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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노암의 청년작가 시리즈] 이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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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빈더(Rainer Werner Maria Fassbinder)의 영화나 빔 벤더스(Ernst Wilhelm Wenders)의 영화는 20세기 인간이 처한 피할 수 없는 실존의 깊은 우울과 고독을 담고 있다. 인간의 내면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해체되어 황폐한 황무지처럼 변해버렸다.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Paris, Taxas, 1984)’도 깊은 우울과 벗어날 수 없는 실존의 상황을 반복한다. 과거의 사건도 단지 지나버린 사건일 뿐 결코 해결되지도 치유되지도 않은 채 깊은 상처 그대로 남겨져 있을 뿐이다. 짐 자무시(Jim Jarmusch)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1984)’ 또한 유머러스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면의 벗어날 수 없는 고독과 우울을 흑백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적 흥미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영화들은 일반적인 기승전결의 스토리라인을 따르지 않는다. 시작과 끝, 갈등과 클라이막스 등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영화 전체가 풍기는 그 분위기,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느끼면 그만인 것이다. 경험은 반복되는 것인가. 이채영의 풍경은 그와 닮아 보인다. 


이채영 <갈림길> 한지에 먹, 73×117cm, 2014


"항상 지나다니던 한 길가의 그 집이 그날따라 이상하게 낯설게 보일 때, 이 모든 순간 '일상'이 우리를 느닷없이 강타하며 '너와 나의 개별적인 일상'이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감정이 반응한다." - 작가노트

풍경에는 수평의 구조가 강조되는 건물이나 벽과 나무와 덤불과 낮은 높이에서 조망하는 저수지나 늪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마치 식물학자의 식물도감처럼 풀과 나무, 나뭇잎 하나하나를 일일이 채집하듯 기록한다. 감정을 절제한 상태에서 작업한다. 가능한 채색을 단조롭게 하거나 완전히 제거한 모노크롬의 채도와 대상의 정교한 관찰과 기록으로 채워진다. 그리지 않은 여백마저 미세하게 붓질로 가득찬 것처럼 느껴진다. 늪이나 저수지, 황량한 벌판 위나 도시 외곽에 띄엄띄엄 자리한 오래된 창고들, 공사장을 가린 임시 방벽과 잡초들이 조감된다. 오래되고 퇴락한 시멘트벽과 습기에 침식되어 썩고 있는 벽, 잡초들, 방치된 장소의 전형성을 담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개별적으로 분해되어 고립된 일상을 담고 있다. 일상은 사물화 되고 파편화된 풍경으로 나타난다. 


이채영 <조우> 한지에 먹, 180x230cm, 2015


이채영 <재생> 한지에 먹, 180x230cm, 2015


작가는 대상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하며 조밀하고 꼼꼼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사람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와 대상의 관계만이 드러난다. 그러나 건물과 장소는 비밀스런 방식으로 사람을 기억하고 관계를 재생한다. 망각되는 것들은 건물이나 장소, 풍경이 아니라 그 안에서 복작거리며 아귀다툼 하는 사람들이다. 연상되는 이미지와 관념의 연쇄를 통해 작가가 속한 사회, 시대와 장소, 과거의 관념과 시각이 침범한다. 


이채영 <섬> 한지에 먹, 130×162cm, 2016


이채영 <어떤 길> 한지에 먹, 60.6×72.7cm, 2017


일상과 현실의 욕망과 관계가 증발된 곳에서 솟는 회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채영의 이미지는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의 적막감, 종교적 차원의 적멸(寂滅)의 형상일지도 모른다. 오래전 욕망이 모두 사멸해 버린 뒤의 풍경이다. 사람들의 구체적인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공간이 균일하게 나타난다. 너무나 균일하고 조용하며 규칙적인 상황에서는 아주 미세한 변화나 소음도 마치 천둥처럼 느껴진다. 박제화된 일상의 변화, 내면의 작은 감정의 변화 또한 마찬가지다. 단독자 또는 개별자로서 실존하는 개인의 독립적이자 동시에 원자적 고립의 상태는 일종의 생명과 문화를 영속할 수 없는 불임 상태이다. 그러나 불임의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수많은 생명 탄생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균일하지만 무언가 떠나버린 텅 빈 이미지는 의미의 부재와 동시에 의미가 탄생하는 순간을 은유한다. 

글/ 김노암 관리자
업데이트 2020.06.0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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