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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녕의 사람, 예술] 시간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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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파리외방전교회의 한 장면을 담은 그림 <출발>
-1864년의 파리와 한양, 2016년의 파리와 서울
-쿠베르탱과 구노, 메시앙이 함께하는 160년간의 시간 여행

1.
첼리스트 양성원이 파리에 도착한 것은 11살 때인 1978년.
그때 파리 외방전교회의 시설을 빌려 한인교회가 미사를 봤고, 그 교회를 다니던 소년 양성원은 가로 4미터, 세로 3미터의 커다란 그림을 봤다. 선교를 떠나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그림은 샤를 드 쿠베르탕(Charles de Coubertin)이 그린 <출발(The Departure of the Missionaries, 1868)>이라는 제목의 유화다.


11월 초 개봉한 <시간의 종말>(감독 김대현)은 바로 이 그림에서 출발해 양성원이 기획하고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프랑스의 현대음악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이 작곡한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1940)에서 빌려온 것이고, 영화 속에는 양성원이 이끄는 트리오 오원과 클라리넷 연주자 채재일이 직접 출연해 동명의 곡을 연주하고, 오페라 <파우스트>의 작곡자인 샤를 구노(1818~1893)의 <아베 마리아>와 카톨릭성가 <무궁무진세에>가 삽입돼 있다.
19세기에 그려진 쿠베르탕의 <출발>과 구노의 <아베마리아>, <무궁무진세에>, 20세기 작곡가 메시앙과 21세기 연주가 양성원을 잇는 고리는 ‘조선’과 ‘순교’이다.
<출발>에 등장하는 네 명의 신부 위앵, 도리, 볼리외, 브르트니에르 신부는 모두 1866년 한국에서 순교했다.
 

2.
<출발>이라는 그림이 담고 있는 정보부터 살펴보자.
그림 가운데 교회 내부의 제일 높은 곳인 제단에 로만 칼러의 검은 옷을 입은 4명의 젊은 사제가 도열해 있다.
왼쪽부터 위앵 신부(1836년 생), 도리 신부(1839년 생), 볼리외 신부(1840년 생), 브르트니에르 신부(1838년 생) 순이다. 도리 신부의 뺨에 입맞춤을 하는 이는 작곡가 샤를 구노이다. 기록에 따르면 구노는 오페라 작곡을 본격화하기 이전인 1842년부터 1848년까지 파리 외방전교회의 오르가니스트 겸 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했다.
화면 속에 한 남자가 4명의 사제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볼리외 신부의 발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먼 길을 떠나는 이에 대한 축원으로 보인다.
이들이 곧 떠날 먼 길은 ‘극동’의 조선. 1864년 7월15일 위엥과 도리, 볼리외, 브르트니에르는 마르세이유항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 희망봉을 거쳐 인도양을 거쳐 이들이 조선에 도착한 것은 1865년 6월. 이들은 이듬해 병인박해로 모두 순교했다.
이들의 순교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이름난 종교 화가이자 레종 도뇌르 훈장 서훈자인 샤를 드 쿠베르탕 남작은 순교한 네 명의 젊은 사제를 주인공으로 한 대형 유화를 그려 1968년 파리외방전교회에 봉헌했다.


파리외방전교회

파리외방전교회의 회칙 194항은 ‘전통에 따라 선교 지역으로의 출발은 돌아온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쿠베르탕 남작은 이들 젊은 순교자를 기리는 그림에 순교 순간 대신 미지의 대륙을 향한 긴 여정에 나서는 순간을 골랐다.
화가 쿠베르탱은 그림의 왼쪽 하단에 자신의 딸과 막내 아들 피에르 드 쿠베르탱(1863~1937)의 모습을 인장처럼 그려 넣었다. 뒤를 돌아다보고 있는 금발의 소년이 바로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쿠베르탕 남작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샤를 드 쿠베르탱의 3남1녀 중 둘째 아들로, 피에르 역시 아버지를 닮아 화가로서도 활동했고 스포츠를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남겼다.
 


피에르 드 쿠베르탱

3.
그림 속에 등장하는 작곡가 샤를 구노는 한국 카톨릭교회와 인연이 깊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만큼이나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것이 구노의 <아베 마리아>이다.


