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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작 릴리프 시리즈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 <권오상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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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OSANG GWON - THE SCULPTURE
장 소 :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기 간 : 2016.11.7~2017.1.26

전시명 : 권오상 <릴리프 릴리프>
장 소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기 간 : 2016.12.16~2017.2.4

-19년간 진행된 시장의 관심과 권오상의 응답기
글/ 김진녕

‘데오도란트 타입’이란 이름으로 사진 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권오상 작가는 1999년 초 데뷔했다.
이후 19년이 흘렀고 권 작가는 플랫, 스컬프처, 뉴스컬프처, 릴리프 시리즈를 잇달아 선보이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6년에는 하반기에만 서울과 뉴욕, 상하이 등에서 5번의 개인전을 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아라리오 상하이와 윌링앤딜링 서울의 개인전은 올해로 이월돼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매번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버티지”하고 걱정하면서 20년을 거의 채우고 3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에게 지난 19년과 앞으로의 10년을 들어봤다.
 
최근 전시회가 많았다.
-2016년에 50점이 넘는 작품을 작업했고 하반기에만 5번이 열렸다.
지난해의 메인 전시는 상하이 아라리오의 전시라고 할 수 있지만 내겐 서울에서의 전시가 중요하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도시가 서울이다. 내가 자라고 큰 도시이자 데뷔한 도시기도 한 서울에서 잘못했다가는 큰일이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개인전을 안했으니 ‘비수기인 여름에 간단하게 하자’고 제의했는데 준비를 하다보니, 전시장이 있는 삼청동이 미술 인구도 많고 이상한 것을 보여줄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전시가 됐다.
아라리오서울 개인전(7월) 전시 준비 중에 릴리프가 머리 속에서 툭 튀어나왔다. 전시 오픈 한 두 달 전에 벽에 걸 수 있는 부조를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7월 전시에서 처음 소개한 릴리프 시리즈의 원형이 됐다. 플랫 시리즈의 드로잉에서 나온 작업이다. 사진을 오려서 입면체로 만들고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만든 플랫 작업을 한 게 2013년, 그걸 바탕으로 2016년에 릴리프 시리즈라는 부조가 나온 것이다. 8점을 만들어 그 중 6점을 전시했다.

12월에 개막한 윌링앤딜링 개인전 역시 장소가 서울인만큼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고 릴리프를 본격적으로 보여주자는 취지로 준비했다.


윌링앤딜링 전시 모습


아라리오서울 개인전때 뉴스트럭처 전시 연출이 특이했다.
-뉴스트럭처는 2014년에 시작해서 2년 동안 11점을 만들었다. 각기 다른 전시에서 한번씩 소개됐던 작품을 한점만 빼고 모두 모았다. 뉴스트럭처의 원형인 플랫 시리즈의 디테일을 보면 빼곡한 숲처럼 사물이 놓여있다. ‘그 사이를 사람이 거닌다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에 그걸 빼곡하게 배치했다. 플랫 안에서 산책하듯이 보게 만든 전시다.
 
뉴스트럭처에서 날카로운 모서리나 접합부같은 디테일을 가리지 않은 이유는?
-이게 성향의 차이인 듯하다. 나는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쪽을 택했다. 금속 판을 레이저로 따낸 자국을 그대로 남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뉴스트럭처가 건물 앞에 영구적으로 설치된다면, 아이들이나 행인이 다치지 않게 손을 볼 것 같기는 하다.
 


아라리오 서울 전시 준비(모형)


아라리오 서울 뉴스트럭처


데오도란트 타입은 중심을 어떻게 잡느냐보다는 표면 장식에 더 치중한 것 같은데.
-초기작은 완전히 조각적이다. 사람 조각을 만들었을 때 마네킹의 발에 판을 대서 중심을 잡는다. 중심이 흐트러져있기에 판을 댄다. 하지만 내 조각은 바닥에 판이 없다. 그건 조각과에서 배우는 것이다. 조각 쓰로가 중심을 잡을 수 있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 작품 바닥에 좌대가 있느냐 없느냐, 이건 전공자들의 게임이다. 그래서 더 완벽한 클래식한 조각이다.
 
