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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린의 전통공예이야기] 16. 사람들의 필요와 취향이 반영된 생활의 필수품, 화로(火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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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세린

발열을 기본 원리로 하는 화로(火爐)는 조선시대 일상 생활의 필수품이었다. 지금의 난로처럼 생활공간의 공기를 훈훈하게 만들어주고,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사람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줬다. 또, 전기다리미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전기다리미의 역할을 했던 인두를 화로에 데워 옷을 다릴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실내에서 물을 끓이거나 가족끼리 도란도란 화로 주변에 둘러 앉아 밤이나 고구마, 감자와 같은 음식을 화로에 넣어 구워먹을 때도 사용했다. 조선시대 화로는 이 외에도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없이 많은 일을 해냈다.

화로의 기본적인 역할과 용도는 선사시대부터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학계에서는 화로의 근원을 석기시대 화덕으로 보고 있다. 실제 신석기시대 움집터에서는 화로가 놓였던 자리도 발견되기도 해 화로의 사용 역사는 매우 길다. 화로는 향로(香爐)와 형태, 용도, 구동원리에서 일정부분 겹치는 부분이 있어 분류에 혼선이 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유물을 살펴보면 보통 용도가 확인된 유물을 제외하고 구연부가 넓고 뚜껑의 각 면에 큰 구멍이 있거나 합처럼 완전히 닫히는 뚜껑을 지닌 형태를 화로, 뚜껑에 작은 구멍들이 다수 뚫려있거나 제례에서 사용되는 원형의 동체에 귀와 다리가 달린 기물을 향로로 구분하기도 한다.

생활 필수품이었던 만큼, 현재 우리가 취향에 맞게 다양한 디자인의 난로를 사용하는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사용자의 취향과 신분, 화로의 용처를 반영한 다채로운 형태와 기법으로 장식된 화로가 사용되었다. 금속화로는 입사, 음각, 무문 그리고 원형, 육각형, 사각, 반형 등 여러 형태와 장식으로 제작되었다. 철로 제작된 입사유물은 대부분은 쪼음입사로 기물의 면을  장식했다. 백동으로 제작된 러시아 표트르대제인류학민족학박물관 소장 <백동제오동입사수로>(19세기 중-후반)는 오동으로 끼움입사 시문을 해 흑백의 장식적 대비를 갖췄다. 그 외 곱돌로 제작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곱돌은입사화로>는 곱돌면에 음각을 하고 끼움입사로 은을 장식했다.


 <백동제오동입사수로>, 19세기 중-후반, 러시아 표트르대제인류학민족학박물관


<곱돌은입사화로>, 18-19세기,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시대 입사장식 화로는 17세기 이후 철로 만들어진 유물을 중심으로 사각, 가운데 둥근 요철이 있는 사면체의 항아리형, 壺형, 육각 등 다양한 형태의 화로가 전해진다. 또 아래의 기록과 같이 조선 전기부터 입사로 장식한 화로가 사용되었음이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정의공주가 은입사청동화로 하나를 바쳐, 경창미(京倉米) 350석을 내려 주어 이를 보답하였다.” - 『세조실록』 권45, 세조 14년(1468) 1월 26일

이 기록은 세조의 동생인 정의공주(貞懿公主, 1415-1477)가 세조에게 청동으로 제작한 은입사 화로 하나를 바쳤다는 기록으로, 입사로 장식된 화로가 경창미를 내려 보답할 정도로 당시 사회에서 일정부분 높은 가치를 지닌 기물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이 화로가 현전하지 않아 형태와 세부 문양은 확인할 수 없다. 
현재 전해지는 입사장식 화로는 조선 후기 유물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동체는 철, 백동, 곱돌로 만들어졌고, 입사장식은 은이나 오동을 사용했다. 동체가 일체형으로 제작된 경우도 있고, 동체 전체는 일체형으로 제작한 후 그 안에 발열재인 숯 등을 담는 그릇을 하나 더 넣은 경우도 있다. 아마 일체형 유물도 발열재를 담는 그릇이 함께 구성되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것들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철제은입사육각화로>의 동체와 화로 그릇, 18-19세기,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주물기법을 이용해 거푸집으로 화로 전체를 떠내기도 하고, 동체, 다리나 구연부 일부, 손잡이는 따로 떠낸 뒤 동체와 조립하기도 했다. 뚜껑은 있는 경우도 있고 전해지면서 사라졌거나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없는 경우도 있다. 현재 전해지는 뚜껑이 없는 화로 중 상당수는 구연부 넓은 입술 부분이 뚜껑을 놓는 부분처럼 계단과 같이 얕게 높이 차이를 두고 있다. 이러한 화로들은 본래 구성은 뚜껑과 동체가 한 세트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체를 장식하는 문양의 입사시문은 뚜껑이 있는 경우 뚜껑과 동체 모두에, 동체만 있는 경우에는 동체 각 면에 입사시문이 이뤄졌다. 기본적으로 뚜껑과 동체의 면을 각각 프레임처럼 구획해 하나의 화폭처럼 사용했다. 기물 면에 손잡이가 있는 경우 그 외의 부분에 각각 기명절지, 대나무, 난초 등 다양한 문양을 장식해, 화로를 구성하는 각 부품이 지닌 기능적인 부분과 장식을 조화롭게 살렸다.


<철제은입사화로> 손잡이 부분 장식, 18-19세기, 국립민속박물관

각 면에는 각기 문양소재들을 시문했다. 회화풍 소재의 고사인물문, 십장생문 등을 시문한 후 그 주변을 프레임처럼 입사시문해 구획한 뒤 주변에 기하학문을 시문하기도 하고, 중심에 문자문을 시문한 후 동일하게 구획한 뒤 주변에 기명절지문, 칠보문이나 당초문, 뇌문, 식물문 등을 시문하기도 했다.


<철제은입사사각화로>, 17세기 후반-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0.06.04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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