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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욱진의 세계에서 만나는 문명의 교류, 시대의 교류 <장욱진 백년, 인사동 라인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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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탄생 100주기념전

전시명 : 장욱진 백년, 인사동 라인에 서다
장 소 : 인사아트센터
기 간 : 2017.7.24.~8.27.

글/ 김진녕

1.
장욱진 작가(1917~1990)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 <장욱진 백년, 인사동 라인에 서다>(~8월27일)이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한 선과 형태로 해, 나무, 집, 사람, 개, 까치를 그린 장욱진의 작품은 지금도 큰 사랑을 받고 있고 김환기나 이중섭만큼이나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근현대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유화 물감을 쓰는 서양화가지만 조선 문인화나 민화의 전통을 승계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14년 여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산수화, 이상향을 그리다>란 기획전에서 전시장 끄트머리에 그의 작품 두 점이 걸린 것도, 그의 작품이 현대에 전통 문인화의 정신을 이어받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100주년 기념 전시에는 0호에서 4호 정도 정도 되는 장욱진 스타일의 작은 그림 100여 점이 출품됐다. 그가 남긴 700여 점의 작품 중 100여 점이 출품됐으니 규모있는 전시일 것이고, 해외에서 이번 전시를 위해 건너온 작품도 들어있으니 장욱진의 그림을 아끼는 분들에겐 반가운 전시다.
 
2.
장 작가는 생전에 “큰 그림은 싱겁다”며 작은 그림을 고집했다.

“회화에 있어서의 회화성은 30호 이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 하면 규모가 커지면 그림이 싱거워지고 화면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한 면을 지배하지 못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세대> 1974년 6월호)

이 작은 그림들을 주최측은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할 것 같은 작고 심플한 ‘작은 집’에 모셨다. 장욱진의 거주지 이전 이력과 시기로 구분해 전시장을 나눠 놓은 것.








서울대 미대 교수 6년(1954~1960)을 끝으로 다른 직장을 구하지 않고 평생 ‘까치 그리는 사람’을 자처한 그는 경기 남양주시 덕소(1963∼1975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1975∼1979년), 충북 수안보(1980∼1985년)로 작업실을 옮겨 다녔고, 말년에는 경기도 용인시 신갈(1986∼1990년)에 자리를 잡고 작품 활동을 했다.

전시장의 '작은 집'은 그의 그림에서처럼 벽체와 지붕만 있고 색으로 구분했다. 덕소 시절은 빨강, 명륜동 시절은 파랑, 수안보 시절은 초록, 신갈 시절은 노랑으로 벽체에 색을 올렸다.
 
3.
전시장에서 거주지별 구분에서 벗어난 섹션은 불교 관련 그림과 목판화.
눈매만 그린 달마상과 아이들처럼 어깨동무를 한 문수-문현 보살을 그린 먹그림을 보면 장욱진의 세계가 선가의 세계에도 깊숙이 닿아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달마도> 1979


<절집> 1981

그와 불교에 얽힌 몇가지 에피소드도 있다.

왜정시대 때 제2고보에 다니던 장욱진은 일본인 역사 교사에게 대들었다가 퇴학 처분을 받은 뒤 몸이 나빠져 1933년 예산 수덕사에 정양을 갔었다. 그때 당대의 선지식으로 꼽히던 만공스님을 만났다고 한다. 10대 후반의 절집 생활 6개월은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는 1977년 통도사의 경봉스님으로부터 ‘비공(非空)’이라는 법명도 받았고, 그의 부인 이경순 여사도 집에서 예불을 올릴만큼 독실한 신자였다.


<진진묘>1970


집에서 새벽에 예불을 올리는 부인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이 이번 전시에도 출품한 <진진묘>(1970)다. 같은 이름의 작품이 1973년 작도 있지만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2014년에 경매에 등장해 6억원에 낙찰됐던 1970년 작이다.
1970년이면 장욱진의 덕소 시절이다. 전업 작가의 길로 나선 남편을 대신해 그의 부인 이 명륜동에서 책방을 하면서 살림을 책임졌다. 1970년 1월 초 명륜동 집에 머물던 장욱진은 아내가 새벽에 경전을 외는 모습을 보고 덕소로 내려가 아내의 모습을 U자형 주름진 옷을 입은 부처상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이 그림 왼쪽 상단에 ‘ZIN ZIN MYO’라고 표기해 아내의 초상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1973년에는 한자로 진진묘(眞眞妙)를 표기한 두 번째 초상화를 그렸다. 진진묘는 그의 아내의 법명이다.

