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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계雜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30주년을 맞아 - 특별전 관람 후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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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5일(목)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주년 특별전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외
최열, 정준모, 조은정, 김진녕,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곳 과천으로 이전한지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런 멋진 곳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더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서 바쁘신 중에 함께 이곳을 찾아 전시도 보고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어 오시도록 했습니다. 그 동안 창고에 있던 소장품들을 많이 꺼내어 전시하고 있는데, 보신 것 중 인상적인 작품이나 전시에 대한 궁금한 점, 30주년을 맞은 이 순간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바람, 30년 뒤에 어떤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지 비전 등을 간단히 말씀해 주시면 될 듯합니다. 
관객들이 생각보다 전시를 많이 찾는 것 같네요. 매스컴에서도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제 경우는 ‘아, 이게 미술관에 있었지’하는 작품들이 몇 있어서 반가웠어요. 민정기 씨의 황씨연대기 등. 3층의 작가별 전시도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소장품을 너무 많이 벌려 놓았나 싶어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요.


김진녕(이하 김)  역시나 계통과 갈래가 많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어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 동시대의 시각예술작가 작품을 다양하게 많이 보여주고 있고, 80년대 이전은 조금 취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인상깊었던 것은 뒤샹의 여행가방인데, 유명한 것이기는 하지만 전시 맥락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어요. 
30년 동안 많은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모았는데, 그 작가들이 세계적 유명 작가가 되길 바라게 되네요. 전시로는 소장 작품의 방향이 모호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조은정(이하 조)  10년, 20년, 30년 이렇게 단위로 끊어서 지나온 길을 볼 때는 전통을 생각하게 되죠. 방점을 찍으며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전시를 할 때는, ‘이런 것을 가지고 있어요‘가 아니라 ’우리가 이런 것을 그동안 해 왔어요‘라는 회고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개관기념전은 이러했고, 이러저러한 결과를 낳았고 처럼요. 30년간 해온 일의 발자취가 아닌 가지게 된 물질적인 것에 집중되어 의외였습니다. 전시 전체의 제목이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인데, 이에 대해서도 몇 가지 생각이 들어요.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라는 작품에 대한 것과 주역에 나오는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 세상 순환의 진리이지만 전시 주제로는 차고 기운다는 것이 조금 의문스럽죠. 앞으로 기울 건가. 또 한 가지, 저는 이 전시의 개막식에 참석했었는데요, 30년 전 과천관이 이곳에 열리면서 이렇게 커다랗고 멋진 공간이 생긴 것에 대해 벅차고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나면서, 또 30년만에 이곳에서 그간 어르신이 된 미술계의 원로들과 눈빛을 교환하며 감회가 새로웠었죠. 그런데, 이곳의 30년의 역사에 대해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이야기하는데, 관장님이 읽어내려가는 30년 역사는 너무나 밋밋했어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간극이 있다는 것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외국인 관장이 30년의 역사에 동화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닌데, 그렇다고 여러분 축하합니다 할 수도 없고. 내부인이니까. 나름 비극인가 싶은 재미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최열(이하 최)  30주년 전시를 한다기에 벌써 30년이 되었나 하고는 찾아오지 못했는데, 이렇게 전관을 사용하는 대규모 전시인 줄을 몰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단 30주년 전시가 비극일 수 밖에 없죠. 오라고 불러서 휴가처럼 오신 관장은 잘못이 없죠. 한국 현대미술의 30년을 공유할 수 없는 외국인을 뽑아서 하나 밖에 없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맡기게 된 사유가 문제이고 비극입니다. 어떤 식으로 전시 구성을 하든 참혹하고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윤  30년 기념전은 내부적인 행사일 뿐만 아니라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할 수 있죠. 이만큼 일을 했다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다고 봅니다. 보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고 더 넓게 대중과 만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구요. 

