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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불화대전 - 고려불화와 서역 하라호트의 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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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기 간 : 2010년 10월 12일(화) - 2010년 11월 21(일)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전시명 :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기  간 : 2010년 10월 12일(화) - 2010년 11월 21(일)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4 고려불화와 서역 하라호트의 불화

실크로드의 마지막 도시 주천(酒泉)은 요즘 다른 이름으로 유명하다. 이곳 중국위성발사센터에서 쏘아 올려진 선저우(神舟) 5호는 소련, 미국 다음으로 유인 궤도비행에 성공했다. 그 주천에서 길도 없는 사막을 가로질러 북동쪽을 450km 쯤 가면 몽골과의 국경이 멀지 않은곳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한 폐허 유적이 있다. 하라호토(Khara-Khoto) 이다.

하라호토(Khara-Khoto) 와 주천(酒泉)

하라호토는 11세기부터 13세초까지 지금의 감숙성 일대에 티베트계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西夏)의 한 도시이다. 최근 중국 이름은 헤이청(黑城) 또는 헤이쉐청(黑水城). 하라호토는 서하가 징기스칸에게 멸망할 때도 살아 남았으나 1372년 명나라의 공격으로 폐허로 변해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1907년 러시아 탐험가 피요트르 코즐로프(1863~1935년)가 고비 사막의 모래 바람을 뚫고 이곳을 찾아왔을 때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아시아의 전설적인 탐험가인 스웨덴의 스벤 헤딘을 라이벌로 여겼던 코즐로프는 이곳에서 자신의 최고 순간을 경험했다.

사막속의 폐허에서 그는 전설의 서하 문자로 적힌 서적 2천여권을 포함해 그림, 유물 등 3천5백점을 수습했다. 그리고 이것을 성 페테르부르그로 가져갔다. 제2차 세계대전때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포위공격(이때 성 페페르부르그는 레닌그라드로 불리웠다)을 용케 견뎌낸 이 유물은 현재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 코즐로프 발굴유물 가운데 우리 고려불화와 형제격인 그림이 들어있다. 내영도와 수월관음도이다. 내영도는 사후에 극락왕생을 바라는 기원자에게 서방정토를 주재하시는 아미타불이 친히 다가와 그 약속을 하는 그림이다. 고려시대에 특히 많이 그려진 이 불화는 현재도 다수 전하는데 리움 미술관의 아미타내영도는 하라호토에서 출토된 유물과 꼭 닮아 있다.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
고려후기 비단에 색 l 110.0 x 51.0 cm


부처님 머리 한가운데서 뿜어져 나오는 신령한 기운(瑞氣)이 왕생자를 감싸는 모습이나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이제부터 극락으로 가게 될 왕생자를 태울 연화대좌를 내미는 모습은 거의 같다. 또 아미타불이 오른손을 길게 뻗어 왕생자를 맞이하려는 의지를 도상적으로 분명히 보여주는 묘사도 일치한다. 수월관음도에도 비슷한 점을 여럿 찾아낼 수 있다. 비록 바라보는 방향은 서로 다르지만 바위벽을 뒤로 하고 앉아계신 모습, 대나무와 정병이 등장하는 배경 등이 서로 같다.

아미타 삼존내영도(阿彌陀三尊來迎圖)
중국 서하西夏 13세기ㅣ142.5 x 94.0cm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
중국 서하西夏12-13세기 l 125.0 x 64.0cm

하라호토 출토 불화가 그려진 시기는 대개 12, 13세기. 고려불화보다는 약 100년 정도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동아시아는 중국 송나라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서하, 그리고 동쪽에 고려가 있었다. 그 사이는 족히 4천 킬로미터는 된다. 경제든 문화든 당시 교류를 생각하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교통 수단이라고는 말이나 수레 정도. 거기에 빈약하기 짝이 없는 여행 도구와 장비에 불편한 숙박 시설 등등.

28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동아시아 불교회화와 고려불화」의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한 에르미타주의 수석 큐레이터 키라 사모슉은 하라호토 불화의 뿌리로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은 계통과 다른 하나는 서하 독자적인 창작에 근거한 계통이다. 내영도나 수월관음도에 대해 중국 특히 타이완 고궁박물원 큐레이터 리위먼(李玉珉)은 북송 영향을 주장하지만, 그는 당시 이 일대인 동투르키스탄과 중국에 거주했던 탕구트인과 티베트인 사이에 탄생한 새로운 양식, 즉 중국과 티베트 절충 양식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중국 서하西夏 13세기ㅣ68.0 x 48.8cm
 

그의 주장대로 라면 고려시대 불화제작자는 어쨌든 탕구트 불화를 손에 넣거나 알고 있어야 했다. 당시 불화제작자는 서하의 수도인 흥경부(지금이 영하성 은천)가 아니면 적어도 북송의 수도 변경이나 남송의 수도 임안(지금의 항주) 그리고 원나라 수도 북경과의 어떤 네트워크를 쥐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쪽의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이번 고려불화 전시에는 송, 원 시대의 불화 7점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냥 함께 놓고 감상할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려불화의 독자성과 창의성을 뛰어넘어 외부와의 교류 또는 소통이란 또 다른 감상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전시 자체의 참신성을 돋보이게 해준다.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
중국 남송南宋ㅣ112.5 x 48.5cm
시왕도(十王圖), 제5 염라대왕(第五 閻羅大王))
중국 남송南宋 13세기ㅣ83.2 x 47.0cm

불화의 시대였던 고려 그리고 대륙을 지배하던 송과 원, 그 너머 사막 한가운데의 나라였던 탕구트. 아득히 먼 역사나 거리감은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또 미지의 세계는 지적 흥미를 자극한다. 그림이 인문학의 재료가 된다는 것은 징검다리처럼 늘어선 고려, 중국의 송과 원 그리고 서하를 건너뛸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엄 화려한 고려불화도 어느 때에는 느낌과 상상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글/사진 스마트K
업데이트 2018.02.2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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