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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대미술관의 윤형근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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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 안에 다층적 변주를 깔아놓은 윤형근의 내밀한 세계

전시명 : 윤형근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기 간 : 2018.8.4.-2018.12.16
글/ 김진녕

엄버(umber)의 뜻을 찾아보면 ‘천연으로 산출하는 갈색 안료. 이산화망간과 규산염이 들어있는 수산화철로, 그림물감이나 도료 따위에 쓴다’고 나와있다. ‘다색(茶色)’은 ‘검은빛을 띤 주홍색’.

윤형근(1928~2007) 작가의 작품은 엄버를 '다색'으로 지칭하고 작품 제목으로 삼는다.


1972년작 blue

엄버를 기준점으로, burnt umber+ultra marine(청다색), umber-blue(청다색) 등 무심하게 물감의 이름을 작품 이름으로 삼는다. 엄버로 칠한 직사각형의 형태를 화면에 붓자국이 보이게 대충 밀어넣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쳐다보면 어느 것 하나 세심하게 계산되지 않은 것이 없다. 면포와 마포 본연의 색에 안료에 들어있던 기름이 번져나가는 게 배경이 되고, 면포와 마포 자체의 밀도에 따라 그 스밈이 미세하게 다르고, ‘다색’을 이루는 색의 요소들이 면포나 마포라는 매개체 위에서 스펙트럼처럼 각자의 기질을 내밀하게 선보이면 단색화가 아닌 다색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단색화의 대표작가 중의 하나로 꼽히는 윤형근의 회고전(~12월16일)이 열리고 있다. 윤형근의 미공개작을 포함한 작품 60여 점, 드로잉 50여 점, 아카이브 100여 점, 1979년도부터 1990년까지 쓴 일기 등이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 구성은 윤형근의 작가 생활 초반부터 1973년 숙명여고 교사로 일하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구속될때까지를 섹션 001, 1974년 장인 김환기 작가의 사망 이후 본격화한 윤형근을 대표하는 무채색의 엄버 시리즈가 섹션 002, 80년대 후반부터 말년까지의 작품이 섹션 003으로 나뉘어 선보이고 있다. 특히 별도의 공간에 마련된 ‘윤형근 아틀리에’는 작가의 작업실과 그가 자신의 생활 공간에 두고 즐기던 자신의 소품과 다른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전통 목가구 위에 올려진 작은 돌로 이루어진 구성이나 주둥이가 깨진 갈색 도자기와 백자 소품은 그가 백자를 사랑했던 장인 김환기의 취향과 상당부분 비슷했다는 것을 짐작케한다. 김환기의 점화 소품과 그와 교류했던 도널드 저드나 최종태 작가의 작품,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한 편액, 그의 아내이자 김환기의 딸인 김영숙이 그린 정물화도 윤형근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윤형근 아틀리에 최종태의 목조각


전시장에 재현된 아틀리에에 등장하는 의자 등 집기류에서 보이는 윤형근은 안락하고 유복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청년기까지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20세기 전반에 한반도에서 태어난 한국인이 겪을 수 있었던 궂은 일은 죽음 빼고는 다 겪었다.

1928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난 그는 왜정을 겪고 1947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국대안(국립대학교설립안)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류 조치 후 제적당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학창시절 시위 전력(前歷)으로 ‘보도연맹’에 끌려가 학살당할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전쟁 중 피란 가지 않고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1956년에는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다. 군부독재시기인 1973년 숙명여고 미술교사였던 그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중앙정보부장이 뒤를 봐주던 부정 입학생의 비리를 따지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들어갔다.


1975_76 청다색


딱히 뭘 한 것도 아닌데 공권력이 수시로 겁박을 주는 삶 속에서 그가 느꼈을 분노와 좌절은 엄청났을 것이다. 1973년 숙명여고 사건 이후 그는 작품에서 색을 빼버렸다. 면포나 마포 위에 엄버로 수직과 수평의 선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을 만들었다.

그가 엄버의 세계로 진입한 이후 평정이 깨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딱 한번이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 처음 공개된 1980년작 <다색>(1980)은 엄버의 세계로 진입한 이후 보이던 수직과 수평의 균형이 깨지고 색면이 기울듯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은근히 배어들도록 냅두던 물감도 화면 위에서 거칠게 흘러내린다. 그해 5월에 벌어진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극 소식을 듣고 크게 마음이 흔들려 그린 것이라고 한다. 섹션 001에 설치된 그의 연표에는 1980년 12월, 그가 부인과 아들(윤성렬)과 함께 파리로 떠난 것으로 나온다. 윤형근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보고 화가 나서 떠났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1980 burnt umber


윤형근은 2007년 세상을 떠났다. 작가는 이제 자신의 작품에 주석을 달 수도 없다. 작품만 남았다. 모처럼 그의 작품이 크게 모였다. 그의 세계를 둘러보고 그의 얘기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8.10.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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