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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랑이로 바라보는 동아시아 문화의 전통과 변주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韓國・日本・中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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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韓國・日本・中国-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특별전시실
기 간 : 2018. 1. 26 ~ 3. 18
글/ 김진녕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 한국 일본 중국의 호랑이 
건국 설화부터 5000년을 이어온 한국인과 호랑이의 동거
한국 용호도와 일본 에도시대 용호도의 스케일 대결도 볼거리 


새해 무렵에는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연하장을 주고 받고 절집 산신각에는 호랑이가 들어가 앉아있고, 20세기와 21세기에 한국이 주최한 두 번의 올림픽 마스코트는 호돌이와 수호랑이라는 이름의 호랑이가 뽑혔고 국기라고 부를 수 있는 축구협회의 상징은 호랑이다. 조선시대에는 무관의 가슴에 호랑이 무늬가 들어간 흉배를 달았고, 호랑이의 해에, 호랑이 달+호랑이 날+호랑이 시간에 담금질해 만든 사인검을 만들었고, 신행길의 신부가 탄 꽃가마에는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해서 호랑이 무늬 천을 덮고, 삼재를 피하기 위해 백성들은 호랑이가 그려진 삼재부적을 지녔다.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5천 년 전 건국설화에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정도면 세계에서도 손꼽힐만하게 호랑이 친화적인 나라라고 꼽을 수 있다. 
한국이 그렇다. 



지구 최고의 호랑이 친화 국가 한국에서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한국‧일본‧중국>전(~3월18일)이 국립중앙박물관 주최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과 중국 국가박물관 공동 주최의 전시이자 국립중앙박물관이 1998년에 연 <우리 호랑이전>이후 20년 만의 호랑이 미술 전시이다. 
전시품은 한국 일본 중국 삼국의 고대부터 근현대의 미술에 이르기까지 원시 신앙과 도교, 불교 관련 신앙 생활에 녹아든 호랑이 작품, 생활 속의 기물에 들어간 호랑이 모양 장식 등 다양한 의미로 변주된 한일중의 회화 38건, 공예 58건, 조각 5건, 직물 4건 등 총 105건 145점이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2년마다 열리는 한일중 3개국 국립박물관 공동주최 전시로 이번 전시는 한국 주최라 ‘한일중’으로 국가 호명 순서가 결정됐다.  

한국이 삼국 중 호랑이와 생활밀접도가 가장 크기도 했고 주최측인만큼 한국쪽 출품작의 종류나 스케일이 가장 컸다. 
특히 소장처가 달라 한자리에서 보기 힘들었던 김홍도의 명품 <송하맹호도>(리움 소장)와 <죽하맹호도>(개인 소장),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의 <맹호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한 자리에서 나란히 걸려 비교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 현존하는 조선 호랑이 그림 중 가로 세로가 각 2미터가 넘어 가장 큰 그림으로 꼽히는 19세기 <용호도>가 용도와 호도가 짝을 이뤄 전시돼 스케일이 주는 감각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김홍도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18세기, 비단에 수묵담채,90.4 x 43.8 cm, 삼성미술관리움


김홍도 임희지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 19세기 초, 비단에 수묵담채, 90x34cm, 개인



<맹호도猛虎圖> 18세기, 종이에 수묵채색 96x55.1cm, 국립중앙박물관



<용호도龍虎圖>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21.5×218.0cm(호랑이), 222.0×217.0cm(용), 국립중앙박물관


<용호도> 부분



김양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19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김양기 <송하맹호도> 부분

조선조 말 용호도 사이즈에 필적할만한 게 일본이 출품한 소가 조쿠안(16세기 말)과 가노 미치노부(1730~1790), 다와야라 소세쓰(17세기)의 6폭 용호도 병풍 6점. 각각 6폭에 용과 호랑이를 나눠그린 스케일 큰 그림으로 일본 특유의 휘몰아치는 듯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한국에서는 호랑이가 생활 속에 실재하는 위협이자 경외의 대상이었지만 일본 열도는 호랑이가 살지 않는 곳이라 호랑이가 용만큼의 판타지 대상으로 소비될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소가 조쿠안(曾我直庵), <용호도병풍> 17세기, 종이에 먹, 각 163.6×361.7cm(6폭 1쌍), 도쿄국립박물관


중국쪽에서는 청나라 시대 화가 이세탁(1687~1771)의 <호도> 한 점을 빼고는 전통 회화 분야에서는 호랑이 그림을 내지 않았다. 
전시 개막식에 참가한 황젼춘 중국 국가박물관 부관장이 “120만 점의 소장품 중 호랑이 주제 35점을 선별해 출품했다”고 밝힌 것에 비하면 좀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중국은 한나라 시대의 청동제 용과 호랑이 무늬 거울 등 다수의 한 대 청동제 기물과 명나라 때의 호랑이 모양 옥패나 금나라 시대 자주요에서 만든 호랑이 베개 등 시대별로 안배된 작품을 출품했다. 다만 중국의 사이즈를 연상시키는 큰 작품이 보이지 않았다.  



