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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녕의 사람, 예술] 천년을 거쳐 전해진 밤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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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수의 <추성부>가 황병기의 <밤의 노래>까 된 까닭
-시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노래가 된 ‘가을 소리’
-천년 신라 석불 앞에서 천년의 노래를 연주한 황병기

1.
국립중앙박물관은 동서로 뻗은 일자형 건물이다. 
이 건물 3층 동쪽 끝은 불교조각실이다. 
이 공간에는 경주 남산 삼릉계곡에서 모셔온 석조여래좌상과 경주 감산사터에서 모셔온 국보 81‧82호인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석조아미타불입상,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경기도 하남에서 모셔온 철조석가불좌상(보물 332호) 등이 있다. 
길게는 1300년, 짧게는 1000년 시간을 건너온 석불과 철불이 지켜보는 조각실 가운데 작은 무대가 꾸며졌다.
지난 11월9일 오후 4시 나무판으로 꾸미고 붉은 천을 깐 무대에 황병기가 앉아서 <침향무(沈香舞)>를 연주했다. 


2.
<침향무>는 황병기가 1974년 작곡한 장구 반주가 붙은 가야금 독주곡이다. 
<침향무> 듣기
‘침향’은 본래 나무의 이름이지만 이 나무에서 나온 향료가 예부터 이름이 높아 아시아의 대표적인 향으로 통하고 불교 의례에서도 쓰인다. 
<침향무>는 조선조에 유행했던 가야금 산조 전통에서 벗어나 불교음악인 범패의 음계를 사용되는 등 작곡가가 ‘신라적인 요소’를 되살리려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현대 가야금 연주곡의 대표격인 곡이다. 
9분 여에 달하는 <침향무> 연주를 마친 황병기가 마이크를 앞에 두고 <침향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침향이란 게 불교 상징하는 향기인데, 동양 향기 중에서 가장 고귀한 향기고 인도 원산지다. 불교와 서역을 상징하는 향기 속에서 춤을 춘다는 뜻이다. 신라의 부처가 춤추는 것을 생각해서, 내가 신라 사람에게 그런 춤곡을 위촉 받아 쓴다면 어떤 곡을 쓸 것인가하고 생각해서 쓴 곡이다. 오늘 이렇게 부처님 조각 옆에서 연주하니 감개하고 무량하다. 
1974년에 내가 이 곡을 발표했는데 내가 그때 유럽 가야금 순회를 처음 나갔다. 맨 마지막에 파리에서 끝났는데, 그때 침향무를 연주했다. 연주 장소가 파리의 기메박물관이었다. 동양미술박물관. 거기서 연주하는 게 동양음악 연주하는 사람으로서 영광이었다. 특히 외국에서는 박물관 연주를 많이 했다. 오늘 이렇게 박물관에서 연주하니까 감개무량하다.” 


@국립중앙박물관


2.
박물관 음악회의 두 번째 연주곡은 황병기가 작곡한 <밤의 소리>이다. 
<밤의 소리> 듣기
황병기는 "<밤의 소리>는 심전 안중식의 <성재수간도(聲在樹間圖)>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라고 밝혔다.  
“조선조 후기 화가 중 안중식이 있다. 그의 호가 심전(心田)이다. 마음 심, 밭 전. 그에게 배운 제자 둘이 있는데, 우리 세대의 유명한 동양화가이다. 마음 심에서 심산(心汕) 노수현이 나왔고, 밭 전에서는 청전(靑田) 이상범이 나왔다. 
안중식의 작품 중 성재수간도가 있다. ‘소리는 나무사이에 있다’. 성재임간도와 혼동하기 쉬운데, 성재임간도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내가 봐도 고리타분하고, 성재수간도는 깜짝 놀랄 정도로 새로운 그림이다. 숲속에 사는 사람이 자기가 그리워하는 사람의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기가 안나오고 (동자를 보내)사립문쪽을 유심히 보는데, 오는 사람은 없고 달빛은 밝고 발자국 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린다. 보통 동양화에서는 풍경을 웅장하게 그리고 사람은 조그마하게 성냥개비만하게 그리는데, 이건 사람이 숲 쪽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뒤에서 그린 것인데 영화의 한 장면같다.“   

3.
황병기가 만든 노래 <밤의 소리>는 안중식의 ‘성재수간도聲在樹間圖’에 빚을 진 것이고, 안중식의 성재수간도는 구양수의 시 <추성부(秋聲賦)>에 빚지고 있다. 
중국 북송 시대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구양수(歐陽脩, 1007~1072)가 지은 <추성부>는 가을이라는 계절과 사람의 삶을 전반부는 청각적인 요소로, 후반부는 시각적인 요소로 이어붙여 천년이 지나도록 사랑받는 시이다. 

