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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미술을 이끈 전시] 24. 조선 시대 생생한 삶의 현장, 풍속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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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풍속화
2002.3.12.-7.14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은 살기 힘든 나라라고 한다.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게 보는 경우가 많다. 일본 같은 데에서는 매스컴에서 한국의 합계 출산율 저하 문제를 소개할 때 한국은 경쟁이 극심해서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댈 정도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의 경쟁은 악명이 높다. 경쟁은 철들기 한참 이전인 유치원 때부터 시작된다고도 한다. 더욱 불행한 것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선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이 생활 구호처럼 된 나라이지만 이런 심각한 문제를 깡그리 잊고 ‘한국에서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을 온 국민이 똑같이 가졌던 때가 과거에 있었다.

2002년 초여름. 사람들은 길거리나 집에서 모두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으며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쳤다. 그리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말할 것도 없이 그해 초여름 한국 축구팀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한 FIFA 월드컵에서 연전연승하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행복한 승리감에 흠뻑 도취했다. 사회는 그때만큼은 관용이 철철 넘쳤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일상을 이탈한 듯한 마비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마비 현장 중 하나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있었다.

월드컵의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되고 한참 뒤의 일이지만 박물관에서도 세계적인 이벤트가 열리는 것을 고려해 특별 행사를 기획하고자 했다. 국제적 행사에 부속 이벤트를 마련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물관에서 국가적 행사에 보조를 맞춰 특별전을 기획한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8년의 서울올림픽 때다.
당시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로 하고 여러 행사를 기획했다. 박물관도 그에 호응해 국내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겨냥해 ‘한국의 미(美)’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는 한국의 전통 생활문화를 소개하는 기획으로 의상, 장신구, 보자기로 꾸며진 전시였다. 잠깐 소개하자면 장신구는 장숙환 컬렉션이, 보자기는 허동화 컬렉션 그리고 의상은 세종대학 컬렉션을 중심으로 해 각각 소개됐다. 장신구도 그렇지만 의상에는 화려한 궁중 복식이 대거 포함돼 볼거리가 많았던 만큼 박물관을 찾은 외국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런 이력이 있었던 만큼 월드컵 기간에도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무언가 한국성이 짙은 무엇인가를 보여줄 기획이 필요했다. 박물관 수뇌회의에서 고민을 거듭하면서 선정한 테마가 풍속화였다. 풍속화는 어느 장르보다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장르였다. 또 가장 많은 호기심을 보이는 전시 아이템이기도 했다. 박물관 내에서도 진작부터 풍속화만을 따로 모아 전시를 열어 보자는 말이 있었으나 거기에 문제가 있었다. 실은 박물관 자체로 풍속화 특별전을 치르기에는 유물 숫자가 부족했다.
일반적으로 풍속화라고 하면 김홍도의 <씨름>이나 <서당> 같은 그림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이는 틀린 생각이 아니다. 풍속이란 말은 예부터 전해오는 생활 습관이나 세태를 가리킨다. 또  거기에는 당대의 유행도 포함된다. 그래서 <씨름>과 <서당> 같은 그림이 조선 시대 서민 풍속을 대변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자료 부족이란 말이 나왔다. 그런데 특별전을 담당했던 이원복 당시 미술부장은 이 풍속의 범위를 확 넓혔다. 상층 문인사회는 물론 궁중까지 시야를 넓혔고 또 풍속과 무관할 것 같은 종교화까지도 포함시켰다.

