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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미술을 이끈 전시] 11. 중국 일본 편중의 미국에 한국 알린 순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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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5천년 미국 8개 도시 순회전
1978.5.1-1981.9.30



1978년 5월 1일 오후 6시.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골든 게이트 브릿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골든게이트 파크의 호수물 위로 금빛 석양이 찬란히 부서고 형형색색으로 핀 봄꽃에서 풍겨오는 감미로운 향기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일명 드 영 뮤지엄의 로비를 감쌀 때 나비넥타이에 정장 차림의 신사들과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의 숙녀, 귀부인 등 300여 명이 새로 개막하는 특별전의 테이프커팅을 기디라고 있었다. 

특별전 타이틀은 ‘한국미술5천년전’. 맨 앞줄에 나와 있는 사람은 카터 미대통령의 영식 제임스 얼 카터 주니어와 필립 하비브 미국무성 대사, 그리고 그 옆으로 미국의 문화와 아시아예술에 관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연방문예기금(NEA) 원장, 미국 아시아예술협회 회장, 샌프란시스코 관장 그리고 르네 다르장세 샌프란시스코 관장 등이 서 있었다. 그 옆으로는 한국의 김성진 문화공보부 장관, 김용식 주미대사, 최영희 국사편찬위원장, 송지영 문예진흥원장, 최순우 관장, 그리고 서울대 김원룡 교수, 건축가 김수근씨, 박물관협회 홍종인 회장 등이 보였다.  

이들은 테이프 커팅 이후 샌프란시스코를 기점으로 장장 2년 5개월 동안 미국 7개 도시를 순회할 ‘한국미술5천년전’에 대해 최순우 관장과 샌프란시스코 신정섭 총영사 등의 설명을 들으며 멀리 한국에서 건너온 264건 354점의 유물, 미술품을 찬찬히 관람했다. 이들 가운데 더러 동양 미술에 관심이 있는 미술 애호가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렇게 많은 한국의 국보, 보물급 유물과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 한국 문화재와 미술품이 소개된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한국전쟁의 휴전 이후인 1957년 12월에 워싱턴을 시작으로 미국 8개 도시를 돌면서 ‘한국고대문화전’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문화재, 미술품들이 순회 전시될 때 마지막으로 샌프란시스코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미국 어디에서나 전쟁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나라였다. 실제 그 무렵 한국은 전쟁 피해를 다 복구하지 못해 상당수의 판잣집과 상이군인들이 무시로 보일 때였다. 그런 나라에서 온 전시인데다 소개 작품 역시 고대유물 중심이어서 각별한 인상을 남겼다고는 쉽게 말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나 새로 한국 정부가 소개하는 한국미술5천년 전시는 과거와 영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은 발전도상국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신흥공업국으로 막 변신하는 순간에 있었다. 원래 이 전시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두 해 전 일본에서 개최해 대단한 성공을 거둔 한국문화 소개 전시의 버전 2로 일본 성공의 여세를 몰아 미국 내에서도 문화 한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심어보자고 기획된 전시였다. 그 배경에는 정치적인 문제이지만 박동선 게이트와 프레이저 청문회로 서먹서먹해진 한미관계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려보자는 양국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의 준비위원회 면면을 보면 실무급 이름이 즐비했던 일본 전시와는 달리 한국과 미국 정계의 최고위 인물들이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서는 영애 박근혜 씨, 최규하 국무총리, 김성진 문화공보부 장관, 김용식 주미 대사, 이선근 학술원 원장, 박충훈 한국교류재단 이사장 등으로 구성됐고 미국 측은 먼데일 부통령,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 리차드 스나이더 전 대사, 미국 NEA 조셉 듀피 의장이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외교 수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됐으나 어딘가 불안한 점이 없지 않았다. 일말의 걱정을 품고 있던 사람 중에는 1965년부터 관장직을 맡고 있던 르네 다르장세 관장도 있었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하노이, 타이완, 교토에서 수학한 동양미술 전공자로 중국계와 일본계가 대부분인 샌프란시스코의 동양인 사회는 물론 박물관에 호의적인 샌프란시스코의 미술 애호가들이 한국미술과 문화에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일지 반신반의하는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무사히 개막식을 마친 다음 날부터 전시는 일반 공개가 시작됐고 그 이튿날 그는 관내 직원의 첫 보고를 받고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첫날 다녀간 일반 관람객의 숫자는 무려 1천 500여 명을 넘었다. 이는 당시까지 드 영 뮤지엄이 가지고 있는 개막 첫날의 관람객 기록의 3배를 넘는 숫자였다. 다르장세 관장의 얼굴은 이로써 금방 활짝 펴졌는데 이런 표정은 전시 기간 내내 계속됐다. 5월 2일부터 일반공개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의 한국미술5천년전은 9월 30일 막을 내릴 때까지 4달 동안 전시되면서 무려 54만 7,159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다르장세 관장이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린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양’하면 누구나 당연히 중국과 일본을 가리켰던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에 한국이 낄 틈은 전혀 없었다. 이는 샌프란시스코 사람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샌프란시스코가 동양을 알게 된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잠깐 이를 살펴보고 가면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에 골드러시가 일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이때 서부의 개발이 동시에진행됐는데 이를 위해 중국 남부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건너왔다. 그리고 1867년에는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잇는 대륙횡단 철도 부설사업이 정식 착공됐고 이를 맞춰 파나마와 샌프란시스코를 운항하던 퍼시픽 메일 스팀쉽 컴퍼니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정기선 사업에 뛰어들면서 샌프란시스코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즉  서부에 필요한 중국인 노동자를 실어 나르는 또다른 거점이 샌프란시스코가 된 것이다. 이 회사의 태평양 항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평양을 건너 요코하마에 기항하는데 요코하마는 알다시피 일본의 개항 이후 對서구 교역의 중심지로 부상한 곳이다. 이곳에 잠시 기항한 홍콩으로 가 광동성 일대의 중국인 노동자를 태우고 다시 요코하마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되돌아오는 것이 노선이었다. 당시 태평양 노선이 얼마나 호황이었는지 캐나다 철도회사인 캐나디안 익스프레스도 얼마 뒤에 뛰어들어 뱅쿠버-요쿠하마-홍콩 노선을 취항했다. 

