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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림박물관의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高麗注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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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그릇과 찻그릇으로 본 고려시대

전시명 :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高麗注子
장 소 :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기 간 : 2021.8.3~12.31
글/ 김진녕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2021년 두 번째 기획전시로 8월3일부터 12월31일까지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高麗注子〉전과 연계 전시로〈통하고 만나다, 다반향초茶半香初〉전을 열고있다.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 전시장


〈통하고 만나다, 다반향초> 전시장


이번 전시에는 다양한 재질의 고려주자 133건과 주자와 함께 사용된 술잔과 찻잔 등 전시 보조 작품 85건, 중국의 백자주자 9건 등 모두 210여 건이 선보인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작품이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고 한다. ‘고려 주자’를 주제로 한 전시는 지금까지 모두 3차례가 있었고 이 중 2건은 일본의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에서 1983년과 2010년에 열린 것이다. 나머지 1건은 2018년 강진의 고려청자박물관에서 열렸다. 세 건의 고려 주자 전시에서 소개된 작품은 30건 이하로 이번 전시가 물량 면에서 이전의 전시보다 큰 전시임은 분명하다.

1.
주최측은 이번 전시의 주제로 고려 주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주자가 고려 사람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창(窓)이라고 설명했다. 주자를 사용하는 행위와 주자에 담긴 내용물이 당시 고려 사람들의 삶과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대 사전에서 주자는 ‘술 따위를 담아 잔에 따르게 만든 주전자’라고 정의되어 있다. 요즘엔 물을 담아서 따르는 기물을 통칭으로 ‘주전자(酒煎子)’라고 부른다. 하지만 박물관의 주전자형 유물은 대개는 ‘주자(注子)’라고 부른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금속 소재(스테인레스 스틸 또는 양은 등)의 주전자에 액체를 담아 불에 직접 데우는(煎) 기능성이 강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헌 기록이나 전하는 유물을 보더라도 고려는 불교 의례에 쓰이는 정병이나 일상 생활에 자리잡았던 다례용 기물, 술병 등 주자의 쓰임이 그 어떤 시대보다 활발했다.

주자는 몸통에 액체를 담는 구멍, 따르는 구멍[注口], 그리고 손잡이가 붙어 있는 것이 가장 큰 형태적 특징이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주전자의 형태와 크게 다른 게 없다. 주자는 고려 이전에도 이후에도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려만큼은 아니었다. 자기(磁器) 제작기술이 보편화된 조선시대보다 고려시대에 더 많은 주자가 만들어지고 사용된 이유가 무엇일까? 삼국시대만 해도 손잡이가 달린 도기 잔을 만들었는데 고려시대에는 잔에 손잡이가 사라졌고, 고려시대에 그렇게 많이 만들었던 손잡이 달린 주자가 조선에선 거의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전시에는 조선 초기의 손잡이가 달린 백자 주자가 한 점 나와있다. 전시장에 도열한 청자 주자는 그 이유에 대해 관객과 무언의 대화를 나눌 준비를 하고 있다.

2.
주최측은 전시를 세 부분으로 나눴다.

‘Part 1. 고려 공예의 꽃, 주자注子’.
첫 번째 전시공간에서는 ‘고려 공예의 꽃, 주자注子’라는 소주제 아래에 고려 초기인 10세기 무렵부터 고려 말기인 14세기까지 고려청자 주자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한 진열장 안에 14세기 고려의 청자상감 파어문 편병형 주자부터 15세기 조선의 분청사기 상감 연어문 편병형 주자 네 점을 나란히 전시한 코너는 왕조의 교체의 체제의 변화, 도자 산지의 이동 등 14~15세기 한반도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네 점의 도자로 설명한 드라마틱한 코너다.


분청사기 상감 연어문 편병형 주자, 조선 15세기



보물 1453호, 청자 주자, 고려 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


보물 1453호 <청자주자>(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 중국 월요청자의 영향이 보이는 10세기 무렵의 <청자주자>, 고려 특유의 비색과 상감 문양이 보물 1540호 <청자표형주자>(12세기)와 보물 1451호 <청자상감운학국화문병형주자>(13세기), 고려 후기 청자주자를 대표하는 <청자상감국화문표형주자>와 <청자상감연학문병형주자>(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 등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이 이 파트에 있다. 첫번째 파트 마지막 코너에 놓인 보물 1540호 <청자표형주자>와 국보 281호 <백자주자>(조선 15세기)도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가 집권층 교체뿐만 아니라 취향과 미감의 변화도 동반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보물 1451호, 청자 상감 운학국화문 병형 주자, 고려13세기


‘Part 2. 주자, 술[酒]을 따르다’의 주인공은 술그릇이다.