우선 문인사회를 그린 그림으로는 아회도(雅會圖)가 유명하다. 아회도는 문인들이 아취 있는 한때의 모임을 기념해 그린 그림을 말한다. 조선 후기가 되면 문인 생활 양식이 사회에 넓게 퍼지면서 중인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모임을 열기에 이르렀고 또 문인들처럼 그림으로 남겨 기념했다. 아회도는 행사 기록화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문인사회의 아회(雅會)가 중인 사회로 넓혀지는 가운데 그려진 그림이기도 하므로 당대의 풍속을 반영한 그림이 된다. 이렇게 보면 궁중 행사도 역시 다른 시각으로 다룰 수 있다. 궁중에서 열린 행사는 문자 기록 외에 그림으로 그려진 것도 많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기록을 목적으로 그려졌다. 더욱이 정교하게 표현되고 묘사된 내용은 궁중의 의상이나 장신구 등을 연구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시각적 자료로 쓰여왔다. 풍속의 시각으로 보면 궁중 행사도에는 다양한 궁중 행사의 전례나 습속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화 가운데 감로탱화(甘露幁畵)에는 특히 풍속적 장면이 다수 들어있다. 감로탱화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천도재 등에 쓰이는 그림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죽은 사람의 생전 모습이 풍속화에 못지 않게 묘사된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해서 풍속화 특별전은 크게 '정치와 이상', '아취와 풍류', '생업과 휴식', '신앙과 기복'의 4개 파트로 나뉘어 구성됐다. 과거와 달리 한층 업그레이드된 풍속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이 전시는 월드컵 개막보다 훨씬 앞서 3월12일에 오픈했다. 출품작은 병풍, 화첩 등을 포함해 83건에 이르렀다. 박물관 소장품 외에 국립민속박물관, 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서울대박물관 같은 국립기관의 작품들을 출품받았다. 민간에서는 간송미술관, 호암미술관, 고려대박물관, 선문대박물관, 동아대박물관이 작품을 출품했고 손창근, 이종웅, 조재진, 해남 윤씨 종가, 박주환 씨 등과 같은 개인 컬렉터들 역시 국가적 사업을 도왔다.

출품작 중에는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 상당수 들어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홍도, 신윤복으로 연상되는 풍속화 특별전이었던 만큼 전시는 개막 이후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문화와 스포츠가 커플링 되기는 쉽지 않았다. 전시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반 현상은 더 심했다. 6월에 들어 관람객이 급전직하로 줄었다. 월드컵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4일(폴란드전, 2:0 승리)을 지나고부터는 현저해져 10일(미국전 1:1 무승부)을 거쳐 14일(포르투갈전 1:0 승리)로 갈수록 관람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18일(16강 이탈리아전 1;0 승리), 22일(8강 스페인전 5:3 승부차기 승리), 25일(준결승 독일전 0:1 패배)을 지나 3, 4위전이 열린 6월29일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빈 박물관을 지키는 박물관 직원들 역시 즐거워 마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김득신 외 <득중정 어사도> (화성능행도, 부분) 1796년 견본채색 각 151.4x66.4cm 국립중앙박물관  

이 전시는 ‘전반 성공, 후반 저조’라는 성적표를 받았지만 조선 시대 풍속화를 일목요연하게 한자리에 처음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풍속화 특별전의 하이라이트를 소개하면 우선 <화성능행도(華城陵行圖)> 병풍부터 꼽지 않을 수 없다. 화성 능행은 정조가 수원의 사도세자 현륭원으로 행차한 뒤 수원 화성에서 모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연 일련의 행사를 말한다. 이 행사는 주요 장면을 8폭 병풍에 그렸다. 병풍 제작에는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등의 화원 8명이 동원됐다. 부분을 확대해보면 김홍도 인물묘사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한시각 <길주 과시도> (북새선은도, 부분) 1664년 견본채색 57.9x674.1cm 국립중앙박물관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 역시 함경도 길주에서 열린 국가 행사를 그린 기록화이다. 이는 병자호란 이후 북방 방비를 위해 함경도 일대에서 치러진 문무과(文武科) 특별 과거를 그린 것이다. 그린 사람은 도화서에서 학생을 지도하던 교수직에 있었던 한시각이다. 그는 1655년의 통신사 일행을 따라 일본에도 다녀왔으며 이 그림은 일본에 다녀온 뒤 10년쯤 뒤에 그렸다. 그림에는 말을 타고 달리며 과녁에 화살을 맞히는 응시생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첫 번째 화살은 과녁을 꿰뚫어 붉은 깃발이 올라와 있다. 그는 이제 두 번째 과녁을 겨냥하고 있는데 과녁 옆의 심사원은 붉은 깃발과 흰 깃발을 나란히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무과 과거 장면을 그린 그림은 조선을 통틀어 이 그림 한 점뿐이다. 


