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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미술을 이끈 전시] 7. 일본에 당당한 文化大國을 알리다-한국미술5천년전 일본 3개도시 순회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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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5천년전 일본 3개도시 순회전시
1976년2월24일-7월25일
(교토 2월24일-4월18일, 후쿠오카 4월27일-5월30일, 도쿄 6월8일-7월25일)


영어 주빌리(jubliee)는 특정한 기념주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독교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죄를 사해주거나 부채를 탕감해주는 전통이 있는데 여기서 유래해 사회에서도 어떤 일의 25년째나 50년째 그리고 100년째가 되면 뜻 깊은 행사를 열어 그 일을 기념하게 됐다. 

이러한 기념주기는 나라 사이의 외교에도 있다. 몇 년 전 한국은 중국과 수교 25주년을 맞이했다. 한국과 중국은 과거 동아시아 역사의 핵심이라고 할 만큼 관계가 깊었으나 근대 들어 조선의 식민지, 일제의 대륙침략 그 후 남북 분단과 전쟁 그리고 냉전 체제 속에서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나뉘어 적대관계로 변했다. 그러던 것이 1992년 국가 대 국가의 대등하고 선린우호 관계를 새롭게 다짐하는 수교조약이 맺어졌다. 이것이 한중수교인데 그 후 두 나라의 관계는 교역과 인적 교류 등 다방면에서 과거처럼 뗄 레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지게 됐다. 그러던 가운데 맞이한 것인 한중수교 25주년이었다. 보통 사이라면 이런 기념주기에 맞춰 성대한 행사가 열리는 게 당연하겠지만 당시 한국과 중국 관계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사드의 국내배치로 중국이 한국 상품을 보이콧하고 일체의 문화행사에 응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이렇게 썰렁한 외교적 기념주기를 보낸 것은 실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데자뷔 같은 일이 40여 년 전에도 있었다. 1975년은 한국 외교로 보면 한중수교 25주년보다 훨씬 비중이 컸던 한일국교 정상화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 한국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 연평균 9.7%라는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던 때였다. 이런 사정이 보면 일본에서도 기쁘게 성대한 행사에 응할 만 했지만 사정은 정반대였다. 그 무렵 한일관계는 사드만큼의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보다 두 해 앞서 1973년 도쿄의 한 호텔에서 김대중 씨가 납치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의 배후에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내에서는 주권침해 사건이라며 언론이 이 사건을 계속해서 거론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음 해에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한 박정희 암살미수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살해됐는데 일본 경찰은 그 전해에 일어난 김대중 납치사건 때 중앙정보부 쪽에서 정보를 전혀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한 보복으로 수사협조에 미온적으로 나와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들끓었다. 또 1975년 들어서는 2월에 유신 정부는 반정부운동을 막기 위해 유신헌법 찬반투표를 실시해 일단 재신임을 받았으나 그 무렵 일본에는 익명의 기고자인 T.K생이 쓴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란 글이 진보잡지 세카이(世界)에 연재되면서 한국 정부의 반정부운동 탄압양상이 낱낱이 전해지고 있었다.(T.K생은 훗날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로 알려졌다)

이렇게 양국관계가 어수선한 이유로 국교 정상화 10주년은 아무 행사도 열리지 않은 채 지나갔다. 그런데 그 다음해 봄에 느닷없이 한국미술을 대거 일본에 소개하는 ‘한국미술 5천년전’이 열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미술이 일본에 소개된 적은 없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두고 봐도 그랬는데 당시까지 한국미술이 해외에 소개된 것은 고작 두 번에 불과했다. 한번은 1957년의 일로 이때 한국미술품이 2년에 걸쳐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8개 도시에 순회 전시됐다. 그리고 1961년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 5개국의 순회 전시가 열렸다. 그러나 이 두 전시는 모두 상대의 요청으로 열린 전시였다. 6.25 전쟁 때 참전하고 이후 경제 원조도 보내준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를 자국민들에게 소개하자 그쪽에서 먼저 기획된 전시였다. 이런 제의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주도적으로 한국미술을 해외에 적극 소개하겠다는 마인드 자체가 없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느닷없어 보이기도 했던 ‘한국미술5천년전’이지만 실은 ‘어쩌면’이라는 가정 아래 한국과 일본의 박물관 사이에서 조용히 국교정상화 10주년 기념을 염두에 두고 사전에 준비한 행사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아이디어가 처음에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의 국립박물관과 주최측의 하나였던 아사히신문 관계자들이 1975년 10월중순 서울에 와서 우리 쪽 박물관 관계자들과 만나 전시에 관한 양해각서를 주고받았다. 

