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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사임당=초충도 등식은 송시열과 그 문인들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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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희,‘신사임당 초충도’ 18세기 회화문화의 한 양상」,『미술사논단』 2013년 겨울호, 한국미술연구소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은 대학자 율곡 이이의 모친이며 아울러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여류시인이자 화가이다. 회화사에서는 남아있는 자료가 적은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화가로도 거론된다.

이런 신사임당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바로 초충도이다. 그런데 초충도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다. 사임당이 그렸다는 초충도는 현재 유명한 것만 해도 국립중앙박물관본, 간송미술관본,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본 등이 있다. 이들 그림에는 사임당의 낙관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 도상들이 서로 비슷하다. 그래서 어느 한 때 모사된 것이 현재까지 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연구 논문들이 있다. 




전 신사임당 <초충도 수병(草蟲圖繡屛)> 비단에 자수 각 65.0x40.0cm 동아대박물관 보물 595호 


사임당의 초충도는 일반인에게도 매우 친근한데 그림 내용의 아기자기한 재미 이외에 지폐 도안에도 들어가있기 때문이다. 보물 595호인 동아대박물관의 초충도 자수병풍의 내용 일부는 현재 5만원권 지폐 도안에 사용돼있다. 

이런 대중적인 생각과 달리 실제 신사임당의 특기는 산수화와 포도 그림이었고 초충도는 후대의 특이한 문화현상 속에서 만들어진 신화(?)라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일지 모르지만 필자 고연희씨는 신사임당=초등도라는 도식이 신사임당 사후 120-130년이 지난 17세기후반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 1594-1689)에 의해 제기되고 그의 판단을 신봉한 이후의 후학들에 의해 정착됐음을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400년간에 이르는 약 40건의 문집을 고증하고 있다. 



전 신사임당<초충도 병풍> 지본채색 각 48.6x35.9cm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


우선 신사임당 당대의 기록을 보면 초충도는 전혀 거론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대신 하나같이 산수화 기량을 찬탄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생전에 신사임당의 산수화를 직접 보았던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은 ‘오묘한 생각과 뛰어난 솜씨는 다름 사람이 따라잡기 어렵다(妙思奇蹤未易攀)’이라고 산수화의 뛰어난 솜씨를 기록하고 있다. 

또 율곡 이이가 모친의 행장을 쓰면서 ‘산수화를 그리신 것이 지극히 묘하셨고 또한 포도를 그리셨으니 모두 세상에 견줄만한 이가 없다(遂作山水畵, 極妙, 又畵葡萄 皆世無能擬者)’라고 해 산수와 포도그림에 뛰어났음을 밝히고 있다. 



전 신사임당 <사임당화 팔면첩> 지본채색 각 41.0x25.7cm 간송미술관 


이처럼 16세기 문집에는 산수화와 포도화에 대한 언급이 전부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바뀌는 것은 17세기 후반이다. 이때의 송시열 문집에서 비로소 초충도에 대한 칭송이 등장한다.  
송시열은 초충도 이외에 산수화와 난 그림을 본 것으로도 전한다. 그는 이들 그림에 대해 특히 산수화를 위작이라고 했다. 그림 수준이 전문적이고 소세양이 쓴 글에 스님이 등장하며 또한 남성이 여성 그림에 제발을 쓰는 일이 가당치 않다면 이를 율곡 모친의 작품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초충도에 대해서는 ‘이는 돌아가신 이원수공(율곡의 부친)의 부인 신씨가 그린 것이다. 그 손가락 끝에서 나온 것이 오히려 혼연(渾然)하게 하늘이 이루어낸 듯하여 마치 사람의 힘이 들지 않은 것 같으니 하물며 오행의 정기를 얻고 원기(元氣)의 융화가 모여서 진정한 조화를 이룸에랴. 율곡 선생을 낳으심이 마땅하도다’라고 하면서 신사임당의 신묘한 솜씨를 대학자 율곡을 낳은 것과 결부시켜 칭송하고 있다. 



전 신사임당 <초충도 10폭병> 지본채색 각 34.0x28.3cm 국립중앙박물관 


이런 태도는 18세기 들어 노론계 학자들에 고스란히 이어졌다. 고연희 조사에 따르면 21건에 달하는 이 시대 문집 속에 언급된 신사임당 그림은 오로지 초충도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 학자는 가을 풀벌레의 울음 속에서 지아비를 그리고 가족을 염려하는 여인의 마음으로 해석했고 초충도에서 효심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 당시 거론된 사임당의 초충도 가운데 현재까지 전하는 것은 거의 없지만 그 중 하나인 신경(申暻, 1696-1766) 소장본은 후대까지 전해져 1978년 박정희 前대통령의 기증에 의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게 됐다고 보았다. 




정선 <오이와 두꺼비(瓜田靑蛙)> 견본채색 30.5x20.8cm 간송미술관 


이 논문의 결론에서 필자는 18세기에 신사임당과 초충도라는 등식이 성립된 데에는 율곡이 갖는 학파적 위상과 무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이는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파 학자들이 합심해서 진행시킨 문화 현장의 하나이며 이를 통해 정선(鄭敾 1676-1759) 역시 초충도를 그렸고 당시 도자기에도 초충 문양이 다양하게 그려지는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초충도의 도상속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 번 기회를 통해 소개할 것을 예고하고 있어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초충도의 상징성 문제가 어느 정도 설명될 지 기대가 자못 크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05.0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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