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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의 아방가르드와 2021년의 아방가르드, 신영성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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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 시대를 보는 눈, 작가의 눈
-국현 과천관의 <시대를 보는 눈>, 수원미술전시관의 <생명 그리고 생명>전

전시명 : 시대를 보는 눈 - 한국근현대미술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기 간 : 2020.7.21 ~ 2022.07.31
글/ 김진녕

1.두 개의 전시

2020년 7월 20일부터 2022년 7월 31일까지 3년에 걸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되는 전시가 있다. <시대를 보는 눈>이란 이름의 전시는 20세기 한국미술을 10년 단위로 끊어서 각 시간대별로 한국미술의 흐름과 그 시간대를 빛낸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 ‘80년대의 다양한 소그룹’ 섹션에는 신영성(b.1959)이 20대 후반에 시작한 작업인 <코리안 드림>(1986-2002)이 들어있다. 벽걸이 선풍기 65개로 구성된 작품이다.

신영성이 50대에 시작한 작업은 수원미술전시관의 <생명 그리고 생명>전(3.2-3.21)에 출품된 평면작업 <만인사유상>(201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업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작품이 추가되고 있다.

 

2.난지도와 1980년대

신영성은 1985년 ‘난지도’라는 그룹을 결성하면서 한국 미술계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1986년부터 2018년까지 제작한 <코리안 드림>은 118점이고 이중 65점이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컬렉션으로 편입됐다.

작가에 따르면 이 작품은 버려진 선풍기라는 오브제를 사용해 만든 작품으로 처음에는 ‘선풍기라는 말에서 받침을 빼서 ‘서풍기’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낱개로 시작된 작업이 쌓이고 2002년 마로니에미술관에서 열린 신영성의 9회 개인전부터 ‘코리안 드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과천의 시대를 보는 눈 신영성의 <코리안 드림> 전시 장면 

 

난지도는 ‘모더니즘에 대한 극복과 일탈’을 목표로 등장한 소그룹이다. 당시 홍익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김흥년, 박방영, 신영성, 윤명재, 이상석 5명의 작가에 의해 1985년 창립됐다.

1978년부터 15년간 쓰레기 매립지로 활용된 난지도에서 이름을 빌려온 이 모임은 난지도는 1985년 관훈미술관에서 열린 창립전을 시작으로 3회의 그룹전을 열었다. 1987년 제3회 <난지도전>을 끝으로 해체했다. 3회 난지도전에 출품된 <선풍기>는 8대의 선풍기를 등장시켰고 이 작품이 <코리안 드림>의 원형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제3회 난지도전에 등장한 작품 중 거의 유일하게 작품이 남아있는 경우이기도 하다. 작가가 작품을 보존하고 계속 작업했기에 가능했다. 그때 출품됐던 박방영의 <신화 神話>(1987)나 윤명재의 <숲 Forest>(1987)은 도판으로만 남아있다.

 

- 왜 용도 폐기된 선풍기를 오브제로 취했나.

“젊은 시절에 내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니체나 뒤샹이다. 니체가 ‘인간이 만든 신은 죽었다’란 말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뒤샹은 창조의 문법을 뒤집은 사람이다. 그런 시대 속에서 개인적인 체험이 함께 나타난 게 버려진 오브제(폐기물)을 다시 파괴를 통해 창조하는 오브제 설치작업이다. 버려진 선풍기로 한 개 두 개 만들어가다가 2002년부터 집단화하면서 ‘코리안 드림’으로 이름 붙였다.”

 

- ‘버려진 것’이 ‘코리안 드림’인가?

“해체하면서 새로운 생명이 부여된다. 날개나 모터는 앙상하게 남고, 선풍기가 인간의 모습으로 상징화된다. 80년대에는 한국의 고도성장기였다. 지금도 산업구조가 혁신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그 당시에도 굉장히 바뀌던 시기다. 산업이 중공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재벌이 등장하고 고도성장과 양극화과 동시에 진행됐다. 폐기되고 버려지는 대규모의 사물, 인간도 폐기되는 현상을 보면서 나는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희망, 꿈을 녹여냈다. 그래서 역설적이긴 하지만 코리안 드림이라고 이름 붙였다.”

 

- 80년대는 어떤 시대였나.

그때 홍대를 중심으로 단색화가 유행하고 한국 미술에선 처음으로 현실을 이야기하던 민중미술이 뭉쳐지던 시기였다. 80년대 청년에게 주어진 교과서는 국전 출신의 추상회화와 단색화라는 교과서였다. 이는 현실 반영은 없이 조형의 아름다움만 논하는 장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20대 친구들은 그걸 거부했다. ‘학습되는 것,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때 함께 활동한 난지도나 메타복스 등의 소그룹 동인은 조형을 바탕으로 현실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래서 현실에서 폐기된 오브제를 가져와서 그 시대의 현실을 이야기하려는 시도를 했다.

난지도 창립전에 교탁을 잘라낸 작업을 냈다. 낯설고 날 것에 대한 것을 갈구가 컸다.

그때 함께 했던 대부분의 작가는 중도지폐하고 남아있는 작품도 없다. 고작 30년이 지났을 뿐인데 흔적이 거의 없다. 사진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2018년 <코리안 드림>이 국현에 소장됐는데 매우 특이한 경우였다. 내가 작품을 보관하고 있었으니까 가능했다. 2020년에 <시대를 보는 눈> 전시를 기획할 때 80년대 작가를 조망하려고 했는데 작품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전해 들었다.