이렇게 해서 1976년2월부터 7월까지 후쿠오카, 교토, 도쿄의 3개 도시를 순회하는 특별전의 기획이 스타트됐다. 이 전시는 이전의 해외전과 달리 처음부터 한국미술을 통해 한국 고유의 문화와 예술의 어떤 점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전시였다. 진행을 주도한 최순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전시 구성과 관련해 한 기고에서 ‘일본에 동양미술사 속에 한국미술이 이룩한 창조적 지위와 역할을 분명히 보여주어 그 진실을 실감시켜주고 싶었다’고 말하며 한국미술의 독자성에 초점을 맞춘 기획임을 분명히 했다. 

최 관장은 또 기획에 있어 ‘그동안 모국의 문화나 역사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재일 65만 동포는 물론 그들의 2세, 3세들에게까지 자신들의 발판과 자아를 되찾을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됐으며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도 밝혔다. 그래서 전시에는 일제 36년이라는 설움을 가져다준 일본에 당당하게 내세워 자랑할만한 문화와 예술 작품을 중심으로 꾸며져 일본에 살면서 모국의 자랑스러움과 대견함을 실감할 수 없었던 수십만 재일동포들을 위해 한국문화 그리고 미술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유물, 작품들을 대거 포함시켰다. 물론 거기에는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식민시대의 향수에 젖어 한국을 우습게 여기는 일본의 일부 그릇된 시선에 대해서도 한국 문화가, 미술이 이렇게 풍성하고 찬란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자는 의도 또한 십분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전시 구성품은 멀리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작돼 신석기, 청동기 시대 이래의 발굴품과 부장품에서 시작해 근세의 회화 명작까지 총 208종의 348점으로 구성됐다.(빠진 장르가 있다면 서예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품은 다음과 같다.

- 선사시대 유물 19종 81점 
- 삼국시대 고분 출토품 32종 96점 
- 삼국에서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토기 17종 22점 
- 삼국에서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와전 6종 6점 
- 불교관계 금속공예품 9종 14점 
- 삼국에서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불상 21종 21점 
- 조선시대 회화 34종 36점 
- 고려와 조선의 도자기 69종 71점 
- 반구대 암각화 탁본 1점 

전시 타이틀을 ’한국미술5천년전‘이라고 한 것에 대해, 한편에서는 조몬(縄文)토기 1만년 운운하는 일본에 대항하려면 ’5천년도 약과다‘라는 자긍심이 개입됐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이는 전적으로 오해다. 그보다 앞서 1973년에 경복궁에 새 국립박물관이 개관하면서 특별전으로 ’한국미술 2천년전‘을 열었는데 이는 삼국시대 유물부터 한국미술을 소개한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일본 전시는 그보다 앞서 신석기시대 유물에서 시작이 됐으므로 당시 학계에서 통용되던 신석기시대 BC3000년 설을 염두에 두고 ’한국미술 2천년‘에 기원전 3천년을 더해 5천년으로 정한 것이다. 

아무튼 고대유물에서 근세의 회화, 도자기까지 망라된 이 전시는 한때 자신들이 식민지로 지배했던 한국의 고유문화에 대해서는 무시 내지는 오해가 있었는데 이는 당시 수상인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내각총리대신이 전시 도록의 인사말에서 ’일본사람은 이 이웃 나라의 훌륭한 傳統文化에 대해서 유감스럽게도 필요한 지식과 이해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라고 토로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이뤄낸 수준 높은 예술의 세계를 제대로 일본에 소개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그 문화를 재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다뉴세문경> 청동기 시대 조선남부출토 직경21.2cm 숭전대학교 박물관 