여담이지만 1894년에 요코하마에서 뱅쿠버 행 캐나디안 익스프레스사의 엠프레스 오브 차이나 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 사람 중에는 나중에 세계적인 골동회사를 일군 25살의 야마나카 사다지로(山中定次郞)도 들어있었다. 뱅쿠버 행은 샌프란시스코 행 보다 뱃삯이 조금 쌌는데 이때 그는 2살 아래의 사촌동생 야마나카 시게지로(山中繁次郞)와 함께 태평양을 건넜고 이어 기차로 토론토를 거쳐 뉴욕으로 가 오사카 거점의 야마나카 상회의 뉴욕 지점을 개설했다. 그리고 이후 이 둘은 뉴욕에 이어 보스톤, 애틀란타 시티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런던, 파리 지점을 잇달아 개설하면서 야마나카 상회를 세계의 야마나카로 만들었다. 야마나카라는 이름은 국내에도 낯설지 않다. 1936년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열린 경매에서 훗날 국보 제294호로 지정되는 백자청화철채 초충난죽문 병을 놓고 전형필 선생과 치열한 경합을 벌인 상대가 야마나카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일찍부터 열린 태평양 항로로 인해 샌프란시스코에는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고 자연히 그를 바탕으로 차이나타운, 재팬타운이 생겨났다. 특히 차이나타운은 뉴욕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활동적인 것으로 유명했다. 차이나타운이나 재팬타운뿐만 아니라 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중국과 일본 문화를 접촉하고 있었다. 한 연구자에 의하면 중국 물건이 뉴욕에 전시된 것이 18세기 말부터라고 하지만 이는 무역상이 실어온 잡화에 불과한 것이고 본격적인 중국과 일본의 미술품 내지는 공예품이 미국 사회에 알려진 것은 1876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해 미국은 독립 100주년을 맞아 필라델피아에서 성대한 만국박람회를 개최했다. 이 박람회는 6개월 동안 열리면서 1천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관람했다. 1867년 파리만국박람회 때부터 박람회를 자국 미술 공예품의 수출 기회로 여긴 일본은 필라델피아에도 민관 공동으로 도자기, 견직물, 그림, 조각, 분재 등을 적극 소개했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일본의 근대미술 발전에 큰 공헌을 하게 되는 동경대학 법학과교수 어네스트 페놀로사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 동생과 함께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에 가서 처음 일본미술을 보고 매료되기도 했다. 