입상 형태의 석불 중에는 법의를 U자형 주름으로 간략하게 표현하는 양식은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에 등장한다. 장욱진의 1970년작 진진묘에 등장하는 주름과 똑닮았다. 진진묘는 오른 손을 들고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쥔 수인까지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지 않은 1973년 작 <진진묘>는 좌불 형태로 옷자락을 표현하지 않고 간단히 선으로만 몸을 표현해 갈수록 간결해지는 그의 세계를 보여준다.
종교화는 그림에 등장하는 요소마다 의미를 부여하는 컨벤션이 세계라 가장 변화가 늦다. 요즘 조성되는 절집 그림의 주인공들을 보면 여전히 청나라나 당나라 또는 조선시대 어디쯤의 정체불명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게 그런 예이다.
그런데 장욱진은 이런 컨벤션을 모두 쳐내고 모두가 부처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불가의 핵심을 간단한 선 몇 개로 그려낸 것이다.
 
4.
이런 장욱진의 핵심으로 질러들어가는 과감한 현대성은 <팔상도>(1976)에서 더욱 빛난다.
팔상도(八相圖)는 말그대로 여덟가지 그림으로 보는 부처의 일생이다.
대개는 태몽-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탄생-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고민-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출가-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수행-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깨달음-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설법-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열반-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등 여덟가지 장면으로 이루어져있다. 글자를 모르던 시대에도 그림으로 보며 부처의 일생을 알 수 있는 그림 경전인 셈이다.
그림으로 읽는 불경인 것.


<팔상도> 1976


불교미술 사학자 김정희 교수(원광대)는 조선왕조실록 문종실록을 근거로 “고려시대 이래 석가모니의 생애를 그림으로 그렸고, 조선 초기부터 석가모니의 생애를 8장면으로 그리는 팔상도가 조성되었던 것이 분명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문종실록 즉위 원년(1450년) 2월18일자에는 1450년 왕위에 오른 문종이 1446년에 세상을 뜬 모친 소헌황후를 위하여 팔상성도도(八相成道圖)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팔상도라는 종교화가 적어도 한국 땅에서 500년 이상 그려져 왔다는 얘기다.
팔상도는 대개는 절집에서 팔상전이나 영산전으로 불리는 전각에 모셔진다. 보물 제1041호인 통도사 팔상도는 8폭으로 구성돼 있고 한 폭이 가로 151㎝, 세로 233.5㎝ 크기다.

이 엄청난 크기의 팔상도를 장욱진은 A4용지만한 크기의 종이 한 장에 집어넣었다.
석가모니의 탄생과 생로병사에 대한 고민, 출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과 유혹, 득도, 설법 등 팔상도의 어느 한 대목도 빠트리지 않았다.
팔상도의 500년 만의 혁신이 절집 문밖에 사는 서양화가 장욱진의 손에서 일어난 셈이다.
물론 장욱진이 우리 전통 문화의 흐름과 정신, 불가의 세계에 대한 지식과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5.
팔상도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전시도 마침 국내에서 열리고 있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간다라 미술>전(~9월30일)에서 2~3세기에 간다라 양식의 돌조각으로 만들어진 팔상도를 만날 수 있다. 이 돌조각 양식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그림으로 남은 제일 오래된 팔상도는 5세기 무렵 제작된 팔상도로 중국 윈깡 석굴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간다라 양식의 돌조각 팔상도는 내용적으로 지금의 팔상도와 같다. 석가모니의 남다른 태몽과 출생 과정, 번뇌와 출가, 수행, 득도, 설법, 열반으로 이루어지는 팔상도의 기본 양식이 이미 그때 완성형이었다.


<출가 후 브라만 수행자를 찾아감> 2-3AD, 편암, 파키스탄 페사와르박물관


장욱진 100주년 기념전이나 간다라 미술전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두 전시를 통해 2000년 동안 팔상도가 동진하면서 주력 매체가 조각에서 회화로 바뀌고, 인물이나 의상 등에 현지화가 이루어지다가 1976년엔 한 한국 화가에 의해 고갱이만 남긴 한 장짜리 그림으로 변하는 고대와 현대로 이어지는 긴 문명의 여정을 미술관에서 느낄 수 있다.
 장욱진이 받아들이고 체화한 뒤 우리에게 보여준 세계는 단순화된 선과 색을 통해 조선의 전통 문인화의 현재형을 보여주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세계에는 최소한 2000년도 더 된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민과 오랜 문명의 교류까지 담고 있는 것이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7.10.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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