뉴스트럭처를 ‘접이식 조각’이라고도 부르더라.
-접이식이 의도된 것은 아니고 원래는 칼더의 스태빌 작업이라는 정확한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플랫 작업을 확장시킨 것이다. 칼더의 특정 스태빌 작업의 형식을 빌려와 살만 입힌 셈이다. 전혀 다르게 보이지만, 칼더가 이미 스태빌이라는 작업을 통해 구조 문제를 해결했기에 나는 그 구조를 갖다쓴 것이다. 칼더와 다른 점은 해체 조립이 가능한 것이고,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조립돼 이동되고 전시가 되고 있으니까 접이식 조각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접이식 조각의 장점이 있다면.
-뉴스트럭처는 제작할 때부터 문제였다. 공간을 너무 차지하니까. 이걸 접었다 폈다 하면서 작업이나 운송 과정의 문제를 해결했다. 나무나 알루미늄판 위에 직접 프린트를 한 것이라 프린팅 자체도 영구적이다. 문제는 무게가 나가기 때문에 운송과 재조립 중 슬쩍 스치기만 해도 자국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조심하는 수 밖에.
 
윌링앤딜링에 등장한 릴리프는 프린트를 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건 앞으로 릴리프 작업에 대한 힌트일수도 있다. 서로 다른 금속이거나 브론즈도 들어가고, 대리석이거나 그래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뉴스트럭처도 철판을 나무로 바꿨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알루미늄이 생각보다 재료비가 많이 든다.
그런 와중에 릴리프를 두께가 필요해서 나무로 만들었는데, 나무결도 보이고, 색깔도 먹으면서 부드러운 느낌도 나더라. 그래서 뉴스트럭처를 나무로 만들면 어떨까 싶어서 치즈와 쥐가 있는 작품을 나무로 만들었는데 그게 반응이 좋았다.

이후 하반기 뉴욕 개인전 때 8미터 높이의 갤러리 천정에 뉴스컬프처를 샹들리에처럼 매달고 싶어서 나무로 가볍게 만들었다. 상하이 개인전에 내놓은 뉴스트럭처 두 점도 나무다. 지금 나무 뉴스트럭처가 5점이다.


플랫 시리즈와 뉴스컬프처 관계를 설명하는 권오상 작가


뉴스트럭처나 릴리프 시리즈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뭔가 못보던 것들이 나오니까 많이 좋아하는 듯하다. 뉴스트럭처는 2014년 페리지갤러리 전시에 처음 전시했다. 릴리프 시리즈는 나온지 얼마안됐지만 반응이 나쁘진 않다. 뉴스트럭처의 딱딱한 느낌이 많이 순화됐다고 한다.
 
1999년에 권오상이 유명해진 이유가 뭔가.
-그때 미술계 전체가 다른 것을 찾았던 것 같다. 20세기의 있었던 것과는 다른 것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듯하다. ‘젊은 것’을 넘어서서 ‘대학생인 어린애’는 뭐를 하나,란 관심도 있었던 것 같다. 대학생을 정식 미술관에서 데뷔하게 하고 해외 전시까지 보냈으니. 요즘 전시회 하는 젊은 작가가 대개 30대 초반인데 나는 그때 대학교 4학년, 25세였다.
데오도란트 타입이 미술사에 있었던 형식은 아니니까, 새로워 보이는 요소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회화가 발달해서 나온 장르가 사진인데 조각 장르와 뭉쳐져서 사진 조각이 됐다. 사진이 뭉쳐져서 조각이 된 것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그 입체가 입방체나 구같은 형체였다. 하지만 얼굴 조각은 없어다. 그래서 주목을 받았던 듯하다.
 
이후 20여 년 동안 작가로서 살아남았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약간 낭만적인 접근이 아니라 조각가라는 직업적인 의식으로 했던 게 버틸 수 있었던 힘이 아닌가 싶다.
낭만적으로 접근한다면 ‘오늘 작업이 되니 안되니, 작업을 망쳤니 안망쳤느니’ 하면서 기분따라서 뭔가 기복이 있었을 것 같다. 직업으로 접근하면 기복을 줄일 수 있다. 운도 좋았지만, 내 작업을 좀 더 거리를 두고 감상할 수 있는 입장에서 보기도 하고, 뭔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창작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창작한 것 같다. 쥐어짜고 강박에 시달린 것은 아니다. ‘직업이 너무 힘들다’란 식의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하다보니 해결되더라?
-내가 홍대 94학번인데 군 제대 뒤 외환위기가 터졌다. 대기업에 들어간들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정말 초기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좋은 직장에 취직했는데 회사 상황이 안좋아 월급이 안나오는 상황. 일자체는 너무 좋고, 그래서 ‘언젠가는 한꺼번에 보상이 될 거야’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98년 무렵에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내가 전업 작업로 나선 몇 년 뒤에 선배들이 ‘정신차리고 장가갈 생각도 하고 앞가림을 해야지’라는 조언도 했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니까 후배들이 작가를 하겠다고 하면 선배들이 ‘작업은 오상이나 하는 것이지 네가 무슨 작업을 하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더라. 나같이 일찍 데뷔하고 한국에서 공부하고 작업한 작가는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
 