청나라 역시 이때 정부 주도로 처음 만국박람회에 공식 참가했다. 그 이전까지 런던(1851년)과 빈(1873)의 박람회 때에는 중국에서 무역을 하던 유럽 상인들이 대리인이 돼 중국 물건들을 출품했다. 필라델피아 때는 황실의 친왕을 정부 대표로 파견하고 건축 기술자도 보내 당당한 파빌리온을 짓고 중국 전통공예품, 서화, 도자기 그리고 잡화 등을 대거 선보였다. 이 박람회를 통해 미국 동부에서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동양 미술공예품의 붐이 크게 일었다. 그리고 그에 더해 야마나카 사다지로의 일행이 뉴욕에 가게를 오픈하고 동양에 관심이 많은 상류층 컬렉터에게 수준 높은 중국과 일본의 미술품을 소개한 것이다. 이때 야마나카를 드나든 주요 고객 중에는 철도차량 제작으로 큰돈을 번 찰스 랭 프리어와 석유왕 존 록펠러 그리고 보스톤 귀부인 컬렉터로 유명한 이사벨 스튜어트 가드너 등이 있었다. 이들의 컬렉션은 나중에 워싱턴 스미소니언의 프리어 갤러리,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중국미술 컬렉션 그리고 보스톤 이사벨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의 모태가 됐다. 

샌프란시코의 아시아 박물관도 말하자면 만국박람회와 관련이 깊은데 189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박물관이 설립됐다. 이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샌프란시스코 클로니클지의 사주 마이클 드 영으로서 드 영 뮤지엄이란 이름은 이로 인해 붙여졌다. 이 박물관은 1960년대 대규모 증축과 함께 1만여 점이 넘는 동양과 일본의 미술품을 기증받으며 서부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굴지의 동양미술 컬렉션으로 발돋움했다. 통 크게 이를 기증한 사람은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에이버리 브런디지였다. 그는 프리어나 록펠러에 결코 뒤지 않는 동양미술 마니아로 중국과 일본에 갈 때마다 많은 미술품을 구입했는데 한국 출장 때에도 당시 고미술 가게가 밀집해 있는 충무로를 빼놓지 않고 들렀다고 한국의 나이많은 고미술상들은 회고하고 있다. 그는 소장품 기증과 함께 기금마련을 위해 미술품 일부를 판매하고자 했는데 이때 내놓은 최고급 미술품의 하나가 지금 국보 제133호로 지정돼있는 청자진사 연판문 표형주자이다.(이 주전자에 대해서는 연재 5회째의 호암수집한국미술특별전에 소개했다.) 


금령총출토 기마인물형토기, 신라 5-6c, 높이 23,5cm, 국립중앙박물관


석조 사자상 기둥, 통일신라 8-9세기, 높이 99cm, 국립경주박물관


금동용두간 수식, 통일신라 8-9세기, 높이 65cm, 국립경주박물관


그가 기증한 방대한 양의 미술품은 메인을 보면 역시 중국과 일본이었다. 그래서 동양계가 많이 사는 샌프란시스코라고 해도 박물관에 가서 한국미술을 볼 기회는 많지 않았고 또 그냥 보통의 생활 속에서도 한국미술이나 문화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런 시절에 중국 일본 편중의 동양에 대한 인식을 단번에 바꾼 大이벤트가 바로 한국미술5천년전이다. 제임스 얼 카터를 비롯해 이 전시를 본 거의 모든 사람이 외부의 영향 아래에서도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킨 것이 놀랍다고 감탄했다. 전시 내용은 신석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소개됐으며 전시품은 일본 전시와 달리 중국과 일본이라는 기본인식이 있는 미국적 사정을 고려해 한국적인 특색이 훨씬 잘 부각되는 유물, 작품들로 선정하기도 했다. 


철조여래좌상, 통일신라 8-9세기, 높이 150cm, 국립중앙박물관 



소개작은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즐문토기(빗살무늬토기)에서 시작돼 청동기 시대와 철기시대의 발굴 유물을 거쳐 신라의 황남대총과 천마총(도록 표지사진) 2점의 금관과 백제의 무령왕릉 출토의 금동관식과 서수 유물, 고구려의 불상 등이고, 통일신라 시대는 불상, 석조 조각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됐으며 고려에는 불상과 청자 그리고 조선의 백자와 서화 순으로 소개됐다. 마지막으로는 근대화가 이용우의 도봉산 아집도가 출품됐다. 


