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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심포지엄] 교토 도시샤 스케치 2 - 동아시아 대중적 도상의 시각 문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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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권창규. 글 쓰는 사람. 인문학자이자 한국문학 연구자.
《상품의 시대》 외 여러 책을 썼다. slowgyu@daum.net

2015년 8월 21, 22일. 일본 도시샤 대학에서 <동아시아 대중적 도상의 시각 문화론>이라는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심포지엄의 주체는 일본의 광고레토릭연구회와 대정이미지(다이쇼 이마주리에) 학회). 한국에서는 김상엽 교수와 필자가 참여했고 일본 각지에서 미술사나 디자인 관계자가 참여했다. 이 글은 그 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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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샤(同志社) 대학 이마데가와(今出川)  캠퍼스>

학술 심포지엄의 후기라고 출발해놓고 다른 이야기만 잔뜩 했다. 심포지엄 후기 1탄을 나는 교토 도시샤 대학 교정 한 켠에 서 있는 윤동주와 정지용 시비의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한국문학 연구자인 내게 그들은 그런 존재들이고, 일본의 광고 연구회와 이미지 학회가 주최한 전혀 다른 성격의 학술 행사에 와서도 첫 발걸음은 그들이 되었다. 

학회는 8월 21일과 22일 양일간 열렸다. 일본의 광고레토릭학회와 대정(다이쇼)이미지학회가 근대 행복의 시각문화론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4번째 국제 심포지엄이자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의 광고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비교하는 기획으로서는 첫 번째 기획이며 앞으로 두 번의 심포지엄이 더 열릴 예정이다. 대체로 1920, 30년대 일본의 대광고주로 꼽히는 아지노모도(味の素), 주조토(中将湯), 진단(仁丹), 구라부(クラブ), 아카다마(赤玉)를 대상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진단은 은단의 효시라면 아하, 하실 터이다. 아지노모도는 현재 한국에서도 식사 대용 수프를 비롯해 여러 먹거리 상품을 내놓고 있다. 연배가 있는 독자시라면 “아지노모도, 사오너라”는 어른들의 심부름을 기억하실 것이다. 1960년대 말, 70년대 초 미원이 등장하기 전에 아지노모도는 미원을 대신했던 조미료였다. 사실 미원이라는 한자를 일본어 한자 읽기로 하면 아지(味)-모도(元)가 된다. 

학회에는 일본의 관서 지방을 비롯해서 각지의 연구자들과 미술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도시샤 대학 문학부(문학부에 예술사와 미학 전공이 속해있다)의 대학생과 대학원생들부터 주최 학회와 연구회의 회원들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이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발표자만 10명에 이르렀는데 쿠마쿠라(熊倉一 紗, 도시샤대학) 교수는 아카다마 와인의 광고 전략에 대해 발표를 했고, 마에가와(前川志織, 교토공예대학 공예자료관) 학예관은 일본의 광고 포스터에 나타난 소녀 이미지에 대해 흥미로운 발표를 했다. 

심포지엄의 기획부터 뒷풀이까지 백방으로 활약했던 기시 후미카즈(岸文和)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일본 우키요에(풍속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분으로 도시샤 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4년에 나온 기시 교수의 《江戶の遠近法》(에도시대의 원근법)이란 책은 우키요에 연구의 백미로 평가 받는다.
    


심포지엄의 문을 여는 기시 후미카즈 도시샤 대학 교수(사진 제공: 김상엽).
책 표지는 기시 교수의 《江戶の遠近法》(1994) 


 한국에서는 김상엽과 권창규(필자)가 참여했다. 김상엽 선생님은 한국의 근대 미술 시장에 대한 발표를 했는데 이 곳에 연재했던 글을 묶고 다듬어 《미술품 컬렉터들》 (돌베개, 2015)를 출판한 바 있다. 미술사를 작품 중심이나 계파 중심이 아니라 시장 중심으로 풀어가는 접근법이 흥미로웠는데 만물의 상품화가 진행되던 식민지시기에 상품으로서의 미술에 접근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상품의 시대》(민음사, 2014)의 논의를 바탕으로 근대 광고가 그려낸 가정 상상에 대해 발표를 했다. 광고는 어떤 가족 이미지를 모범적인 모델로 제시했을까 라는 점이 발표의 주요 내용이었다.
   


김상엽 교수와 필자의 발표, 토론 장면. 발표할 때는 두 스크린이 쓰였는데
한쪽에는 이미지, 다른 쪽에는 일본어로 번역된 발표문이 동시에 중계되었다.
(권창규의 사진 제공: 김상엽) 


여느 학술행사가 그렇듯이 본 게임보다는 뒷풀이에 에피소드가 많은 법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 중 한 가지만 소개한다. 필자는 일찍 교토에 도착했고 휴식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심포지엄 이틀 전에 일본어로 번역된 발표문을 점검하는 데 그야말로 학을 뗐다. 올해 65세 정년을 맞은 기시 선생님과 통번역을 담당한 한국인 대학생(이승환 군), 필자가 셋이서 앉아서 발표문의 문장 하나하나를 점검했는데 오후 12시 반부터 밤 10시 20분까지 강행군이 이어졌다. 그러고도 시간이 모자라서 다음날 2시간을 더 작업했으니 말 다했다.  

 작업 내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눈을 빛내던 노교수가 지하철 막차 시간(10시 30분)에 맞춰 헐레벌떡 뛰어가던 모습은 한동안 잊히지 않을 거 같다. 한국 학계의 관행에 익숙한 내게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었던 것은 기시 교수가 독특한(독특하게 성실하고 꼼꼼한) 분이고 다른 교수들은 여느 한국인 교수와 비슷하다는 이야기였다.^^ 여하튼 기시 선생님 덕분에 대학 시절과 대학원 내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러니까 전대미문의 경험을 했다. 몹시 피곤했지만 지적인 교류에 즐겁기 그지없었던 시간을 선물 받은 셈이다.(끝)
글/권창규(한국문학연구자) 관리자
업데이트 2017.10.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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