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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을 달려온 현대공간회 50주년 기념전 <1968 현대공간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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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의 '현대'와 2017년의 '현대'

전시명 : 현대공간회 창립 50년 기념전 <1968 현대공간회 2017>
장 소 : 김종영미술관
기 간 : 2017. 6. 9. ~ 2017. 7. 2.

글/ 김진녕 


1.
현대공간회 창립 50년 기념전 <1968현대공간회2017>(6월9일~7월2일)전이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현대공간회는 1968년 당시 20~30대의 젊은 조각가였던 고영수 남철 오종욱 이정갑 주해준 최병상 최종태 최춘웅이 그해 6월10일 결성한 조각가 단체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이 국제사회 속에서 동시공존하며, 민족적 자주, 자존적 긍지를 가지고 진부한 작가적 양심과 방황하는 정신적 풍토를 개선하고 신시대를 증언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새로운 조형언어로써 참신한 공간을 창조한다”고 명시했다.



이 모임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은 대개는 일제 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대학생 시절 4‧19혁명, 5‧16군사 쿠데타를 거쳐 산업화를 겪으며 늙어간 세대다.
창립회원인 최병상 고문(1937년생, 이화여대 명예교수)은 현대공간회 창립을 전후한 1960년대 후반의 풍경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1961년 3월28일 대학 졸업식으로 예정되로 거행되었으나 9개월만에 5‧16이 일어났다. 일제 강점기 말에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해방, 6.25전쟁, 4.19학생 혁명, 5.16군사 쿠데타 등 탄압과 빈곤, 전쟁과 공포, 파괴와 허탈, 혁명과 혼란이 간단없이 연속된 26년의 세월이었다. 당시의 작품 활동은 국전에 출품하는 것을 당연시하였고 연례행사의 하나가 되어 있었다. 개인전은 아주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창작의 열기는 어쩔 수 없이 단체전을 통하여 분출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2.
전시 개막식에 창립 회원이자 김종영 미술관 명예관장인 최종태 조각가(1932년생)가 나와서 현대공간회를 설립하던 무렵의 일을 들려줬다.


