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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대고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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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를 꽃피워낸 고려를 복원하다

글/ 김진녕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고려전 大高麗展>(2018.12.4.~3.3.)은 고려시대 문화를 설명할 때 관행적으로 따라붙는 수식어인 ‘화려함’와 ‘우아함’라는 단어가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전시다. 12~14세기 당대에, 아마도 동아시아 또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디테일과 완성도를 자랑했던 고려의 청자와 불화, 나전, 인쇄술을 증명하는 유물이 모두 전시장에 나왔다.


전시는 고려(918~1392)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송나라(960~1279), 원(1260~1368), 일본 열도의 카마쿠라 막부(1185~1333)의 공통된 유물을 비교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를 위해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의 <아미타여래도>, 미국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수월관음도>, 영국 브리티시뮤지엄의 <고려 나전 경함>,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목조 대일여래좌상,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의 <청자 상감 정병> 등 고려 컬렉션으로 이름높은 나라 밖의 11개 기관에서 유물을 빌려왔다. 국내에서도 해인사, 표충사, 대흥사 등의 성보는 물론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림미술관, 간송미술문화재단, 안동 태사묘 등 34개 기관이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에 나온 450여 점 중 국보가 19건이고 보물이 33건이다.


아미타여래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색, 105.6x47cm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주세페 투치)


고려의 문화를 그 시절 고려 사람이 어떤 세계관을 갖고, 어떤 필요성에 의해 이런 기물을 만들었는지,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당대의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고 다시 이웃 나라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종합적으로 살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전시라는 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오랫동안 기획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번 전시가 “전시품의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광복 이후 고려 미술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대규모 특별전으로 고려의 미술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전시”라고 밝히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돋보이는 점은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만 단독으로 치르는 전시가 아니라 각 지역별 국립박물관이 모두 참여해 고려라는 공통 주제로 지난해 말부터 기획해온 전시의 정점이라는 점이다.

2017년 12월 국립제주박물관(삼별초와 동아시아, 나주박물관 순회전시)를 시작으로 국립부여박물관(개태사), 국립청주박물관(중원의 고려사찰), 국립춘천박물관(창령사 터 오백나한),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고려시대의 미륵사), 국립전주박물관(부안 청자, 강진 청자), 국립대구박물관(영주 금강사 터에서 만난 보물), 국립공주박물관(충청남도의 고려) 등이 각 기관의 성격과 특성에 맞는 특별전을 열었고 ‘대고려전’은 그 정점인 셈이다.

21세기의 한국인들은 ‘전통 문화’라고 하면 흔히 조선의 풍습이나 유물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10~14세기 주인공이었던 고려는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시스템을 지닌 나라였다는 것을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려는 대외 관계에서도 유연했고 앞선 왕조의 문화적 전통을 배척하지 않았다. 조선과는 확실히 달랐다.

고려의 건국 이후 중국 본토에 세워진 송(宋, 960~1279)이나 거란족의 요(遼, 916~1125), 여진족의 금(金, 1115∼1234)과도 고려는 오랜 기간 국교를 유지하며 교류했다. 이후에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대제국을 건설한 원(元, 1271~1368)과도 정치적 간섭 속에서도 자주권을 지키며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이어나갔다.


(좌) 목조관음보살좌상, 송 또는 금, 높이 54cm, 영국박물관
(우) 목조세지보살좌상, 남송 또는 금, 12-13세기, 높이 43.5cm,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


전시는 고려의 건국부터 망하는 순간까지 연대기적으로 그려내는 고려 흥망사를 다루고 있지 않다. 한반도에서 10세기~14세기에 실존했던 고려라는 시스템이 성취했던 문화를 종합적으로 살피고 있다. 1부는 활발했던 교역과 이로 인한 부의 축적과 소비생활로 꽃핀 화려한 고려의 장식미술의 결과물을 전시했고, 2부는 ‘고려의 사찰로 가는 길’이란 이름으로 불교 미술과 출판 기술의 발전상을 다루고, 3부는 ‘다점’이라는 찻집이 있을 정도로 유행했던 고려의 차 문화를 다루고 있다. 4부는 ‘고려의 찬란한 기술과 디자인’으로 고려 공예 미술의 성취를 소개하고 있다.


전시의 마지막은 고려의 금속활자 ‘복 㠅’과 15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의 한글 금속활자를 소개하고 있다. 고려의 찬란했던 불교 미술이나 공예 문화, 출판 문화가 고려가 무너지던 날 갑자기 모든 기술과 향유 풍습이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조선의 권력 집단은 고려의 인쇄 문화 정도만 이어받았을 뿐이란 의미일 것이다. 고려시대에 공존했던 불교와 도교, 유학 중 조선 지배층이 선택한 것은 유학이었고 조선 지배층은 유학을 일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유교로 탈바꿈시켰다. 고려와 조선의 이런 차이는 전시물로도 확인된다. 이번 전시에 도봉서원 터에서 나온 금동 금강령과 금강저(한성백제박물관 소장품)가 전시되고 있다. 유교 서원 터에서 절집 물건이 나온 이유는 도봉서원 터가 고려시대에는 영국사라는 큰 절 터였기 때문이다.


호림박물관 소장품인 고려 시대 석장(서울시 지정문화재 209호)도 고려 불교 미술과 불교 문화의 저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주최측은 이 금동 석장과 비슷한 석장을 들고 있는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 소장하고 있는 <지장보살도>(고려 14세기)와 둔황 천불동에서 나온 <두루말이 형식의 시왕도>(오대 10세기, 브리티시뮤지엄 소장)을 나란히 걸어 비교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시왕도(제10오도전륜왕, 제7태산왕, 제5염라왕), 원 14세기, 비단에 색, 각 85.9x50.8cm,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고려시대 회화 작품 중 불교 미술을 빼면 몇 점 되지 않는 작품도 이번 전시에 나왔다. 공민왕 작품으로 전해지는 <엽기도>와 <출렵도>, 이제현 작으로 알려진 <기마도강도>과 나란히 걸렸다. 주최측은 비슷한 붓놀림과 소재를 보여주는 작품을 통해 문화의 교류와 발전을 보여주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소장품인 <육마도권 六馬圖卷>(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소장품>을 빌려왔다. 12세기 말부터 14세기에 걸쳐서 다른 두 작가의 그림이 합쳐진 이 작품은 청나라 건륭제와 가경제의 소장품이었음을 알려주는 도장이 찍혀있는 스타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미상 <염소와 양> 고려 14세기, 비단에 색, 23.5x14.9cm


메트로폴리탄 소장 <육마도권> 부분


이외에도 각자 다른 조형 감각을 보여주는 고려의 철불이나 유학자 안향이나 이색의 초상을 통해 살아있었던 고려인의 얼굴을 보여주려고 시도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미국이나 영국, 이탈리아, 일본에 흩어져 있는 고려의 문화 유산을 한자리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전시는 의미가 있다. 물론 해외에서 온 일부 고려 불화는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불화전>이나 2015년 삼성미술관 리움의 <세밀가귀>전에도 온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다른 맥락에서 놓인 전시품을 보는 것은 즐거움이다.

애초 주최측에서 강조했다가 불발된 고려 창업주인 태조 왕건의 청동 조각상(북한 국보)가 오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기는 하지만 그 작품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이 전시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왕건상이 왔더라면 좀 더 떠들썩한 홍보와 일반인의 관심이 증폭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최측의 아쉬움이 더 클 것 같다.



글/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9.01.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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