조  모든 일에는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정준모(이하 정)  감개무량하다기 보다는 최 선생 얘기대로 민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소장품의 대부분을 끄집어 내어서 전시를 하게 된 정확한 기획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미술관의 소장품이 모여지기 시작한 것은 덕수궁으로 이전하고 1971년에 처음으로 800만원의 작품 구입예산이 배정되었지요. 1995년 처음으로 10억 넘는 예산이 확보되었고 제가 미술관에 부임한 1996년 총 구입 및 기증작품을 포함해서 3,590점정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작품구입예산은 15억 5천 7백만 원이었습니다. 그 후 작품 소장예산확보에 노력을 해 2001년에 20억원을 그리고 2003년에 43억, 2004년에 최고 많은 49억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80억을 확보했으나 미술은행을 설립하면서 30억을 문화부가 가져가 50억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예산에는 작품관리예산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로는 약 2~3억이 관리비로 나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후 김윤수관장시절에 작품 수집이 문제가 되면서 작품 구입예산이 제자리걸음을 했고 다시 2008년부터 서울관 건립으로 시설예산이 필요해지면서 30억원대로 내려갔다가 2014년부터 40억원대로 획복되어 올해 예산이 약 53억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20여년간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작품가가 올라간 것에 비하면 작품수집예산은 되려 줄어 든 셈이지요. 기억나는 소장품이라, 글쎄 모든 소장품이 다 중요한 것 아닌가요?

윤  정 선생이 있을 때 에피소드 같은 것 있으면 몇 가지 이야기해 주세요.


정  국회에 불려다녔던 게 기억에 나네요. 저 그림을 왜 그 값에 샀느냐고 질문을 받아야 했던(웃음). 국립현대미술관에 이중섭 작품이 한 점도 없었는데, 마침 예산이 약간 남아 있어 회의를 거쳐 이중섭 은지화를 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화랑 주인이 자신이 여러 경로로 요청한 그림은 안 사고 정모씨가 자기 선배 그림을 샀다고 투서를 해서 국무총리실 감사관에게 불려다닌 적이 있습니다. 이중섭이 제가 나왔던 오산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이유였어요. 얼굴도 못 본 선배 그림 하나 사서 애를 먹은 이런 일도 있고... 에피소드야 많지요.  
  30주년 맞으면서 아쉬운 것은, 지난 30년을 보여주는 전람회와 함께 앞으로 30년을, 한 세대를 어떻게 이끌어 가겠다는 비전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조  30년이면 회고와 전망이 있어야 하죠. 기념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요. 

최  회고와 전망이 전시 구성의 기본 요소, 틀이 되어야 할 것이고 채워야 하는 내용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작품들로만 가득 채운 것 같습니다. 작품은 내용의 30퍼센트 정도가 되어야 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30년간의 성찰이 있어야 하는데, 부족한 느낌입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책임운영기관이 되면서 수렁으로 빠지게 되었을 때 제지하지 못한 구성원들, 현 학예직들의 의견에 쌓여있던 역사가 모인다면, 이 전시가 부잣집 세간 자랑하는 이런 구성은 아니었을 겁니다. 역사는 성찰이어야 합니다. 

정  학예직들로서는 특별히 성찰할 게 없다고 봐요. 이전에는 전시과, 일반 행정직 직원들이 소장품수집과 전시를 진행했던 것이고, 학예직이 실질적인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0년부터이고, 2005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학예실이 지금의 권한과 책임을 지는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즉 직제, 법령으로 미술관의 학예연구실이 제자리를 찾은 것은 2005년이지요. 물론 1998년 ‘근대를 보는 눈’ 등의 미술사적인 전시를 진행하면서 전문적인 기획과 진행이 필요하게 되니까 일반행정직들로 구성된 전시과는 이런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없고 하니 외국의 뮤지올로지를 도입하면서 학예연구실에 잠정 위임해서 작품수집과 진행을 게 된 거죠. 사실상 사실 학예직들이 전시를 제대로 수행한지는 10년이 좀 넘었다고 보면 됩니다. 30년을 성찰하기가 어려웠을 테죠.

*참고 1989~2016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수집 및 관리예산(단위 천원)

1989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641,884

658,136

668,417

748,574

760,000

860,000

1,152,752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1,557,813

미상

1,971,537

1,900,437

1,914,449

2,050,419

2,572,000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4,225,535

4,945,677

4,645,037

4,518,198

4,810,000

4,380,585

3,425,960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3,425,960

3,141,000

31

약 36

약 43

약 46

약 53

 

최  그렇다면 자신의 힘이 없었던 것이 곧 자신의 역사입니다. 지금 말했던 것처럼 2005년에야 형식적 권한을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 자체를 되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그 어려움을 뚫고 이만큼 왔다, 이렇게 갈 수도 있겠고.... 사실 이전 장관이 한 잘못이 있지만 그에 대해서라도 학예직들은 어떻게 할 수 있었을지 성찰을 해 봐야 합니다. 시각을 바꾸어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김  한국 현대미술관 시스템이 10년 밖에 안 되었다는 게 쇼킹하네요.

