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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사적인 컬렉션, 가장 넓은 풍경 <회洄-지키고 싶은 것들>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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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회洄-지키고 싶은 것들
장 소 : 서울 예화랑
기 간 : 2021. 4. 1. ~ 4. 24.
글/ 김진녕

-1910년대 어느날, 서화미술회와 서화협회에 모인 그들의 시간
-시에서 그림이 되고, 그림이 연주가 되는 1000년의 시간을 이겨내는 작품의 힘



1.
<회洄-지키고 싶은 것들>전의 전시장에는 안중식의 <성재수간聲在樹間>이 걸려있고 황병기(1936-2018)가 곡을 지은 가야금곡 <밤의 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곡은 1993년 성음을 통해 발매된 <황병기 제4 가야금 작품집>에 <춘설>, <남도환상곡>과 함께 발표된 곡이다. 황병기는 2016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밤의 소리>는 심전 안중식의 <성재수간도(聲在樹間圖)>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라고 밝혔다. 그때 그의 말을 옮긴다.

“안중식의 작품 중 성재수간도가 있다. ‘소리는 나무사이에 있다’. 성재임간도(1911, 간송 소장본)와 혼동하기 쉬운데, 성재임간도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내가 봐도 고리타분하고, 성재수간도는 깜짝 놀랄 정도로 새로운 그림이다. 숲 속에 사는 사람이 자기가 그리워하는 사람의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기가 안나오고 (동자를 보내)사립문쪽을 유심히 보는데, 오는 사람은 없고 달빛은 밝고 발자국 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린다. 보통 동양화에서는 풍경을 웅장하게 그리고 사람은 조그마하게 성냥개비만하게 그리는데, 이건 사람이 숲 쪽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뒤에서 그린 것인데 영화의 한 장면같다.“


성재수간, 안중식, 종이에 수묵담채, 24x36cm


2.
안중식은 ‘성재수간’이란 화제로 적어도 석 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널리 알려진 것은 간송미술관 소장본(1911)이고,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안중식필 산수도 열폭 병풍(1912) 중 다섯번째 폭에 ‘성재수간’을 화제로 한 작품이 들어가 있다. 최근 옥션을 통해 고사인물화 형식의 한 폭의 성재수간도가 등장하기도 했다.

황병기가 영감을 얻었던 <성재수간도>도 최근까지 한 번도 공개적으로 전시된 적이 없다. 소장자가 그렇게 밝혔으니 틀림없는 일일 것이다.

예화랑의 <洄-지키고 싶은 것들>(~4월26일) 전시에 등장한 안중식의 <성재수간도>를 가장품家藏品으로 간직해 온 김방은 예회랑 대표는 “<성재수간도>는 증조할아버지(규당 김재관)의 유품으로 금성출판사에서 펴낸 <한국근대회화선-안중식>(1990년 1월 발행)편에 ‘도판 26’으로 실린 게 유일한 공식적인 노출”이라고 밝혔다.


한국근대회화선 - 안중식


3.
<洄-지키고 싶은 것들>전은 1915년 무렵 서화미술회 재학생이던 규당 김재관이 남긴 컬렉션으로 채운 전시다.

규당 김재관(1898-1976)은 서화미술회의 초기 입학생이었다. ‘근대적 성격을 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교육기관’인 서화미술회(1911-20)는 강습소를 두고 서과(書科)와 화과(畵科)의 두 과로 나누어 학생을 모집하였다. 당시 서화계의 대가였던 조석진(趙錫晋)과 안중식(安中植)을 중심으로 강진희(姜璡熙), 정대유(丁大有), 김응원(金應元), 강필주(姜弼周), 이도영(李道榮) 등이 강사진으로 나섰고 학생의 수업연한은 서화전공별로 3년이었고, 수업료는 전혀 받지 않았으며, 정규학생 이외에도 단기적인 교육을 받는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서화미술회 출신의 대표적 화가로는 제1기생으로 오일영(吳一英), 이용우(李用雨), 제2기생으로 김은호(金殷鎬), 제3기생으로 박승무(朴勝武), 제4기생으로 이상범(李象範), 노수현(盧壽鉉), 최우석(崔禹錫) 등을 들 수 있다.


서화미술회에서 김재관에게 준 포상장 (1915)


김재관의 그림


서화미술회에서 미술 공부를 하던 김재관은 도중에 그만두고 법률 전문학교인 경성전수학교(1922년 경성법학전문학교로 개칭)에 입학해 법 공부를 했다. 이런 사정은 전시장에 걸린 그림에도 나온다.

1915년 이한복(1897-1940)이 규당에게 그려준 <봉래선경>에는 법률 공부를 하게 된 규당을 격려하는 글귀가 들어가 있다. 전시장 한켠에 1915년 서화미술회에서 규당에게 준 포상장이 걸려있고, 재학시절 규당이 그린 소품도 석 점이 걸려있다. 적어도 1915년까지는 규당이 서화미술회에 다니다가 3년 과정의 경성전수학교에 입학해 1921년 졸업한 것으로 보인다.

전시장에 걸린 대부분의 작품이 그때 서화미술회 강사진이었던 안중식(安中植)과 조석진(趙錫晋),강진희(姜璡熙), 정대유(丁大有), 김응원(金應元), 강필주(姜弼周), 이도영(李道榮)의 작품이다. 대개는 규당에게 그려준다는 글귀가 작품 안에 들어있다.

