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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각속의 여성 서화가에 대한 첫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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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기생출신 여성화가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26집 2103년 하반기
조선시대 미술사에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사회에서는 극히 일부의 왕족 여성이나 양반 여성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여성과 아이들은 마치 있어도 없는 것처럼 유령인간 취급을 받았다. 이런 현실은 서화 세계에도 그대로 대입된다. 설령 그림이나 글씨에 탁월한 재능을 천부적으로 타고 났더라도 그런 재능을 발휘하거나 더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길은 애초부터 막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류 화가로 유명한 신사임당에 대해서도 근래 연구를 보면 서화가 자체로서의 인정보다는 대학자 율곡 이이의 모친이란 점에서 존숭되면서 화가로 기억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지적되는 형편이다.    

이 같은 사회 속에 유일하게 여류로서 그나마 이름이 거론되는 여성들이 당시 대표적인 그레이존에 있었던 기생들이다. 조선시대 기생은 신분상 노비이지만 문인 사대부를 상대한다는 점에서 계층 구분을 넘어서 존재했다. 또 직업적 기예로서 춤과 노래 그리고 시에 곁들여 조선 후기에 들면 서화에 대한 재능도 요구됐다. 석화(席畵)라고 해서 여흥의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처음부터 익혔다. 


  

  
매일신보 1913년 5월25일자 주산월의 <노안도>와 5월29일자 <묵죽도> 


하지만 조선말기까지 서화에 재능을 보인 기생에 대한 기록도 매우 부실하며 실물 자료도 거의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화가인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근역서화징』에 수록된 기생화가도 19세기말의 진홍(眞紅), 소미(小眉), 죽서(竹西) 3명이 전부이다. 

이 논문은 조선시대의 여류화가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근대기 기생화가들의 궤적을 추적한 선구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선행 연구로 19세기말의 서화를 잘 그린 평양기생 죽향에 대한 논문(황정연)이 있기는 하지만 20세기초 일제강점 초기의 기생 서화가를 본격 조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 논문은 지난 2013년 6월 근대미술사학회에서 발표한 19-20세기의 기생출신 여성화가 원고에서 1910년 부분만 발췌, 재정리한 것이다)  



  
함인숙(소교여사) <어해도> 1908년 비단 126x34cm 개인 * 서울옥션 94회
함인숙 <난초> 종이 129x35cm 개인 *제9회 옥션단   


1910년대 기생화가는 한일합방 이후 관기제도의 폐지와 권번 체제의 정착을 통해 등장한다. 당시 신문지상을 통해 알려진 1910년대 활동한 기생 서화가는 취미 주산월(翠眉 朱山月, 1894-1982)와 금주 김능해(錦州 金凌海, 1894?-?), 계사 김월희(桂史 金月姬, 1897-?), 춘사 임기화(春史 林琪花, 1900 무렵-?), 죽서 함인숙(竹西 咸仁淑) 등이다. 


이들 중 새로운 권번 체제 아래서 활동한 첫 번째 기생 서화가라고 할 수 있는 주산월의 그림은 매일신보의 1913년 5월자에 두 점이 소개된 데 그쳤다. 이후 그녀가 손병희의 소실로 들어가며 화류생활을 청산했기 때문이다. 



   
평양기생 난파 <모란> 종이 108.5x38.5cm 개인 *제14회 아이옥션 도판10
오귀숙, 이한복 합작 <석란도>, 1926년, 종이, 127.3x39.5cm, 개인소장
민운초, <묵죽>, 종이, 140.7x34.7cm, 개인소장


같은 나이로 추정되는 김능해는 해강 김규진(1968-1933)에 차린 서화연구회에 나가 본격적으로 서화 기량을 수련하며 새로 생긴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했다.(입선 기록은 없다) 특히 이 서화연구회에는 김능해 이외에 함인숙, 임기화가 부녀회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전한다. 

서화가 가능한 기생화가는 서울보다는 평양지역에 집중돼 있던 것으로 보이는 특이한 자료도 있다. 1918년에 간행된 『조선미인보감』에 따르면 189명이 속해 있던 한성권번과 179명의 대정권번에 서화가 가능한 기생이 각각 4명과 3명인데 비해 평양조합은 7명이 소속돼 있으면서 모두 서화가 가능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평양기생학교 서화수업 장면(신현규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


당시 서화가 가능한 기생들이 주로 그린 화목(畵目)은 매난국죽의 사군자에 노안도(蘆雁圖)가 대부분이다. 조선말기에 문인교양으로 사군자 붐을 이뤘던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또 일부에는 송학을 그린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기생서화가들의 자료는 한때의 유흥거리에 불과했던지 현재 거의 전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를 보면 근래 옥션을 통해 공개된 7점이 일반에게 공개된 유일한 자료이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08.17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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