“회고라기 보다 그러려니 하고 나왔는데 아까 앉아 보니까 우리가 8명이서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5명이 여기 나왔다. 둘은 가시고, 한 분(고영수, 도미)은 연락이 안된다.
그래도 좀 옛날 생각을 안하려고 해도 저절로 나게 됐다. 시작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 10년을 있다가 서울로 왔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후배 조각하는 몇분들이 나를 만나자고 해서 여기 최병상 최충웅 고영수 등이 왔다.
만나고 보니 같이 공부를 해야 되겠다하는 그런 얘기였다. 나는 특별한 영문도 없이 ‘그러면 내 친구를 같이 가야겠다’고 해서 오종욱하고 이정갑 선생을 같이 해서 8명이 된 것 같다.
이것을 하자고 나선 후배들은 그 얼마 전에 대격변이 있었는데, 그게 4.19라는 큰 사회적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 후배들이)그때 지금의 광화문, 청와대 앞을 뛰던 그 친구들이었다.
그 중에 하나는 총을 맞아서 서울대 병원에 가서 있기도 했다.
그때 신문에 보면 이승만 박사가 4,19 부상 학생을 위로하러 서울대 병원에 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때 지금 행방을 모르는 고영수가 다쳐서 병원에 있었다.
그런 혈기가 모임을 주도했던 것 같다. 4.19 주력들이 나선 것이다.
나선 배경에는 자유당 때부터 우리나라의 여러 부정과 좋지않은 문제가 많이 있었는데 후배들은 거기에 대한 그런 갈증이 있어서, 모임이 시작이 됐다고 본다.
그런데 나를 왜 찾아왔냐면, 내가 시골에서 왔기 때문에 아직 때가 덜 뭍어서 그렇지 않나 본다.
그래서 시작한 게 현대공간회다. 처음에 이름을 지을 때 8명이 여러 논의를 했지만 특별한 이름이 있기 어려웠다. 그래서 ‘공간’이라고 하고, 그리고 ‘현대’자를 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간절한 ‘현대’라는 의미가 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그게 ‘현대’자를 붙이는 동력이 되지 않았나 본다.
전시회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때 선언문이라고 할까, 한마디 써야겠다 싶어서 8명이 앉아서 굉장히 여러날을 논의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국제 사회에서 동시에 대응한다. 외국 사람과 우리가 밀릴 게 없다, 진부한 정신을 쇄신하고 형태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그런 얘기를 8명이 앉아서 몇 일을 얘기 한 것을 내가 정리하고 썼다. 그 의견들을 전부 조합해서 만든 게 현대공간회 선언문이 됐다.
그때 누구는 말하기를 현대공간회 선언문이 좀 이상하게 돼서 마치 독립선언문같다고 하는 소리도 있었다.
한국은행 뒤편에 있던 빌딩에 11층에 삼보화랑이라고 있었다. 지금도 그 건물이 그대로 있다. 하나도 손을 안댔다.
거기서 우리가 첫출발을 했다.(1968년 12월11일 창립전) 그게 50년 전 옛날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까막득한 옛날 일이다.
거기에 김종영 선생, 장욱진 선생이 오셨다. 그때 김종영 선생이 무슨 말씀을 했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장욱진 선생은 이런 말씀을 했다.
확실하게 기억하는데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공부라는 것은 지속해야 한다’라는 그런 뜻을 말씀하신 것 같다. 지금 50년이 되고 생각해 보니 장욱진 선생의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새롭게 기억이 된다.
내가 회장을 했는데 그때 우리 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그 당시에 작품활동이라는 게 별로 없다. 그리고 미술가들이 할 일이 없으니까 회장이다 단체 뭐 이런, 사회에 있는 그런 일들이 미술가들한테도 영향이 온 것 같다. 서로 회장하려고 하고, 그런 풍속이 있었다.
그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회원들은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서 ‘내가 회장을 종신하겠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회장하려고 아예 생각하지 말아라’고 그런 얘기였다.
그래서 몇 년 회장을 하다보니 회장이 쉬운게 아니었다. 몇 년 하다가 물려주고 애초에 내 뜻을 굽히고 말았다.
내가 어느 시기에 현대공간회를 나오게 됐는데 이참에 그때 사정을 말하면 후배들이 신입회원으로 들어오는데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제자들이 하나 둘 들어오게 되니까 내가 불편해졌다.
그래서 내가 안되겠다 싶어서 아쉽지만 현대공간회를 나왔다.
지금 최병상이 지금까지 50년을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다. 존경스럽다.
최충웅 등 예전 생각을 하니 감개가 없지 않아 있다.
이렇게 와줘서 감사하다.
오늘 전람회를 다 봤는데 참 괜찮다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조각계에서 에너지가 충만한 전시회를 보기 쉽지 않다. 자화자찬같지만 본 소감을 안 말할 수가 없다."
 

3.
서울대학교 조소과에 재직했던 조각가 김종영의 제자 위주로 꾸려졌던 현대공간회 회원은 1990년대에 문호를 개방해 다양한 조각가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2017년은 현대공간회 창립 50주년이다.
현대공간회는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1968 현대공간 2017>이라는 50년 기념전을 열고 있고 현역 회원 12명이 참가하는 집단 개인전 형식의 전시 <12도큐멘트>를 김종영미술관과 이웃하는 금보성아트센터, 이정아갤러리, 키미아트갤러리, 예술공간수애뇨에서 동시에 열고 있다.


창립회원 작품 전시 공간


현역회원인 박찬용의 <박제-나비>(2012)



12도큐멘트 중 안경진 <신들의 춤>

집단 개인전 형식의 도큐멘트는 지난 2007년 창립 40년을 기념해 소속작가 26명이 참가하는 <26 도큐멘트>가 인사동 일대 13개 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렸고, 창립 45년이 되는 2012년에는 <북촌 프로젝트:22도큐멘트>가 22명의 작가가 참여해 북촌 지역 18개 갤러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면서 올해 행사까지 5년 주기의 행사로 자리잡았다.
2017년 12도큐멘트에는 김용진, 박영철, 안경진, 옥현철, 김건주, 김지훈, 유승구, 이성민, 김승환, 오창근, 이상길, 이수정이 참가하고 있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7.10.22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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