반면 30점을 출품한 일본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나라 도시나가(1667~1736)의 호랑이 무늬 날밑을 비롯해 주로 에도시대(1603~1868)에 등장한 청화백자에 그려진 호랑이, 호랑이 무늬가 들어간 벼룻집, 호랑이 무늬가 들어간 전투복 등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 나무, 도자, 천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기물을 출품했다. 

일본쪽 출품작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 왕이던 고요제 덴노가 쓴 글씨 <용호 龍虎>. 당시 왕으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흥과 망,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의 시작을 모두 경험한 그가 216.0x72.0cm의 종이에 꽉 차게 용과 호랑이라는 글씨를 썼다.     


개막식에 참석한 일본 국가박물관의 제니야 마사미 관장은 “이번 전시에 17세기부터 근대까지 30점을 출품했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고 14세기까지는 일본 전통 예술에서 사자 모티브는 있었지만 호랑이는 모티브가 아니었다. 일본에서 호랑이가 유행한 것은 남송 시대(1127~1279) 화가의 작품이 유입된 이후”라고 밝혔다.  

한국쪽 전시품은 평양 진파리 1호 구분에서 발굴된 사신도 중 일제강점기에 모사된 <백호 모사도>와 원삼국 시대의 호랑이모양 허리띠 고리, 토제 호자(호랑이 모양의 오줌통)으로 전시를 시작하고 있다. 2000년 전부터 한국인 삶의 모든 분야에 호랑이 모양이 넘쳐났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호랑이를 대상으로 한국 사람들은 조선 조 말에 등장하는 까치호랑이 그림으로 해학미를 즐긴 게 아니라 이미 2000년 전 그 무섭다는 호랑이 입에 오줌을 누면서부터 해학의 여유를 찾았던 것이다.  

호랑이를 상대로 친근감까지 느꼈던 게 한국의 전통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일본 중국 중 온나라가 호랑이의 위협에 시달린 나라는 한반도에 있던 나라였다. 하지만 위협과 비례해 생활 속의 기물과 신앙 대상물, 그림 속에 호랑이가 넘쳐나는 것은 호랑이의 직접적 위협에 시달리면서 반만년 동안 터득한 한국인의 지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19세기 말 일본에 머물면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연구했던 W.E.그리피스(1843~1928)는 조사를 통해 <은자의 나라, 한국>이란 책을 내면서 한국을 서구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이 책에서 그리피스는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조선 사람이 반년 동안 호랑이를 사냥하고 나머지 반년 동안에는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는 말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 호환(虎患)이 늘상 일어나는 일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 절집에 그려진 감로도에는 호랑이가 등장한다. 감로도는 망자의 생전 행실과 죽은 뒤의 심판, 극락 왕생의 삼단 구성으로 이루어졌는데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례에 호랑이가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호랑이에 물려죽는 비명횡사 사례가 현실의 고통 내지 흉사로 빠지지 않고 그려져 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이 호랑이의 현실적 위협 아래 5000년 이상 살아왔지만 한국인은 호랑이를 산군으로 모시며 절집의 산신각으로 모시거나 세화歲畫에 상서로운 상징으로 호랑이와 까치를 그리며 정서적으로 타협과 공존을 모색해왔다. 물론 집단적인 호랑이 사냥을 통해 현실적으로 호환 가능성을 줄여 농업생산성을 높이고 가죽을 벗겨 해외로 수출(공물)하기도 했다.  

무엇이 호랑이를 위협적인 존재에서 민중의 구원자나 수호자로 격상시켜 주었을까. 
전시장 벽면에는 일말의 힌트가 새겨져있다. 
벽면에 붙어있는 한일중 삼국의 호랑이와 관련된 속담이나 관용구 중에는 삼국의 공통 속담으로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도 무섭다’는 말을 꼽았고 한국만의 속담으로는 ‘범의 입보다 사람의 입이 더 무섭다’를 소개하고 있다.  
20세기에도 한국에선 조선에서 쓰이던 호환(虎患)의 경구가 여전히 관용구로 쓰였다.   
‘호환마마 보다 무서운 XX’.
20세기에는 ‘XX’ 자리에 주로 ‘불법 음란 비디오’가 들어가 농담으로 소비됐지만 그 이전에는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지배계급의 폭정과 학정이 범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범보다 무서운’ 폭정과 학정, ‘범의 입보다 무서운 지배계급의 호령’으로 인해 낮은 곳에 처한 이들을 구원하고 수호하는 ‘영물’ 호랑이의 자리가 생겼을 것이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8.09.2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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