<순은 고배> 경주 98호북분 출토 5세기 높이9.7cm 국립경주박물관 


<유리배> 경주 천마총 출토 5-6세기 높이7.5cm 국립경주박물관  


<곡옥> 5-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개막일에는 일본 정치계와 문화계의 명사들가 대거 초대됐는데 첫 테이프를 끊은 교토 전시에는 다이쇼 천왕의 막내아들인 미사카노 미야 친왕(三笠宮親王)이 참석하기도 했다. 시와 음악에 재능이 있고 또 오리엔트 역사가이기도 한 미사카노 미야는 전시품 중에서 고분시대 유물 중에서도 특히 중동 문화와도 연관이 깊은 <순은제 고배(高杯)>, 천마총과 경주 98호분에서 출토된 <유리잔> 그리고 미추왕릉 지구에서 나온 보석이 상감으로 박힌 <단검> 등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 왕실이 백제계 후손이란 것은 일본에서도 숨기지 않는 이야기이며 또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3종의 신기(神器)가 보검, 거울, 곡옥(曲玉)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삼종 신기의 기원이랄 수 있는 유물도 전시품에 들어 있었는데 대구 비산동 출토의 <청동검>과 숭실대박물관 소장의 <다뉴세문경> 그리고 미추왕릉 지구 출토의 <곡옥> 등은 특히 왕실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런 유물 외에도 일본의 고고학자뿐만 아니라 고고학 매니어까지 눈에 크게 뜨고 감탄한 것이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 유물이었다. 일본은 무령왕릉이 발굴된 다음 해인 1972년에 나라 아스카무라(明日香村)의 다카마쓰즈카(高松塚) 고분에서 채색인물 벽화가 발굴돼 일본열도 전체가 고고학 붐이 크게 일었는데 다카마쓰즈카 발굴 직전까지 부러워했던 것이 바로 무령왕릉 발굴의 출토품이었다. 이 전시에는 <금제 관모장식(冠飾)>과 <귀걸이 장식(耳飾)> 그리고 <진묘수(鎭墓獸)>까지 10건 13점이 소개됐다. 


<상감금장 단검> 경주 미추왕릉지구(계림로 14호분출토) 길이36.0cm 국립경주박물관  


<금제 관식> 무령왕릉출토 6세기초 높이30.7cm, 23.5cm 국립공주박물관   


<금동미륵반가사유상> 7세기 높이90.0cm 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이런 고분 출토품 보다 일본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국보83호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었다. 이는 교토 우즈마사(太秦)의 고류지 절(広隆寺)에 있는, 과거 일본 국보1호라고 불리운 <미륵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꼭 닮은 불상이다.(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관련 법령을 재정비하면서 국보에 번호를 붙이는 것을 폐지했다) 우즈마사는 예부터 도래인(渡來人), 즉 신라의 삼국 통일시대에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대거 거주하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두 불상을 보면 나무로 만들었는가 금동으로 만들었는가의 차이만 있을 조형의 기본 발상이 꼭 같음을 알 수 있다. 

고고 유물과 불상 이외에 일반인들에 널리 관심을 끈 역시 도자기였다. 일본은 무로마치(室町 1336-1573)와 모모야마(桃山 1573-1591) 시대를 거치면서 다도가 하나의 문화와 교양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기를 비롯한 도자기 전반에 대한 애착이 일반화됐다. 다인들이 애호하는 조선 도자기는 조선 남부의 민간 가마에서 만든 막사발 계통이지만 고미술에 관한 한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 일본 골동계에서는 고려의 수준 높은 청자와 조선 시대의 꾸밈없는 백자를 더할 나위 없이 좋아했다. 이 전시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일명 천학매병(千鶴梅甁)으로 불린 간송미술관의 <청자상감 운학문 매병>과 진사 청자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최우 무덤출토의 호암미술관 소장의 <청자 진사채 연판문 표형주전자>가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유물로 소개됐다. 

백자는 청자보다 다양하게 소개됐는데 그중 하이라이트로는 일본 골동계에서 고소메(古染)라고 부르면서 후기의 청화백자에 비해 열 배는 더 높은 수준으로 보았던 조선 초기의 청화백자를 대표하는 <청화백자매죽문 항아리>와 분청사기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분청사기 인화문 철회어문 병> 등이 출품됐다.  

한국미술5천년전에는 의외로 서화 가운데 서예가 빠졌지만 그림은 양은 적지만 조선시대 전시기를 고루 소개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망라됐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부터 거론하면 일본의 국민작가로 사랑받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대표작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일 정도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라로 유명한데 그를  감안한 선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변상벽의 <묘작도>가 소개돼 많은 관심을 끌었다. 고양이의 나라라고 해도 일본에는 이런 대폭에 고양이를 그린 화가는 없었다. 