조  1987년 6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교육전문가를 초빙해서 국립현대미술관과 그 외 국내에서 큐레이터 일을 하던 사람들을 불러 뮤지올로지 워크샵을 열었을 때, 처음 큐레이터라는 말을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뮤지올로지가 이런 거구나 하면서 교육을 받았어요. 그 때 교육받은 사람이 몇 십명인데 그만큼 그 수가 적었다는 얘기가 되겠죠. 그 때에 비하면 이제는 학예 인력이 넘쳐날 정도로 성장하게 뵈었죠. 어찌보면 미술관을 처음 시작하면서 큐레이터와 미술관이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그당시 미술관에서 일하던 분들은 행정직 사무관들이셨죠. 결국 미술관이 해야할 여러 가지 일들, 작품의 수집, 보존, 교육, 전시, 연구 중에서 결국 우리 손으로 가지게 된 것이 전시와 교육 부분이고 이게 굉장히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이 전시 자체에 집중된 것이 트라우마 비슷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  학예직들에게는 제대로 된 전시를 해보고 싶은 욕망이 크죠. 96년 처음 미술관에 왔을 때 작품 구입비가 너무 적어서 박수근 그림 1점을 3년 분할로 살 수 있다는 씁쓸한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과정을 거쳐 오고 구입비도 늘리고 해서 이제는 소장품이 많이 늘어난 것이 뿌듯하긴 합니다. 소장품 수집 정책이 만들어진 게 98년인데, 구입비도 문제지만 관장님들이 자주 바뀌다보면 미술관의 작품 소장 정책들이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소장품을 중심으로 맥락을 맞춰 전시하기도 힘들게 되지요. 1950-70년대의 작품들은 어느 정도 맥락을 맞출 수 있고, 정책을 가지고 사 모았던 것들은 언제든지 전시를 꾸릴 수 있지만, 예를 들어 외국 작가 작품 같은 경우는 불쑥불쑥 사게 되는 것들이 있어서... 그나마 전시로 들여왔던 루이스 부르주아 작품 못 사놨던 것이 아쉽습니다. 

윤  우리나라가 현대적인 시스템으로 제대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10여년 밖에 안 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현대미술의 토양이 미천한 만큼 분발해야 하고, 마치 처음부터 뭔가 가지고 있어왔던 것처럼 흉내낼 필요가 없습니다. 10년 밑천의 실력임을 인정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거죠. 국립현대미술관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의 과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시를 꾸려나갔다는 게 대견하고 큰일 해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학예직들이 안일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스스로 미술관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학예직”으로서만 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예를 들어 30년 전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과천 현대미술관에 제대로 된 진입로가 없어서 빙빙 돌아 서울시에서 산 땅을 밟고 들어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서울시, 문화부,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 제대로 협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접근성 문제로 인해 서울관이 지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90년대 최만린 관장님 계실 때 김 모 국장님이 많은 일을 해 놓으셨죠. 땅도 등기해 놓고, 덕수궁미술관 지상권 등기를 해 놓아서 지금도 건물을 내놓으라는 요구에도 잘 버틸 수 있는 것이고.. 그 분 계실 때 전 직원이 진입로 문제로 머리를 맞대곤 했는데, 그 이후로는 없습니다. 일반 행정직들은 순환근무제 하니까 미술관에 왔다가 가면 그만, 주인의식이 없구요.


김  정 선생님께서는 30주년에 맞게 미술관에 대해 써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최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 책임운영기관인 상태이고, 법인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법이 국회 통과만을 남겨놓은 어정쩡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어요. 이런 어정쩡한 상태가 미술관을 더 참혹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단순화시켜 얘기하면, 과천관 서울관이 분리되면서 과천관에 대해서는 관장에게 인사권과 예산권이 없습니다. 권리가 없는 기관장은 허깨비죠. 과천관 내부에는 정규 학예사 몇 명을 빼고 모두 계약직 학예사이고 서울관은 팀장을 포함하여 모두 계약직입니다. 법인화의 어정쩡 상태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무리 과정 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현 단계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국립미술관인데. 이를 방치해 놓은 지난 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 문제가 30주년을 맞이해서 가장 고민해야 할 문제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붑니다.