규당과 규당 후손이 간직해 온 사적인 추억이 들어있는 서화류를 통해 100년 전의 서화미술회가 어떤 분위기였고 그들간의 온도가 어땠는지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규당의 서화미술회 스승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미술단체인 서화협회(1918-1936)를 결성했고 그들은 1921년 4월1일 중앙중학교 강당에서 첫번째 전시를 열었다. 규당의 증손녀인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규당의 컬렉션을 처음 공개하면서 1921년 4월1일을 기념해 2021년 4월1일을 전시 개막일로 잡았고, 전시 제목을 <洄-지키고 싶은 것들>이라고 잡은 이유도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소장품의 내력과 그들의 인간 관계가 한국 근대미술의 시작점 풍경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봉래선경, 이한복, 1915, 비단에 수묵채색, 130x33.5cm


4.
통역관으로 1887년 주미공사수원(駐美公使隨員)으로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던 강진희(1851-1919)는 서화미술회의 강사진이자 서화협회 발기인으로 활동했다. 강진희의 손녀(강정석)은 규당의 아들과 결혼해 두 집안은 사돈관계를 맺었다. 부친이 일찍 별세해 할아버지(규당) 슬하에서 자란 김태성은 부인 이숙영과 함께 1978년 예화랑을 만들었다. 김태성은 4대 화랑협회장(1982-85)을 지내기도 했다.

별세한 이숙영 대표의 부친은 일본 태평양미술학교 도안과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돌아와 천일백화점 지배인을 거쳐 사장까지 역임한 이완석이다. 1954년 당시 청계로에 있던 천일백화점 내 4층에 ‘천일화랑’을 열어 한국전쟁 직후 한국 미술계에 활력을 공급하기도 했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영국에선 갤러리 경영학을 공부한 예화랑 김방은 대표는 규당으로부터 따지면 4대째이고, 이완석으로부터 따지면 3대째 미술계 종사자이자 한국 근대 미술의 유산 상속자인 셈이다.


산고월소 수락서출, 이도영, 38x34.5cm


5.
김방은 대표는 “황병기 선생이 <성재수간도>를 좋아했었다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생전의 황병기는 복사본 그림에도 충분히 감동했다는 게 그의 글을 통해 드러난다.

“1980년대의 어느 날, 나는 KBS의 한 녹음실에 가야금 녹음을 하려고 들어갔다. 그 녹음실은 녹음기사의 조그마한 방을 통과하게 되어있는데, 그 기사 방에 걸어 놓은 동양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동양의 풍경화는 의례히 산수화이고 그 안에 사람은 상징물처럼 조그마하게 그려지는 법인데, 이 그림은 한 밤중에 숲 속에 있는 집 마당에서 어느 남자가 나무 가지 사이로 사립문 쪽을 유심히 바라보며 서 있는 뒷모습을 그린 것이어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현대화도 아닌 전통적인 동양화가 이런 구도인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나는 그 기사에게 이 그림을 나에게 팔라고 했더니, 그는 빙긋이 웃으며 복사본을 어떻게 파느냐고 하면서, 그렇게 좋으면 그냥 가져가고 그 자리에 다른 그림이나 사진이나 아무거나 대신 걸어 주기만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카톨리카(Catolica)라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해변 마을의 풍경사진을 걸어주기로 하고 이 동양화를 집으로 가져왔다.(...)
<성재수간도>를 집으로 가져오자마자 바로 가야금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림을 음악으로 작곡하려면 공간을 시간으로 번역해야 한다. 숲에 바람이 불면 수많은 나무 잎들이 나부끼는 소리 속에 듣는 이가 생각하는 갖가지 소리가 다 들리는 듯이 느껴진다. 따라서 <성재수간도>에서 남자 주인공은 자기가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반갑고 설레는 마음으로 마당으로 뛰어나가 사립문 쪽을 유심히 바라보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달빛만 가득한 마당에 바람만 휘몰아치고 있는 장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곡 전체를 4부분으로 구성했다. 1장은 달빛 밝은 밤의 숲 속에 있는 집 마당 풍경을 그린 것인데, 신비로운 화음으로 꾸며진 가락으로 고요하게 시작하여 잔잔하게 속삭이는 가락으로 이어진 후, 급속한 템포로 고조되었다가 다시 고요하게 가라앉으면서 끝난다. 2장은 사랑스러운 중중몰이 가락이 주인공의 설레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3장은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기교적인 악장인데, 특히 후반의 4련음과 6련음의 급속한 연타(連打)는 내가 새롭게 개발한 난삽한 가야금 기교로 연주된다. 마지막 4장은 애절한 여백의 미를 느끼게 하는 진양조 풍의 가락으로 되었다.”



천 년 전 구양수(歐陽脩, 1007년-1072년)가 남긴 시 <추성부>는 근대에 안중식의 손으로 <성재수간도>라는 그림으로 새 생명을 얻었고, 이는 다시 장르를 넘어가 황병기 손에서 음악으로 탄생해 현대의 시간을 살고 있다. 전시장에 황병기의 곡과 성재수간도가 만나고 있다. 작품의 힘은 그런 것이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21.09.2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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