정선 <인왕제색도> 1751년 78.8x138.0cm 이병철 소장  


김수철 <송계한담> 19세기중엽 33.1x45.4cm 간송미술관 


변상벽 <묘작도> 19세기말 93.7x42.9cm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일본에는 없는 위엄 당당한 호랑이를 그린 18세기 그림도 출품됐으며 또 18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정선(鄭敾)의 대표작 <인왕제색도>도 소개됐다. 아마도 해방 전 서울에 살았던 일본인이라면 총독부 건물에서 한눈에 보였을 인왕산을 모습을 새삼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자미상 <호랑이> 18세기 96.0x55.1cm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12세기중엽 높이42.3cm 간송미술관 


<청화백자 매조문 항아리> 15세기 높이16.5cm 개인 


그 외 김홍도의 풍속화첩과 <마상청앵도> 그리고 신윤복의 <미인도>와 풍속화첩이 소개됐다. 그리고 이들 만큼 눈길을 끌었던 것이 수채화 같은 말쑥함으로 색다른 화풍을 선보였던 조선 후기의 김수철 그림이다. 그의 그림은 어딘가 일본적인 감성과도 맞닿아 있는 듯이 보이는데 <송계한담>과 <산수도> 등 2점이 소개됐다. 

일본에 본격적으로 한국미술을 전하고자 했던 이 전시는 민간에서도 적극호응해 국립중앙박물관 외에 국내 13곳 기관과 15명의 개인소장자가 흔쾌히 소장품을 내놓았다. 이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관: 서울대, 고려대, 동국대, 경희대, 숭전대, 동아대, 간송미술관, 호암미술관, 동원미술관, 통도사, 표충사 
개인: 김영휘, 김윤, 김형태, 김동현, 곽영대, 남궁련, 박준형, 손세기, 윤영선, 윤잡섭, 정무묵, 최규진, 차명호, 홍두영, 황규동 

이들의 도움으로 국보만 43점이 포함된 이 전시는 교토, 후쿠오카, 도쿄를 순회하면서 내내 화제의 대상이 되며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 관람객 수를 보면 교토 24만1989명, 후쿠오카 6만8856명, 도쿄 26만2356명으로 5개월 동안 연인원 57만3201명이 관람했다. 

전시 기간 내내 주관사인 아사히신문은 논설위원까지 동원한 소개기사, 해설 기사를 내보냈는데 나중에 미술평론가로 변신해 다마(多摩)대학 교수까지 지낸 요네쿠라 마모루(米倉守) 당시 아사히신문 학예부기자는 이 전시에 대해 ‘36년간의 일본 식민지배, 다시 한국 동란의 격동의 역사 속에서 오히려 더욱 굳건히 자국의 미술문화를 지켜온 한국인의 발자취’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 때는 군사력으로 어느 때는 경제력으로 귀중한 이 나라의 문화유산을 빼내 간 나라에 그런 나라에 가서 보여주기보다는 일본이 먼저 그 문화유산을 한국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일이 앞서야 한다’는 비판이 한국 내에 있었음을 자신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문화 원류(源流)에 공통의 기반을 가장 많이 가진 양국이 미술문화를 통해 참된 우호(友好)를 증진하는 실마리가 되게 하려는데 의의를 두었기 때문에 전시 자체가 성사되었다’는 취재 뒷얘기를 밝히기도 했다. 

이 전시는 요네쿠라 기자의 말대로 ‘일본의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일’도 애초에 논의가 된 듯했으나 당시만 해도 협량한 국내 여론으로 인해 일본미술의 교환전시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한국에서 일본미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2002년 월드컵의 한일 공동개최 때가 처음이다) 대신 국내 반대를 무마하듯 전시품들은 귀국 직후 곧 국내 보고전을 통해 일반에 소개됐다. 이 전시는 이 8월10일부터 8월2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일간 열렸다. 
여담이지만 반년에 걸친 이동전시로 인해 각각의 유물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피로도를 보였는데 회화의 몇몇 작품은 장시간 전시 노출로 인해 일부 색상에 변색 기미를 보였을 정도였다.(y)


귀국전시 도록 표지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20.05.3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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