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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과 흙, 나무와 쇠가 만나 이뤄낸 예술 - 김시영 이정섭 2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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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흙의 에너지를 드러내는 김시영/나무와 쇠의 에너지를 드러내는 이정섭

전시명 : 프롬 로우 머티리얼 투 아트 워크From Raw Material To Art Work
장 소 : 백악미술관
기 간 : 2017.8.10-2017.8.23

글/ 김진녕

김시영(b.1958)은 홍천에서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흙을 구워내 검은도자기(흑유)를 만들어내는 도공이다.
이정섭(b.1971)은 홍천에서 끌과 망치와 대패로 나무를 다듬고 쇠를 두드려 가구를 만들고 나무집을 짓는 목수다.

두 작가 모두 홍천에 기반을 두고 활동을 하지만 나이 차이도 있고 학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적으로 가깝게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다. 둘 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그것으로 이름을 얻은 작가이다. 그런 둘이 합동전을 열었다.
유명한 가수 둘이 듀엣 음반을 낸다고 해도 그 둘의 접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이 듀엣을 했을 때 시너지가 나와야 더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더 많은 음반이 팔릴 것이다. 이걸 기획하는 게 프로듀서, 즉 기획자의 몫이다.
김시영 작가나 이정섭 작가의 작업은 외관상 재료의 물성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김시영 작가는 이번 전시에 흙의 거친 질감이나 덩어리지는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을 선별했다. 이정섭 작가 역시 켜낸 나무의 질감 그대로 나뭇결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끌질 자국을 감추진 않은 직사각형의 플랫 시리즈와 쇠를 평평하게 만드느라고 두들긴 망치질 자국이 무늬의 일부가 된 스틸 시리즈를 냈다.
이 둘의 작업에서 둘의 세계를 잇는 점을 찾아내고 그 공통점의 지평을 탐구하며 합동전을 성사시키고 조직한 이가 정영목 교수(서울대 미술관장)이다.
정 교수는 왜 둘의 세계를 묶어 보려고 했을까.
 



“미술 작품은 물질에 천착한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는 물질에 변형을 가하는 마술사라 할 만하다. 물질의 속성을 유지한 채 형태만의 변화를 추구하는가 하면, 그 속성 자체를 넘어 변질과 변이를 꾀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상상과 상징으로 물질이 기호화되기도 한다. 뒤샹의 변기나 보이스의 지방(fat) 작품이 이들의 대표적인 예라 할만하다.
... 이런 세상에서 ‘날 것으로서의 물질’을 고집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의미있어 하고, 작업의 노동으로 승부를 걸어, 삶과 예술의 일상을 꾸려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 두 사람, 도공 김시영과 목수 이정섭의 최근 작품들을 묶어 기획 의도에 합당한 전시로 연출하여 세상에 내어놓는다. 김시영은 흙과 물과 불, 이정섭은 나무와 쇠를 다룬다. 그야말로 일주일의 칠일을 ‘날 것’과 씨름하고 노니는 작가다.
이 둘의 작업은 우리의 생활에 직접 관여한다. 김 도공은 도자기로 그 중에서도 검정빛이 도는 흑자 브랜드로, 이 목수는 집짓는 목수 겸 기능성의 가구와 쇠붙이를 생산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재료로, 생활 속의 기물로도 활용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당대의 취향을 꿰뚫어본 있는 작가 두 명을 맞붙인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재료의 물성과 에너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을 하는 두 사람이지만 과정은 많이 다르다.


김시영은 엔지니어 출신(연세대 금속공학과)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도공의 길로 들어섰다. 작업 초기 그는 가마의 불길의 흐름과 온도를 계량화하고 측정하고 지도를 만들면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불의 장난’으로 불리는 가만 안 불길의 움직임에 작품을 맡긴다. 계량(과학)에서 비계량(예술)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1300도가 넘는 가마 안은 흙의 에너지와 불의 에너지가 팽팽히 맞붙는 전쟁터이다. 흙은 도공이 다듬은 흙의 물성을 유지하기 위해 끝까지 버티고 불은 그가 움직이는 골마다 온도라는 매개를 통해 다른 문양과 색을 낸다. 불의 움직임을 견디지 못하는 흙은 무너져 내린다.
도자에서는 이런 불의 운동에 따른 우연적인 결과물을 예술로 받아들인다. 한쪽이 무너져내리고 이지러진 달항아리의 ‘예술’이 대표적인 불의 장난이다.
 