다음은 <추성부> 중 ‘성재수간’이 등장하는 대목.  
 
予謂童子 : "此何聲也? 汝出視之.”
여위동자 : "차하성야? 여출시지."
童子曰 :"星月皎潔, 明河在天, 四無人聲, 聲在樹間." 
동자왈 :"성월교결, 명하재천, 사무인성, 성재수간."

내가 동자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소리냐? 네가 나가 보아라."
동자가 말했다. "달과 별이 환히 빛나고, 은하수는 하늘에 걸렸습니다. 사방에 사람 소리도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

予曰 : "噫嘻悲哉! 此秋聲也, 胡爲而來哉? 
여왈 : "희희비재! 차추성야, 호위이래재? 

내가 말했다. "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로구나. 어이하여 왔는가? 


4.
안중식의 <성재수간도>는 두 점이 알려져 있다. 
하나는 스냅샷처럼 가을밤 사립문짝을 바라보는 떠꺼머리 동자의 뒷모습을 클로즈업한 작품으로, 가로 세로가 24cm X 36cm의 작은 크기에 작품 이름도 그림 한 귀퉁이 문설주 벽면에 보일듯말 듯 써있다. 반면 장식적인 청록산수 양식으로 위에서 밑으로 산수풍경과 은거하는 선비가 그려진 세로길이가 1미터가 넘는 대작도 있다.   


안중식 <성재수간도> 종이에 수묵담채, 24×36㎝, 개인



안중식 <성재수간> 비단에 담채 52.8x140.5cm, 간송미술관


황병기가 영감을 얻은 <성재수간도>는 스냅샷처럼 가을밤 나리의 명을 받고 사립문 밖을 살피러 나간 동자의 뒷모습을 스냅샷처럼 담아낸 <성재수간도>로 보인다. 
이 작품은 구양수의 <추성부>에 영감을 얻은 작품 중에서도 화가의 개인적인 해석이 도드라져 보인다. 
<추성부>에 기댄 그림은 심전 이전에 단원 김홍도도 그렸다. 단원이 인생 말년인 61세(1805년)에 그린 <추성부도>는 단원의 절명시격으로 알려진 작품으로 인생의 말년을 원경으로 쳐다본다. 안중식의 청록산수풍 <성재수간도>의 정서도 비슷하다.  
다만 화자(話者)인 나리(구양수)를 실루엣으로 처리하고 문 밖을 살피는 동자를 그림 전면에 내세운 <성재수간도>는 원경 보다는 접사에 가깝고 꺼지지 않은 욕망이 어른거린다. 공감각적 매개인 대나무를 화면 중심에 크게 배치한 것도 주인공이 말초 감각인 오감에 휘둘리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그림의 청각적인 요소를 증폭시킨다. 


김홍도 <추성부도秋聲賦圖> 1805년, 비단에 수묵담채, 214 x 56 cm, 보물 제1393호, 호암미술관

남도의 바닷가, 뒤란에 대나무가 심어진 집에서 묶어본 사람은 댓바람의 위력을 알 것이다. 밤새 귓가에 울부짖는 바람 소리에 휩쓸려 잠을 설치다 아침에 나가보면 그림같은 바다가 펼쳐져 있어 청각에 의지했던 지난밤이 간밤에 쓰다만 연애편지같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댓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탓이다. 
그래서일까. 황병기는 <성재수간도>에서 영감을 얻은 노래를 만들면서 그 그림의 일부인 ‘밤의 소리’만 지목해 제목을 지었다. 


5.
황병기는 이날 “올해 여든하나가 됐다. 늙는 맛으로 산다. 늙는 맛이 황홀하다. 나처럼 80대가 되면 황홀할 것이다. 나는 한 게 별로 없다. 그냥 세월의 흐름을 몸을 맡기고 살다 보니 노인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침향무>만 연주하고 <밤의 소리>는 제자 지애리의 연주에 맡겼고, 마지막 곡인 ‘정남희제 황병기류(丁南希制 黃秉冀流)’ 가야금 산조를 완성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그가 한국전쟁때 부산에 피난가서 김윤덕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웠는데, 김윤덕은 월북한 정남희의 제자였고, 황병기는 1990년대 남북교류가 되던 시절 북한을 공식적으로 방문해 정남희가 월북 후 남긴 곡을 수집해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를 완성시킬 수 있었고 그는 여든이 됐다.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는 지애리가 가야금을 탔고 김웅식이 장고로 반주를 맡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로 문을 연 ‘박물관음악회’를 2017년부터 상설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7.06.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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