끈다. 즉 이제까지 화제(畵題)의 순서, 즉 A→C→B→D→E의 순으로 썼다고 본 견해에 대해 황정수씨는 A의 제화시(題畵詩)에 이어 두 번째로 쓴 것은 왼쪽 문장이아니라 아래 글이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글씨체에 있어 유사점이 첫 번째 이유이고 내용 역시 ‘달준을 위해 그려주는데 두 번은 불가능하고 한번만 가능하다’라고 한 점이 제화시의 의미와 일치한다는 점을 꼽았다. 따라서 그림 속 글은 A와 B에 이어 C, D가 추가된 뒤에 오규일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E가 더해졌다고, 즉 A→B→C→D→E 순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인장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알려진 장택상(張澤相 1893-1969) 수장인에 대한 고증을 더해 15과에 대한 해석을 완성했다. 지금까지 15과(顆)의 인장 중 5개가 추사의 것-추산, 고연재, 묵장, 김정희인, 낙교천하사-이라는 데에는 이견은 없었고 또 오규일 이후 수장가였던 김석준의 2과 맨 마지막 소장자인 손재형의 2과에 대해서도 인문(引文)의 내용대로 이견이 없었다. 즉 나머지 6개의 인장 가운데 미해결의 문제가 있다.   

처음으로 <불이선난>의 인장에 대해 언급한 유홍준은 [신품(神品)-⑧] [불이선실(不二禪室)-⑨] [물락속안(勿落俗眼)-⑪] 등 3과를 장택상 소장인으로 보았다. 그후 2006년 국박에서 열린 추사 전시에 이 그림이 다시 출품되면서 인장 ⑩의 [다항서옥서화금석진상(茶航書屋書畵金石珍賞)] 역시 장택상 수장인으로 해석됐다. 

그리고 2010년 인장연구가 고재식이 한국미술정보개발원의 인터넷사이트 스마트-K에 이 그림을 소개하며 [연경재(硏經齋)-⑫]를 장택상 수장인으로 해석해 미해결의 인장은 ⑬만 남게 됐다. [소도원선관주인인(小桃源僊館主人印)-⑬]에 대해 황정수씨는 근래 장택상이 구장했던 추사 글씨탁본첩인 「노완행서(老阮行書)」를 통해 이 도장이 장택상씨의 소장인 점을 확인했다. 「노완행서(老阮行書)」는 추사 제자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8-1892)가 제작한 것으로 이 첩에는 장택상의 인장 20여개가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정수씨는 오른쪽 아래에 도장 2개가 지워진 흔적에 대해 이는 장택상의 호와 이름을 찍은 것이라고 추정했다. 과시욕이 강한 장택상이 그림 속에 6개의 사구인(詞句印)을 찍고 정작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 이름과 호 인장을 빼놓을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이 인장이 훗날 지워진 것은 장택상의 평이 좋지 않았던 데서 기인할 수 있다고 했다. 황정수씨는 위쪽 인장을 [장택상인(張澤相印)-⑯], 아래쪽을 [창랑과안(滄浪過眼)-⑰]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이 <불이선난>의 전승에 대해 이제까지 알려진 것 외에  무호 이한복을 더 추가해 다음과 같은 소장 역사를 소개했다. 
추사 → 오규일 → 김석준 → 장택상 → 이한복 → 손재형 → 이근태 → 손세기 → 손창근 

<불이선란>에 보이는 화제는 다음과 같다. 
A
不作蘭花二十年, 偶然寫出性中天, 閉門覓覓尋尋處, 此是維摩不二禪
난 꽃을 그리지 않은 지 어언 20년,
우연히 본성의 참모습을 그렸네.
문 닫고 찾고 또 찾은 곳,
이것이 바로 유마힐의 불이선일세 

B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 不可有二 仙客老人
애초 달준을 위해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다만 한 번이나 가능하지, 두 번은 불가능하다. 선객노인

C
若有人强要爲口實, 又當以毘耶無言謝之, 曼香
만일 사람들이 억지로 요구하는 핑계로 삼는다면, 
또한 마땅히 비야(*유마거사)의 무언으로 사양하리라. 만향 <秋史>

D
以草隸奇字之法爲之, 世人那得知, 那得好之也, 漚竟, 又題
초서와 예서의 기이한 자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으며, 어찌 좋아하겠는가? 
구경이 또 제하다. 

E
吳小山見而豪奪, 可笑
소산 오규일이 보고 억지로 빼앗으니 우습구나

인장
① 秋史
 
② 墨莊
③ 古硯齋
④ 樂交天下士
⑤ 金正喜印
⑥ 奭準私印 (김석준)
⑦ 小棠 (김석준)
⑧ 神品 (장택상)
⑨ 不二禪室 (장택상)
⑩ 茶航書屋書畵金石珍賞 (장택상)
⑪ 勿落俗眼 (장택상)
⑫ 硏經齋 (장택상)
⑬ 小桃源僊館主人印 (장택상)
⑭ 蓬萊第一僊館 (손재형)
⑮ 素筌鑑藏書畵 (손재형)
⑯ 추정: 張澤相印
⑰ 추정: 滄浪過眼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17.08.1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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