때문에 가마 안에서 무너져내린 도자기는 가마 안에서 일어난 불과 흙의 격렬한 싸움을 보여주는 유일한 증거물이다. 불과의 싸움에서 격렬히 맞서다 주저앉은 것은 사금파리로 전락한다.
김시영이 불타오르는 가마 안에서 불의 공세에 무너져내린, ‘완전하지 않은’ 형태의 도자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전후의 일이다. 그는 이런 과정에 대한 고찰을 ‘형태에 관해’라는 이름을 붙이고 연작을 내놓았다. 이 작업은 최근들어 ‘파형(波形)’ 시리즈로 발전했다. 주둥이와 어깨 부분이 내려앉거나 완전히 무너져 내려 파국을 맞은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에너지와 에너지가 격렬히 전투를 벌인 현장이다.
 


전시에서 막판에 제외된 파형 (작가 사진)


정영목 교수는 파형 작품을 주목하며 “김시영의 작품은 이번에는 기능성 보다는 작품성‘, ’정통 보다는 일탈‘, ’아름다움 보다는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을 연출했다”고 주목했다.
정 교수는 이번 전시에 출품할 작품으로 파국을 맞이한 작품보다는 아슬아슬하게 파국을 면한, 어깨와 주둥이가 함몰된 작품을 지목해 전시를 꾸몄다. 에너지가 격렬히 맞붙었던 대파국의 상황을 담은 작품은 ‘너무 튄다’는 이유로 막판에 뺐다고 한다. “기획자가 이번 전시에서 최소한의 기능과 최대한의 형태미를 염두에 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김시영 작가는 파형 시리즈에서 뛰노는 ‘거친 에너지’에 대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대학 때 산악반이었고 백두대간을 종주하다 만난 가마터에서 검은빛 사금파리를 만난 뒤 그는 도예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설악산에 귀때기청봉이라고 있다. 능선에 집채만한 바위가 있고 너덜지대라고 큰돌이 쏟아져내린 계곡이 있다. 거기 돌에선 어마어마한 자연감과 무게감이 풍긴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그런 자유로움이 이번 작업에서 느껴지길 바랬다. 이건 두뇌에서 나온 감각이 아니라 자연, 자유로운 형태에 중점을 둔 작업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 선을 예쁘게 낸 작품을 내지 않았다.”

김시영의 작업이 불의 에너지와 흙의 에너지가 맞붙는 치열한 전투의 결과를 하늘에 맡기는 것과는 달리 이정섭의 작업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세심함과 집요함을 통해 작품에 생명을 부여한다. 뭉텅이째 툭툭 잘라내 쌓아올린 듯한 그의 플랫 시리즈도 실상 나무가 뒤틀리거나 높이가 맞지 않으면 책상이라는, 테이블이라는 기능을 할 수 없다. 겉보기에는 이렇다 할 장식도 없이 오직 장식적 표현을 덜어내는 데 집중했을 것 같은 그의 작업은 실상 치밀한 계산과 다듬기의 반복이었을 것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서울대 미대)한 뒤 평면 작업을 선보이던 그가 비계량적인 세계에서 계량이 꼭 필요한 목가구의 세계로 전향했다는 점은 김시영의 행보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영목은 이정섭 작가에 대해 “작품의 스케일이야말로 이 목수의 작품을 평가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물질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스케일의 변화란 그 ‘노하우’의 경험에 결정적인 차이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특히 공간 전체를 다루어야 하는 작업일 때에는 그에 따르는 계량적인 정교함을 태생적으로 인지해야 한다. 쇠와 함께 그가 미니멀풍의 작업을 시도한 이번 작품은 이러한 이정섭 목수으 조형적 장점과 성정이 반양되었다”고 평했다.


이정섭 작가는 이번 전시에 그간 선보였던 목조 작품은 물론 쇠를 두들겨 앉은뱅이책상과 본체는 나무로 만들고 상판은 철로 만든 테이블 등 스틸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는 이 상판을 수없이 두들기고 다듬어 마치 흑유의 표면처럼 반짝이게 만들었다.
그에게 이런 질감을 표현한 의도가 있냐고 물어봤다.
“내가 작품을 만들 때는 어떤 의도 같은 게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두 명의 작가가 서로 다른 접근방법으로 흙과 불, 쇠와 나무의 에너지를 형상해낸 접점의 세계는 서울 백악미술관에서 <프롬 로우 머티리얼 투 아트 워크from Raw Material to Art Work>(백악미술관, 8.10~23)라는 이름으로 선보인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7.10.1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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