샤를 구노


한국 카톨릭 커뮤니티 일각에선 <아베 마리아>가 기해박해(1839) 때 순교한 앵베르 범 주교(1796~1839)를 기리기 위해 구노가 작곡한 곡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점이 있는 듯하다. 앵베르 신부가 프랑스를 떠난 것은 1920년으로 구노가 두 살 때의 일이다. 구노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샤스탕 신부, 모방 신부를 기리어 카톨릭성가 284번 <무궁무진세에>를 남겼다. 이 성가에는 ‘앵베르 범 주교는 무수한 고난 중에 이 지방에 전도 삼년 전하시다가 양을 위해서 목숨 바쳤도다’란 가사가 들어있다.
구노와 파리외방전교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순교자는 구노와 동갑내기인 다블뤼 주교(1818~1866)이다. 다블뤼 주교는 1843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교해 1844년 마카오를 거쳐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조선 땅을 밟았다.
조선에서 21년간 선교 활동을 다블뤼 주교는 병인년(1866) 3월 충남 보령의 갈매못에서 위앵 신부와 함께 순교했다. 위앵 신부와 함께 조선에 도착해던 브르트니에르 신부, 도리 신부, 볼리외 신부는 3월7일 한강대교 북단의 새남터 앞 한강변 모래사장에서 순교했다. 고종3년(1866)에 시작된 병인박해는 1873년 흥선대원군(1820~1898)이 실각할 때까지 계속됐다.

4.
정조(1752~1800년)의 치세기간 중 잠깐 회복하는 듯 보였던 조선은 19세기 들어서 순조와 헌종, 철종을 거치며 세도정치와 당파싸움으로 인해 몰락기에 들어선다. 제정일치의 유교 왕국이었던 조선은 몰려드는 외세에 쇄국정책으로 맞섰고 조선의 건국 이념을 배척하는 서양의 종교를 불허했다.
당시 활동한 조선의 시인 묵객으로는 신위(1769~1845) 김정희(1786~1856) 조희룡(1789~1866) 이한철(1808~ ?) 유숙(1827∼1873) 장승업(1843~1897) 등을 들 수 있다.
4인의 선교사가 조선에 도착할 당시 프랑스의 지배자는 나폴레옹 3세였고, 나폴레옹 3세는 1860년을 전후해 유럽을 제외한 전세계를 무대로 식민지 개척에 나서던 때였다. 그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2차 아편전쟁에 참여해 중국 본토에도 진출했다. 병인양요 때 함대를 동원해 조선도 노렸지만 패퇴해 물러났다.
당시 프랑스 화단에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들라크루와(1798~1863)와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앵그르(1780~1867)가 활동했고 문단에는 시인 보들레르(1821~1867)와 소설가 발자크(1799~1850)가 활동했다.
 
5.
영화는 19세기 중반의 순교자와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들의 한국 선교, 21세기에 교세가 역전된 한국 카톨릭 교회의 사제들이 프랑스 카톨릭 지원 활동 등 150년간의 시간을 담으며 그 사이사이 메시앙의 <시간을 위한 종말>을 끊임없이 들려주고 있다.
현대음악 작곡가 중 가장 많은 종교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올리비에 메시앙은 이 곡을 2차 대전 중 포로로 잡혔을 때 수용소에서 썼다.
영화에 연주자로 출연하기도 한 양성원은 이 곡에 대해 “(메시앙이)그 곡을 쓰게 된 환경과 가장 가까운 환경이, 한국에서 순교한 신부들이 활동했던 환경과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영화의 후반부는 프랑스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한국 신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은규 신부

파리에서 서쪽으로 230킬로미터 떨어진 소노아라는 작은 도시에서 사목 활동을 하는 오은규 신부는 2011년 한국 교회가 프랑스 교회의 요청을 받고 파견했다. 오 신부는 위로 40km, 아래로 30km 떨어진 지역까지 53개의 성당을 동료 사제 1명과 함께 맡고 있다. 그는 영화 속에서 “오늘의 프랑스는 신자도 거의 없는 선교지가 됐다”고 말한다.
이 상황에 대해 파리외방전교회에서 1974년 한국에 파견한 임경명 신부는 “한국에는 매우 역동적인 카톨릭적인 삶, 기독교적인 삶이 있다. 정말로 상황이 뒤바뀐 것이다. 은총은 돌고 도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의 감독 김대현은 오은규 신부가 말하는 선생복종(善生福終)에 대한 설명을 끄트머리에 배치했다.
“창조는 죽을 때까지 이 세상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나, 내일의 나는 다르다. 나는 끊임없이 종말을 향해 창조되어가는 존재이다. 선함으로 완성되어 간다는 믿음이 있다. 그것이 선생복종을 잘 표현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순교자들은 그말을 믿었기에, 창조와 종말을 믿었기에 기꺼이 죽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
삶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통찰은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생명체에게 영원한 관심사다. 그래서 <시간의 종말>은 선교나 음악 다큐멘터리의 카테고리를 벗어나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7.06.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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