장득만 등 <사약선귀사> (기사경회첩 중) 1745년 견본채색 43.5x67.8cm 국립중앙박물관


필자미상 <성시전도> (부분) 18세기후반 견봍채색 각 113.6x49.1cm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끈 그림은 <성시전도(城市全圖)>였다. 도성 안에 많은 가게가 밀집해 있고 군데군데 길거리 연희가 열리며 또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모습이 8폭 병풍에 그려져 있다. 그림 속 사람들의 복장과 2층으로 된 건물 모습 그리고 패루(牌樓)가 보이는 점 등을 보아 중국의 어느 성시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조에 관련된 기록에는 1792년에 그가 한양 전경을 그리게 하고 이를 ‘성시전도’라고 부르면서 주위의 신하들에게 장편 시를 짓게 한 내용이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이 정조가 그리게 한 <성시전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풍경을 고려하면 1790년 건륭제 팔순에 맞춰 그려진 <팔순만수성전도(八旬萬壽盛典圖)>의 목판화가 조선에 전해지고 그를 바탕으로 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추정도 있다.  아무튼 이 그림에는 <화성능행도>에 버금가는 스펙터클한 장면이 담겨있어 보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8폭 병풍에 그려진 인물의 숫자는 모두 22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심사정 <전가락사> 1761년 지본담채 31.2x101.5cm 개인소장 

농사일은 풍속화의 단골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18세기 화가들이 일상생활을 소재로 풍속화를 그리기 이전부터 무일도(無逸圖)라는 이름으로 그려졌다. 무일이란 왕이 백성의 본업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으로 농사일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18세기 들면서 속화가 유행하면서 그 주요 소재 중 하나가 됐다. 18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화가인 심사정이 그린 <전가락사(田家樂事)>는 김홍도 그림에 훨씬 앞서 그려진 농가 풍속도이다. 


필자미상 <헌주>(회혼례첩, 부분) 18세기 견본담채 33.5x45.5cm 국립중앙박물관 


작자미상 <투호도> 19세기 견본담채 58.8x41.5cm 국립중앙박물관 


18세기는 조선 역사에서 드물게 보는 경제 호황기였다. 그래서 민간에서도 성대한 잔치가 자주 열렸고 아울러 이를 그림으로 그려 기념한 사례도 많았다. 작자 미상의 <회혼례첩> 역시 그중 하나다. 정교한 솜씨를 보면 도화서의 이름난 화원을 초청해 부탁한 그림인 듯하다.


신윤복 <여행하는 선비><휴식>(행려풍속도 병풍) 1813년 견본담채 각 119.3x37.3cm 국립중앙박물관

 


전 신윤복 <그네> 19세기 지본담채 57.0x37.5cm 국립중앙박물관 


신윤복은 춘화를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고 하고 또 유명한 그림 중에도 기생이나 기방을 소재한 것이 많이 있어 도시의 유흥문화를 주제로 한 풍속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그에게도 서민 생활의 풍속을 그린 그림이 많이 있다. <행려풍속도(行旅風俗圖> 병풍은 이 전시에 일반 공개된 신윤복의 새로운 풍속화로 1813년이란 제작 연도도 분명한 그림이다. 그가 1758년 무렵 태어난 것이 맞다면 이 그림을 그렸을 때 그의 나이는 56살이다. 화가로서는 한창 무르익은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김홍도의 산수묘사 필치를 한결 부드럽게 한 신윤복 독자의 터치가 엿보인다. 큰 회나무 아래에서 그네를 타는 여인들을 그린 <그네>는 아래쪽에 신윤복의 낙관, 인장이 있으나 필치가 엉성해 그의 그림으로 보기는 힘들다. 당시 신윤복 인기를 빌려 유사한 필치로 그의 이름을 팔아먹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미상 <신관 도임 연회도> (부분) 19세기 지본채색 140.2x103.3cm 고려대학교박물관 