‘원히트 원더’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
-어렸을 때 그런 부담감이 더 있었다. 대학교 다니면서 데뷔하고 갑자기 모든 미술잡지에 다 내 이름이 나오고, 거의 매달 크든 작든 소개되고. 그때 부담감이 있었다. 첫 개인전을 2001년 6월인가에 했는데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99년 1월초부터 따지면 그때까지 갭이 좀 크다. 그 사이에 크고 작은 그룹전에 참가해서인지 첫 개인전을 열기도 전에 ‘아직도 사진 조각을 하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오히려 그때 더 그런 강박이 많았다. 다른 작업도 하고 싶고.
 
새로운 시리즈를 내는 계기가 있나.
-데뷔하고 19년째인데 ‘한 번에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리는구나’란 생각이 든다. 시리즈 작업을 만들 때 조급할 때도 있었지만, 어느 때는 시리즈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시리즈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스컬프처 시리즈를 내놓은 다음에 작품이 너무 많으니까 정신이 없기도 하고. 그러다 몇 년 더 지나니까 ‘순리대로 하자, 자연스러운 게 최고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때 ‘자연스럽다’는 것은 내 컨디션보다는 전시의 구성과 시장의 반응과도 밀접하다.
시장이라는 것은 꼭 개인컬렉터가 구입하는 것은 아니다. 내 작품은 개인 컬렉터보다는 주로 미술관이 구입한다. 작품이 전시도 안되고 소장도 안되면 더 이상 그 시리즈를 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자연스럽게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천정에 매단 뉴스트럭처가 다시 모빌로 진화 중(모형). 서울 한 건물에 들어갈 예정.


데오도란트 타입은 꾸준히 작업하는 것 같다.
-데오도란트 타입, 플랫, 스컬프처, 뉴스트럭처, 릴리프 시리즈를 했는데 그 중 데오도란트타입에서 보듯 내 작업의 뿌리는 조각이다. 그래서 스컬프처는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토르소 시리즈처럼 주로 전시로만 소비된다. 토르소 시리즈가 시장에서 큰 반응은 없었지만 그때 제작하던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이미지를 가져와 조각하는 방식이 데오도란트 타입에 반영돼 더 조각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한 시리즈의 작업이 다른 시리즈에 영향을 준다.

시장의 반응이 중요한가.
-내가 대학을 다닐때는 시장의 존재를 몰랐다. 데뷔 이후에도 작품 제작을 할 때는 가장 돈을 안쓰는 방법을 찾아서 했다. 문예진흥기금을 받거나 무료대관 공간, 공모전, 기금신청 등의 방법으로 작업 활동을 해나갔다. 이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때 젊은 작가 대부분의 삶의 방식이었다.
상업 갤러리와 닿아있는 부분이 한국미술에서는 외환 위기 이후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2005년에 아라리오와 전속 계약을 맺었고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이후 국제나 가나, 현대도 젊은 작가 전속제를 실시하면서 젊은 작가를 육성하는 상업적 시스템 생기는 듯하다가 2007년 금융위기로 마감한다.
2000년 이후 금융 위기 이전까지 작품이 많이 팔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거품이 꺼지고 나서 ‘이게 정상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명한 만큼 작품도 많이 팔렸을 것 같다.
-우리 또래는 작품 매매가 중단된지 좀 된 것 같다. 한국에서는 호황 때도 내 작품의 개인컬렉터가 열명 정도? 대부분은 외국이나 국내 개인미술관이다. 데오도란트 타입도 기본 사이즈가 180cm정도 되니까 우리나라의 개인 집에 놓을만한 크기는 아니고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저 사람이 왜 우리집에 들어오느냐’라는 정서도 있고. 미술품을 돈주고 산다는 것 자체가 쉬운일은 아닌 것 같다.
해외 옥션에서 한번 성과를 낸 작가라면 상업적 이득을 누리겠지만 국제적으로 알려지고 전시를 많이 하고 유명 갤러리 소속이라고 해도 상업적 성과와는 거리가 있다.
학교 다닐 때 선배들이 ‘10년 작업해보라, 그러면 안정된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배들’은 10년을 활동해봤던 사람이 아니라 그런 얘기를 한 것 같다. 나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코앞인데도 ‘앞으로 10년은 어쩌나’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떤 고민이 컸나.
-우리 또래는 전업작가가 당연한 세대가 됐다.(그는 1974년 생으로 홍익대 조소학과 94학번이다.) 예전에 미술 전공자가 많이 없을 때는 보통은 졸업을 하고 유학을 다녀와서, 3년 정도 개인전을 하다보면, 성과가 쌓여서 대학에 임용이 됐다.
그런데 우리 또래는 이미 유학자가 너무 많아서 아예 그런 것은 생각도 안하고 작업만 했다. 이전 세대와 다른 길이다. 선배 세대는 정년 퇴임 뒤에 이제 전업 작가의 길을 간다고 인터뷰 하는데 우린 일찍 데뷔를 하고, 별다른 경제적 대책없이 작업만 하는 기간이 너무 길다.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전세대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다만 ‘자영업자’로서의 고민, 스튜디오를 유지할 수 있을지 경제적 문제 해결할 수 있을지의 고민이 크다. 개인전이 많으면 그 다음해가 걱정이 안되는데 요즘 정치적 혼란상이 너무 커서... 올해가 걱정이다.
그런 말이 있다. 컬렉터는 항상 예술 얘기를 하고, 작가는 항상 돈얘기를 한다고 한다. 각자 자기한테 없는 것만 얘기한다고...(웃음)
 