고려시대 당대의 그림이 남아있지 않기에 술주자와 차주자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이 전시실에서는 표형(瓢形)과 병형(甁形) 주자 중 술과 관련된 시가 시문된, 그래서 술주자로 분류되는 유물이 나와있다. 술을 데워먹는 문화, 그래서 접시 또는 사발 형태의 승반(承盤)과 함께 세트를 이루기도 하는 고려시대의 음주 문화를 상상하게 된다.




‘Part 3. 주자, 차茶를 따르다’에선 차 관련 기물을 모아서 보여주고 있다. 조선과 달리 고려 때는 차(茶)가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물품이었다.

왕실에서는 차를 하사품으로 취급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고, 다방(茶房)이라는 관부(官府)를 설치하여 국가의 다례(茶禮)를 거행하고 왕이 행차할 때 수반되는 다례를 봉행했고 국가에서 직접 다점(茶店)을 운영하여 개경의 백성이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찻잔으로 쓰인 여러 가지 청자 완



청자 돈墩

파트3에서는 고려주자 가운데 다기(茶器)로 사용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주최측에선 주자 가운데 과형(瓜形)과 금속제 주자를 모방한 유형을 차주자(茶注子)로 구분하였다고 밝혔다. 고려시대의 다점(茶店)을 재현한 코너도 눈길을 끈다. 청자 향로와 꽃병, 돈(墩, 스툴), 청자 베개 등의 보조 작품을 배치했다.


고려시대에 수입된 중국 백자들



3.
고려 시대의 그릇이나 차문화를 살필 수 있는 ‘다큐멘타리 풍’ 기록이 남아있다.

1123년 송나라 휘종 때 고려에 파견된 사신 서긍은 몇 달 동안 고려에서 머물며 관찰한 고려의 풍습과 살림살이, 정세, 교통편 등을 기록해 이듬해 <선화봉사고려도경>이란 일종이 정세보고서를 펴냈다. 당초 완성된 책에는 세세한 도판이 실려있었다고 하지만 이런저런 난리를 겪으면서 글만 전한다. 40권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30권부터 32권까지 세 권에 걸쳐 고려의 생활용기에 대한 기록이 들어있다.

서긍은 이 책에서 고려 상류층이 정자에서 차나 바둑을 두며 소일했고 ‘하루 세 번 차를 마시고 입가심으로 차를 마신 뒤 ‘입가심’으로 탕(湯)을 마신다’는 기록을 남겼다. ‘서긍의 목격담’ 중 차와 술에 관련된 그릇에 대한 기록을 모아봤다.


□ 물병[水瓶]
물병의 모양은 대체로 중국의 술주전자[酒注]와 비슷하다. 제작하는데 은 3근이 들었는데, 정사 및 부사와 도할관•제할관의 숙소[位]에 비치한다. 높이는 1자 2치이고 배[腹]의 지름은 7치이며 용량은 6되[升]이다.( 1자는 조선 초기까지 32.21cm.)

□ 반잔(盤琖, 잔받침이 달린 옥색 술잔)
반잔은 중국의 그것과 비슷하다. 다만 잔의 깊이가 더 깊고 금을 두른 테두리는 오무라졌으며[釦斂], 잔받침[舟]은 작고 〈받침대의〉 다리가 높다. 은으로 만드는데 간혹 도금하기도 하였으며, 아로새긴 꽃은 정교하다. 술잔을 권할 때마다 새로운 잔으로 바꾸는데, 다만 용량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 술통[酒榼]
술통은 대체로 갖고 다니는 용기(容器)이다. 윗부분 <뚜껑>은 뒤집어진 연꽃 모양[覆荷]이며, 양쪽 귀에는 고리 사슬로 된 끈이 있는데, 금으로 중간 중간에 칠했다. 다만 술을 권할 때[勸酒] 특별히 사용하는데 <여기에 담으면> 술의 색깔과 맛이 모두 빼어나다. 외관을 살펴보면 높이는 1자에 둘레는 8치이고 늘어뜨린 고리<사슬의 끈> 길이는 1자 2치이며 용량은 7되로 만들었다.

□ 휴대용 병[提瓶]
휴대용 병은 주둥이[頭]가 길고 윗부분은 뾰족하며 배는 크고 숫돌처럼 평평하다[厎平]. 그 모양은 팔각형인데 간혹 도금하였다. 안에는 미음이나 끓인 물[米漿熟水]을 담는다. 고위 관리[國官]나 귀인(貴人)은 언제나 시종들에게 이것을 들고 따라다니도록 한다. 크고 작은 것이 같지 않지만, 큰 것은 2되를 담는다.