<신관 도임연회도(新官到任宴會圖)>는 새로 사또가 부임한 것을 축하하는 연회 장면을 그린 것이다. 호피가 깔린 의자로 보아 새로 부임한 사람의 관직이 높아 보인다. 평양 감사는 평생도에 자주 그려지던 소재여서 이 그림도 그와 연관된 연회도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상석에 앉은 사또와 주위 내빈들의 도포에 음영처리가 되어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조선 시대 연회도에는 이 그림 아래쪽에 보이는 것처럼 음식을 준비하는 장면이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연회에서 즐기는 음식이 풍성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작자미상 <야연> <가두매점>(풍속도 병풍) 19세기 견본채색 76.0x39.0cm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 <기와이기> (단원 풍속화첩) 지본담채 27x227cm 국립중앙박물관 국보527호


새로 공개된 풍속화 중에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조선 후기의 풍습을 담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19세기의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린 풍속도 병풍은 김홍도나 신윤복이 그린 풍속 장면을 조합해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두매점>은 노상에서 중들이 북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끌어모아 점을 치는 장면으로 이는 파리 기메미술관에 있는 김홍도 작으로 전하는 병풍에 비슷한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 병풍의 <야연>에는 이제까지 풍속화에서 좀처럼 보지 못하던 내용이 들어있다. 방한모와 족두리를 쓴 남녀-여인은 다래 머리와 분홍 저고리 등으로 보아 기생인 듯하다-가 모여앉아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이다. 이는 당시 풍류 인사들 사이에 유행한 설리대자(雪裏對炙), 즉 한겨울에 야외에 나가 고기를 구워 먹는 유행 풍습을 그린 것이다. 설리대자를 그린 풍속도는 현재 이를 포함해 3점 정도가 알려져 있다.

18세기의 유흥문화는 신윤복도 신윤복이지만 김득신도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 그가 그린 <투전>은 당시 크게 유행한 투전판의 생생한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면 그 역시 투전판에 여러 번 참가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김득신 <투전> (긍재 전신첩> 지본담채 22.4x27.0cm 간송미술관  


작자미상 <감로탱화> 18세기 중엽 마본채색 200.7x193.0cm 국립중앙박물관   


18세기 중엽에 그려진 <감로탱>에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하단에 그려져 있다. 그중에는 길 가다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인에게 매 맞아 죽는 하인도 그려져 있다. 또 아이와 어미가 나란히 함께 죽은 경우도 그려져 있으며 칼 든 도적을 만나 비명횡사한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 풍속화’ 특별전은 조선 시대 풍속화를 보다 넓은 시각으로 재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기획이었다. 또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는 시점에 한국 전통 사회의 다양한 삶의 모과 그 현장을 그림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수월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전시였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스포츠와 박물관 전시의 디커플링 때문에 전체적으로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더욱이 히딩크 감독의 한국 축구팀이 보여준 예상 밖의 대선전(大善戰)으로 인해 전시는 적어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하기 힘들게 됐다.
그런데 축구 열기가 가라앉고 나자 사람들이 후회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풍속화 전시였을 뿐 아니라 주요한 작품이 모두 소개됐다는 점에서 매니아라면 놓칠 수 없는 전시였던 것이다.(이 전시 도록은 폐막 이후에 오히려 관심이 대상이 되면서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 됐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원복 미술부장은 전시 도중에 광주박물관장으로 발령 나는 바람에 전시의 폐막은 지켜보지 못했다. 그러나 월드컵에 휩쓸려 전시가 충분히 소개되지 않은 것이 아까워 그해 10월8일부터 11월10일까지 주요 작품을 광주박물관에 다시 소개하는 기회를 가졌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1.03.0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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