조  이번 전시 중 미술관의 역사를 전시하는 방이 있는데(<아카이브 프로젝트-기억의 공존> 30주년 기념전의 핵심이고 제일 재미있는 곳입니다. 한가한 농촌이었던 땅에 미술관이 들어오는 과정을 보여주며 여기에 사셨던 분의 인터뷰를 육성으로 들을 수도 있고... 삶의 공간이었던 곳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등을 생각하게 해 주어 이번 30년 기념전 중 이 전시만이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또, 오프닝에 퍼포먼스가 있었죠. 성능경, 김구림 선생님들의 노익장을 보면서 함께 있었던 분이 ‘현대미술관 30년인데 왜 70넘은 분들이 하셔?’라고 물어서 웃은 적이 있죠. 역사가 도대체 뭔가 생각하게 됩니다.

윤  30년 전에 비하면 미술이 일반 사회 속으로 상당히 많이 들어왔죠. 괄목상대라고 할 정도의 성장인데, 미술의 성장은 일반적으로도 산업적 효과도 있으니까, 앞으로는 미술관이 종합적 생각을 가지고 미술계를 매니지먼트해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외국 미술관들은 실제로 그런 능력을 보여주면서 공동체의 활력을 이끄는 역할도 하잖아요.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조  과천이기는 했지만 굉장히 큰 장소였고, 야외 조각공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한국 현대미술이 변화한 면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 공간이라는 것이 당시까지는 넓어봤자 혜화동 문예진흥원 생각하던 것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한 거죠. 우리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 긍정적 작용이 분명히 있습니다. 인터렉티브 미술이나 경험의 공간으로서의 시각예술을 가능하게 한 공간적인 비전을 제공했죠. 

김  대신 너무 고립된 면이 있었구요.

최  청계산 자락에 미술관을 짓는 군사문화적 발상에 대해 엉뚱한 상상력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이런 규모의 근교 야외 미술관이 중심이 된 것에 대해서는 찬양받아 마땅합니다. 접근성 문제도 있고, 서울관 지을 때 폐관하자는 말도 있었지만 저는 반대입니다. 굉장히 소중한 자산이에요.

정  여기에 들어올 기관도 없어요. 과천 정부종합 청사도 비어 있는데... 
이번에 30주년을 맞아 공로상 등 상을 주고 했다는데, 과거의 여러 인물들이 생각납니다. 과천관 초대 관장이었던 김세중 관장님은 개관을 못 보고 돌아가셨죠. 탁월한 대인관계, 대정부 설득 능력을 가졌었고, 과천관의 태두. 개관을 맡아 진행한 이경성 관장님은 문화계 원로로서 정부를 설득해서 척박하던 시절 개관까지 끌고 간 업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 임영방 관장님 오셔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편입시키려고 노력하셨죠. 최만린 관장님 같은 경우  타고난 친화력으로 덕수궁 분관을 만드는 데 많은 기여를 하셨어요. 아까 말했듯 과천관 진입로 때문에 고생하셨는데, 높은 분들에게 직접 보고서를 가지고 올라가 독대하고 그랬어요. 성품이 조용하고 자기 얘기 안 하시는 분이라 많은 분들이 잘 모르죠. 최 관장님은 법인카드 써 본적이 없습니다. 미술관에 봉사하러 왔지 챙기려고 온 거 아니라며 월급도 미술관에서는 받지 않으셨어요. 오광수 관장님, 김윤수 관장님 등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나중에 다 제대로 평가받을 날이 오겠죠. 