작품에 반짝이는 사치재가 많이 등장한다.
-모델들 포즈 때문에 남자잡지를 많이 봤다. 거기에 몇백만원씩 하는 시계가 나온다. ‘이걸 누가살까’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생각이 작품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종잇장을 세워놨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걸 비판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시계 사진을 오려서 작품으로 활용했지만 백화점에서 실제 시계는 조각으로 따지자면 존재감이 남다른 훌륭한 디테일을 가진 멋있는 덩어리더라. 어떻게 보면 비판이기도 하고 잘만들어진 물건에 대한 찬양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것 좋아한다. 누가 준다면 사양하지 않는다.

잡지나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이 많다.
-내 작품이 표피적으로 색깔이 있고 구체적 형상이라 쉽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실제로 잡지에 등장하는 여러 기물이 내 작품에 등장하기도 하고, 또 그들이 접근을 했을 때 내가 말을 잘들어주기도 한다.
전시를 할 때도 그렇고, 나이키나 현대차, 에르메스, 펜디, 재규어 등의 브랜드와 협업을 할 때도 그렇고, 그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 똑같다. ‘그동안 못해봤던 작업을 우리랑 하면서 해주면 된다’고, 마음대로 하라고 말한다. 나는 그말이 지겹다. 나는 모든 전시를 다 내 마음대로 했던 작가다. 오히려 ‘우리의 룰은 이런 것’이라고 제시하는 게 좋다. 나는 그 룰을 갖고 재미있는 전시나 게임을 할 수 있는데. 아라리오 마저도 ‘작품 많이 팔아야 하니까 이렇게 해주세요’, 그런 게 없다. 윌링앤딜링도 ‘그동안 못해봤던 것 해주세요’라고 말한 게 전부다.

내가 좋은 회사랑 작업을 한 것 같다. 작가가 너무 잘생기거나 너무 멋있어도 일이 안풀리다고 하더라. 만만하게 생겨야 잘된다고.(웃음)


한 잡지와의 협업으로 작업한 유명 배우의 다섯 흉상. 마티스의 쟈네트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불멸’에 대한 욕망도 있지 않을까.
-역사에 남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살아남을 확률은 오래 작업할수록 확률이 높아지지만, 박서보 선생이나 이우환 선생처럼 말년에 잘돼야지 젊어서 잘돼봐야 말짱 헛것 같다.
 
작업 행보에 대한 예감?
-뭔가 전통적인 재료를 쓰는 조각을 더 해보고 싶다. 예전에도 목조도 해보고 싶고 석조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으니까. 학부에서 한번씩 다뤄보기는 했다. 결국 혼자 힘으로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사진조각으로 왔지만 나무나 돌, 브론즈 같은 몇 천년 동안 내려온 불멸의 재료에 대한 매력이 있다. 그런 것들을 이용해보고 싶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프라모델을 좋아했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미술하기 전,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많이 좋아했다. 거기서 다 나온 것 같다.
그게 시작인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 뭔가를 만든 최초의 기억이 소년지 별책부록 중에 종이접기 공작을 만든 기억이 있다. 그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어렸을 때 그림 그리고 논 게 아니라 프라모델 조립에 광적으로 빠졌다. 거의 끝까지 갔다.
그러다가 미술을 한 것이고.
 



권오상의 상하이 아리리오 개인전은 1월26일까지, 윌링앤딜링 개인전은 2월4일까지 열린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7.04.23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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