□ 정병(淨瓶)
정병은 목이 길고 배[腹]가 불룩한 모양인데, 곁에는 〈물을〉 따를 수 있는 주둥이가 하나 있다. 〈정병의〉 가운데에 두 마디가 있는데, 〈이것이〉 또한 줄을 맬 수 있는 고리[轆轤] 역할을 한다. 뚜껑의 목 중간에는 턱이 있고, 턱의 위에는 다시 작은 목이 있어 잠필(簪筆)의 형상이다. 귀인(貴人)과 고위 관리[國官], 도관•사찰[觀寺]과 민가[民舍]에서 모두 사용하는데, 오직 물을 담을 수 있을 뿐이다. 높이는 1자 2치이고, 배의 지름은 4치이며, 용량은 3되이다.

□ 꽃병[花壺]
꽃병[花壺]은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둥글어 마치 늘어진 쓸개 모양이다. 또 네모난 받침이 있어서 사계절 물을 담아 꽃을 꽂는다. 전에는 잘 만들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꽤 잘 만든다. 전체 높이는 8치이고, 배의 지름은 3치이며, 용량은 1되이다.

□ 보온병[湯壺]
보온병[湯壺]의 형태는 꽃병과 같으나 약간 납작하다. 위에는 뚜껑이, 아래에는 받침(승반)이 있어 (따뜻한)기운이 새어 나가지 않게 했는데, 역시 옛 보온기[溫器]의 일종이다. 고려 사람들은 차(茶)를 끓이기 위해 이 병을 많이 마련하였다. 전체 높이는 1자 8치이고, 배의 지름은 1자이며, 용량은 2말이다.

□ 찻상[茶俎]
고려에서 생산되는 차[土産茶]는 맛이 쓰고 떫어 마실 수 없을 정도이다. (고려 사람은)오직 중국의 납차(蠟茶)와 용봉단차(龍鳳賜團, 중국 복건성 건주(建州)서 생산되는 차)를 귀중하게 여긴다. 하사해 주신 것[錫賚] 이외에도 상인이 또 가져다 팔기 때문에 근래에는 차 마시기를 매우 좋아한다.
  더욱이 (고려 사람은)다구를 잘 만드는데, (예를 들어) 금색 꽃 무늬가 그려진 검은 잔[金花烏盞], 비색의 작은 찻잔[翡色小甌], 은제 세발 화로[銀爐湯鼎] 등은 다 중국의 다구를 모방한 것이다. 대체로 연회 때는 궁궐 뜰 가운데서 차를 끓여서 연잎 모양의 은 뚜껑[銀荷]을 덮어 천천히 걸어와서 내놓는다. 그런데 임무를 맡은 사람[候贊者]이 “차를 다 돌렸다[茶遍]”라고 말한 뒤에야 마실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냉차(冷茶)를 마시게 된다.
  객관 안에서는 붉은 소반[紅俎]을 놓고 그 위에 다구를 벌여놓고 붉은 비단 보자기[紅紗巾]로 덮는다. 매일 세 차례 차를 마시는데, 뒤이어 또 탕(湯)을 내놓는다. 고려 사람들은 탕을 약(藥)이라고 하는데, 사신들이 그것을 다 마시는 것을 보면 반드시 기뻐하고, 혹시라도 다 마시지 못하면 자기를 깔본다고 생각하면서 원망하며 가버리기 때문에 항상 억지로 그것을 다 마셨다.

□ 도기 술병[陶尊]
도기(陶器)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翡色)이라고 하는데, 근래에 들어 제작기술이 정교해져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 술독의 모양은 오이와 같은데, 위에는 작은 뚜껑이 있고, (술독의)겉면에는 연꽃에 엎드린 오리의 모습이 있다. 또 주발[盌], 접시[楪], 술잔[桮], 사발[甌], 꽃병[花甁], 탕기[湯], 옥색 잔[琖]도 잘 만들지만 모두 (중국의)그릇 만드는 법식[定器制度] 을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는 것을 생략한다. 술독만은 다른 그릇과 다르기 때문에 특별히 기록한다.


청자의 본향 송나라 출신인 서긍은 비색의 고려청자가 수준높다는 것을 자신의 기록을 통해 인정했다. 천하제일 고려비색을 즐기던 고려의 상류층은 송대 징더전(景德鎭)에서 생산된 수입그릇도 애정했고 청자와 함께 껴묻거리로 저승길에 동행시켰다. 덕분에 천년의 시간을 건너 이번 전시장에 나란히 등장하고 있다. 고려인의 우아한 미감에 ‘고려비색’도 있지만 국제 무역을 통해 확보한 당대의 하이테크 제품인 백자도 들어있다는 것, 여기에 서긍의 ‘보고서’나 전시장에 붙어있는 임춘(1149?-1182?)의 시 <다점에서 낮잠 자면서>나 이규보의 시를 더해서 보면 고려시대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하는 단초가 될 것 같은 전시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21.09.2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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