 청자 투각연화문 향로, 고려 12세기초, 높이 15.5cm,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상감진사 포도동자문 주자와 승반, 고려 12세기말, 높이34.2cm,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청화철채 초충난죽문 병, 조선 17-18세기, 높이 41.6cm, 간송미술관 



백자철화 포도문 항아리, 조선 17세기, 높이 53.2cm,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9월 30일 샌프란시스코 전시를 마친 한국미술5천년전은 그후 한 달, 두 달 사이의 간격을 두고 시애틀 미술관(1979.11.1.-1980.1.30.), 시카고 미술관(1980.2.16.-4.27), 클리블랜드 미술관(1980.6.10.-8.10), 보스턴미술관(1980.916-11.30),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1981.1.5.-3.15), 캔자스시티의 넬슨앳킨스미술관(1981.4.17.-6.14)의 7개 도시의 미술관을 차례로 순회했다. 한국미술품이 순회 전시된 미술관은 미국에서도 동양미술 컬렉션으로 이름난 곳들이다. 이들을 일부러 골랐는데 메트로폴리탄를 보면 이곳은 서양의 중세, 근세 그리고 중동과 나란히 록펠러 수집 기증의 동양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보스톤 미술관은 미국 내에서 가장 먼저 동양 미술에 관심을 기울인 미술관인데 페놀로사는 미국으로 돌아온 뒤 보스톤 미술관의 동양부장을 맡았으며 일본에 있을 때 제자로 키운 오카쿠라 덴신을 데려와 자신의 후임으로 삼으면서 이곳은 미국의 어느 미술관보다 일본과 중국 미술을 체계적으로 수집했다.  


정선 <청풍계> 조선 18세기, 견본수묵, 세로 133.2cm, 간송미술관


김홍도 <무동> 조선 18세기, 세로 28cm, 국립중앙박물관


정선 <인왕제색도> 조선 18세기 지본담채 높이 78.8cm 호암미술관



작자미상 <맹호도> 조선 18세기, 견본담채, 높이 96cm, 국립중앙박물관


또 클리블랜드와 넬슨앳킨스미술관 역시 미국 내에서는 보스톤 못지않게 중국과 일본미술로 유명한데 이들은 대공황시대에 시장에 쏟아져나온 동양미술품을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을 때 모아 대컬렉션을 이뤘다. 대표적인 컬렉션을 예로 들면 넬슨앳킨스에 있는 이성(李成)의 <청만소사도>는 중국에서 수묵산수화가 완성된 시기인 북송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현재도 중국 대륙에는 진작 이성 그림이 없을 정도이다. 클리블랜드는 1958년부터 1983년까지 중국미술 전문가인 셔먼 리가 관장을 지냈는데 6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에 있던 고려의 나한도와 조선전기 김시의 <한림제설도>를 구입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동양미술에 정통한 셔먼 리는 록펠러가 동양미술품 컬렉션을 이룰 때 옆에서 조언한 어드바이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미술5천년전은 이와 같은 동양미술 전문의 미술관을 순회하면서 내부 전문가는 물론 해당 도시의 시민들에게 당시까지 낯선 동양의 새로운 미술을 소개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샌프란시스코가 그랬던 것처럼 이 전시는 가는 곳마다 대환영을 받았서 원래 7개 도시를 끝으로 귀국할 예정을 한 차례 늦춰 1981년7월15일부터 9월30일까지 워싱턴 스미소니언에서 연장 전시를 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장장 2년 5개월에 걸쳐 미국 내 8개 도시를 순회한 한국미술5천년전은 121만여 명의 미국 관람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미국 전시를 마치고 다시 귀국했을 때 미국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전과 달리 크게 달라진 것처럼 한국 내의 사정도 많이 달라져 있었는데 우선 전시가 귀국했을 때 한국은 유신정권의 제4공화국이 끝나고 제5공화국으로 바뀌었고 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었으며 새로 보안사령관 출신의 전두환 씨가 대통령으로 선출돼 있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한국미술5천년전은 그해 11월9일부터 12월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귀국보고전이 열렸다. 그리고 이때 미국의 각 도시를 순회할 때 해당 도시의 신문에 소개된 한국미술5천년 소개 기사만을 따로 모은 책자가 함께 발간됐다. 


대성공을 거둔 미국 순회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이외에 숭실대, 동아대, 충남대, 동국대, 이화여대, 고려대, 동아대, 서울대 등이 수장품을 출품해주었고 미술관으로는 간송미술관과 동원미술관, 호암미술관이 작품을 내주었다. 그리고 개인 컬렉터로서는 김동현, 최수정, 진홍섭, 남궁련, 윤장섭, 홍두영, 강수양, 김종하, 김윤, 손세기, 이동주, 김태형, 이후락 씨 등이 전시 출품을 도왔다. 한 마디 덧붙이면 보스턴 전시때 한국미술을 소개하는 강연을 했던 강우방 학예과장은 강연이 계기가 돼 특별히 하버드 대학 박사과정에 편입해 수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y)      


 

이원복, 윤철규 관리자
업데이트 2020.07.0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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