최  그간 학예직들에게 제도의 어려움, 예산의 어려움, 우리 사회의 정착되지 못한 미개한 문화로 인한 어려움들이 있어서 초기에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한 바가 많습니다. 관이라고 하는 철옹성에 갇혀 미술계 일반과의 소통도 배제되고. 그게 처음으로 트인 것이 임영방 관장 때 와서라고 생각되요. 그 때 학예실장인 정준모 씨에 대해 우리는 낙하산이라고 헀었는데(웃음)... 새로운 학예실의 역사를 썼죠.
최초의 20년이 무능해 보이는 것은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권한이 주어졌던 최근 10년에는 그 무능함을 타파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는데... 사실 정규직 학예사는 해직될 가능성이 적은데도, 과감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해요. 얼마전 그만둔 모 학예실장 등 몇몇 사람들이 홀로 변화를 향해 나가려고 할 때 그런 두려움이 장벽이 되죠. 
30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다들 개인적으로는 유능하고, 조건 또한 좋아졌고, 예산과 권한이 어마어마해 졌어요. 작은 전시도 정성들여 고급스런 도록이 나오고, 전시 디자이너도 따로 있고... 그러나 정규직 학예사들이 주로 그런 권한을 누릴 수 있고, 계약직들은 정규직과 행정직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일할 수 밖에 없어요. 다른 분야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와 똑같아요. 이런 것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은 정규직이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유능함을 집단적인 유능함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정  미술관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후원회나 기부금 문제 등등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요. 관장을 차관급으로 하고 책임운영기관 하에서 학예직을 정규직화 해서 책임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과천관이 그래도 이렇게 손님이 많이 오는데, 진입로 문제를 서울시장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앞으로 국립근대미술관 문제도 헤쳐나갈 일이 많습니다. 문화융성을 얘기하는 정부가 미술관에 대한 미래 비전이 없는 건 말도 안 되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국립미술관 과천관의 30주년을 맞아 뭔가 국립미술관에 대한 비전과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지금은 단지 미술관 행사일 뿐입니다. 하다못해 미술관 하나의 비전도 못 내놓으면서 무슨 미술진흥법이란 말인가요. 국민들은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는데, 대한민국 행정관료, 입법부 소속 정계 사람들은 정말 무관심합니다. 생색과 과시에만 미술관이 들먹여집니다. 
2013년 서울관은 개관시켜 놓고서는 법을 통과시켜 주지 않아 모두다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아무 것도 해 주지 않고... 미술관의 내용을 책임지는 사람이 학예직이 아니라 ‘운영부장’이라니....

윤  축하하러 온 자리인데, 역시 이런 저런 불평을 하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축하의 말과 덕담을 한 마디씩 해 주시죠.

김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관도 생겼고 청주분관도 생긴다고 하니 좀더 경쾌하게, 여러 사람들이 물고 빨고 씹고 뜯고 할 수 있는, 선정적이 됐든 도발적이 됐든 관심이 걸리는 재밌는 전시들을 많이 해서 사람들 사이에 깊숙이 들어와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국악 같은 경우에도 잘 못하는 연주자의 것을 들으면 너무 어려운데, 잘 하는 연주가가 들어가면 이게 이렇게 설득력있는 연주였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학예사들이 씹어서 자기 나름으로 소화한 걸 뱉어주면 맛있는 음식이 될 거 같습니다. 

조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작품들이 몇몇 나왔습니다. 연구자로서 저는 이번 전시에서 가져갈 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행사가 미술관에 집중되면 너네 집안 잔치냐 할 테고, 밖으로 나가면 산만하게 이게 뭐냐 그럴 거라는 건 알지만, 결국 적절히 맥락화하여 보여주는 것이 전시고 미술관과 그 역사를 잘 소개할 수 있어야 하죠. 어쨌거나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이라는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정  서울관이 없을 때 과천관의 관객이 100만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서울관이 70만 정도라고 한다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서울관을 건립할 때는 적어도 300만까지 예상했었으니까요. 30년은 축하할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위상 면에서도 문화의 중요성 생각하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30년 후에는 멋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최  다음 40주년 때는 소장품 전시 외에 의미 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예사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하자면, 위로는 휴가나온 관장님 잘 모시고, 더 위로는 문체부 새로오는 장관님 잘 설득해서 미술관 빨리 정상화시키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현재 엉망인 상태의 국립미술관을 정규직의 사명을 가지고 정상화시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구석진 곳의 미술관을 찾아주는 대중들을 섬기는 전시를 정말 잘 만들어야 합니다. 유능한 자신들의 능력을 어디에 발휘해야 하는지 깊이 진지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윤  막바지 더위에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17.05.2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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