 

- 난지도는 왜 해체됐나.

다섯 명의 동인으로 시작한 난지도는 87년 3회 전시를 끝으로 해체했다. 3회 동인전 때 신입회원 3명을 더 받기도 했다. 다만 하나의 샘물이 퍼져서 개천이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가길 바랬는데, 샘물이 바다로 가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조직 결성으로 이어지고 그게 개천이 되어 흘러가면서 오브제 설치작업이 당시 붐이 될 정도로 성과는 있었다. 그런데 강줄기가 되길 바랬지만 그렇지 못하고 정체됐다. 그래서 해체했다.

 


신영성, 만인사유상55, 2019


3.오브제에서 평면 회화로, ‘코리안 드림’에서 ‘만인사유상’으로

신영성의 작업은 2010년 께 부터 오브제 설치에서 평면 작업으로 무게추가 옮아갔다. 판화지에 0.5mm 펜으로 면벽수도하듯 수없이 많은 선을 그어가며 인간 군상의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 것인가.

“작품이나 사람이나 크게 변하는 게 아니다. 작품은 내면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원칙이나 철학, 내면을 이야기하는 게 작품이다. 나도 일관되는 게 있다. 내 일관성은 길들여지는 것에 대한 거부다. 그게 아방가르드다. 내 여정을 바라보면 폐기된 오브제 작업은 인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평면에서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지금은 좀 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 평면 작업쪽으로 움직인 계기가 있나.

“니체나 뒤샹을 이제 내 마음에서 비웠다. 새로운 것을 담기 시작했다. 2010년 께 여수 향일암을 갔었다. 거기서 원효대사를 만났다. 향일암의 구조나 원효가 면벽 수도 하던 모습, 바다를 바라보는 구도를 보니까 내게 ‘왜 사느냐’고 묻는듯 했다. 치열하게 내 삶에 대해 묻고, 그 의문을 갈구하는 게 아방가르드 정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이성적인 차원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뒤샹을 지우기 시작했다. 대신 내가 그리고자 하는 주제는 세상이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만인사유상>이 출발했다.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는 게 아방가르드다. 내가 청년 시절에 길들여지는 것에 대해 거부했다. 농사지을 때 준비하는 게 흙을 뒤집는 것이다. 그게 아방가르드다. 원효에게서 그걸 봤다. 판을 갈아엎기 위해선 통시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서양에서 얘기하는 뒤샹 등의 퍼포먼스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뒤샹을 이야기해야 하나. 뒤샹의 변기퍼포먼스는 수명이 다 했다. 반면 원효를 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진정성, 갈증, 과거에서 미래로 넘어가려는 욕망, 그런 자세와 태도를 봤다. 여기에 아방가르드의 진실성이 맞물려있다고 생각한다.”

 


신영성_ 만인사유상39, 2018 


- <만인사유상>은 세필로 완성하는 작업이라 육체적 노동량이 많을 것 같다.

“<만인사유상>은 가로 106cm, 세로 76cm, 40호 정도 크기의 연작인데 0.5mm 중성 펜을 써서 판화지에 작업한다. 한 점에 한 달 정도 걸린다. 일년이면 12점, 십년이면 120점이 나와야 하는데 실제는 71점 밖에 못그렸다. 하루에 8시간~10시간씩 작업했는데 그렇다. 작업하다가 과거의 부끄러운 기록이 갑자기 파노라마처럼 밀려오기도 한다. 그럴 땐 ‘자기 최면’을 쓴다. ‘나만 묻으면 아무도 모른다’고.(웃음). 그런 걸 이겨내고 작업하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한다.

 

- 2020년대의 한국 미술계는 어떤 모습인가.

한국 예술(미술)은 국제화됐다. 90년대부터 가속되기 시작했다. 한국 작가가 작품을 해도 한국인이 한 것인 것 외국인이 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맥도날드를 예로 들면, 베이징의 맥이나 뉴욕의 맥이나 같다. 그걸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물론 로컬도 있다. 우리는 두 눈으로 세상을 본다. 한 눈은 로컬의 눈으로, 한 눈은 글로벌의 눈으로 보면 되는데 요즘은 글로벌의 눈으로만 보는 쪽으로 경도되고 있다. 자본의 힘이 세진 탓도 있다. 물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문화도 그렇게 흐른다.

그렇다 하더래도 그 민족의 문화는 존재하는 법이고 존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인정받았다’고 들어오면 다 해결되는 경향이 있다. 90년대 이후 등장한 작가들 보면 ‘하늘에서 떨어진 작가’가 많다. ‘해외 비엔날레 등에서 인정받았다’면서 한국으로 역수입되고 있다.  



수원미술전시관 <생명 그리고 생명>전 신영성의 <만인사유상> 전시장면


‘평면으로 이어지는 아방가르드의 모험’.

신영성은 자신의 화집 에서 자신의 2000년대 평면 작업을 이렇게 정의했다. 1980년대부터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지속한 다양한 매체 실험의 결실로서, 사회참여적 주제의식이 평면에 펼쳐진다. 종이 위에 무수한 펜으로 무수한 선을 그리고 지우는 생로병사의 고뇌와 희로애락의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세상을 담았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호수 속의 달을 건지려고 한다. 나는 그 달을 그린다”라고 말했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1.04.12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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