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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화의 볼거리 한중일 몹신(Mob Scene)경관도 -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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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전시기간 : 2016.10.5 ~ 11.23
전시장소 :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18세기 얼굴은 여럿이 있다. 그중 하나가 도시화이다. 17세기 전쟁에서 백여 년이 지난 뒤 사회는 말끔히 전쟁의 상처를 회복했다. 뿐만 아니라 평화 속에서 경제 번영을 구가했다. 그 속에서 부의 집중이 이뤄졌다. 부자의 출현은 누구에게나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을 일깨웠다.  


작자미상 <한양전경> 19세기 지본담채 57.6x133.9cm

그래서 사람들은 도시로 몰렸다. 18세기 한양은 인구가 넘쳤다. 20만을 넘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수준이다. 참고로 18세기말 에도는 38만이었고 파리는 30만, 런던은 그보다 적어 25만 전후였다.

넘쳐나는 사람들 속에서 더 이상 과거의 권위, 위엄, 위세, 고전 따위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세속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는 볼거리에도 욕망을 거침없이 분출했다. 이 전시의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18세기 도시화로 등장한 새로운 볼거리를 망라적으로 모아보자는 것이다.


구영 <청명상하도>(부분) 명 견본채색 30.5x987.0cm 랴오닝성 박물관

여러 종류의 풍속화, 이색적인 볼거리이자 교양이 된 골동수집 취미 그리고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여행지 그림 그리고 스펙터클한 경관을 그린 그림 등. 모두 이 시대를 배경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하일라이트는 넘쳐나는 사람 그 자체를 그린 것이다. 도시의 골목길을 가득 메운 엄청난 수자의 사람들을 그린 그림, 즉 몹신(Mob Scene)이 있는 경관도는 이런 시대적 호기심에 의해 탄생했다.


구영 <청명상하도> (부분)

우리보다 먼저 도시화를 경험한 중국과 일본에도 몹신 경관도가 있다. 이 전시에는 이를 나란히 소개한 것이 볼거리 중의 볼거리이다. 전시에 나온 중국의 몹신 경관도는 명대 중기의 직업화가 구영이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下圖)>와 청 중기의 궁중화가 서양이 그린 <고소번화도(姑蘇繁華圖)>이다.


구영<청명상하도> 부분

구영의 <청명상하도>는 북송 때 그려진 장택단의 그림을 리바이벌한 것이다. 새봄(청명절)을 맞이한 수도 변경의 활기찬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동양 회화에 처음 등장하는 몹신 경관도이다. 일본학자 다마이 데츠오(玉井哲雄)는 그려진 인물이 773명이라고 세었다. 명대 들어 강남지방에 도시화가 진행되고 부자들이 출현하자 구영이 이를 새로운 볼거리로 다시 그린 것이다.


서양 <고소번화도>(부분) 1759년 지본채색 36.5x1241.0cm 랴오닝성 박물관

구영이 살던 소주(蘇州)는 명 중기 이후 알아주는 대도시였다. 소주는 당시 견직물 생산의 중심지였다. 당연히 부가 집중되면서 구영의 그림을 복제한 그림들이 수 없이 등장했다. 이를 소주편(蘇州片)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박제가는 조선에 앉아서 이 소주편을 9점이나 보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서양 <고소번화도>(부분)

청 건륭제는 재위 중에 6번이나 강남을 순행했다. 특히  활기가 넘친 대도시 소주에 큰 흥미를 보였다. 그는 궁정화가 서양(徐陽)을 시켜 이를 그리게 했다. 1756년부터 3년에 걸쳐 그린 것이 <소주번화도(蘇州繁華圖)>이다. 이 그림 속에는 도시의 구경꾼들이 그려져 있다. 놀이패를 구경하는 장면이다. 이는 몹신 장면에는 거의 공통적으로 보이는 소재이기도 하다.   


작자미상 <낙중낙외도>(부분) 18세기 지본채색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일본의 도시 몹신경관도를 대표하는 것은 <낙중낙외도(洛中洛外圖)> 병풍이다. 이 그림은 일본 근세의 평화시대인 모모야마(桃山)시대에 처음 그려졌다. 수도 교토의 경관과 당시 교역과 선교를 위해 일본에 온 서양인들이 그려진 이 그림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재 전해지는 것만 160여점에 이른다.



작자미상 <낙중낙외도>(부분)
에도시대 후기에 그려진 이번 출품작에도 포르투갈 상인과 선교사들이 보인다. 또 연희를 구경하러 모인 구경꾼의 장면도 있다. 여기에는 오늘날 교토 관광명물인 기온마츠리의 장식수레인 야마보코(山鉾) 행렬도 보인다. 



작자미상 <태평성시도>(부분) 18세기 견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당시 조선에서도 이런 몹신경관도가 그려졌다. 현재 전하는 단 한 점인 <태평성시도>이다. 언제 누가 그렸는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1792년 정조가 이를 신하들과 함께 감상한 기록이 있다. 이때 정조는 규장각의 젊은 문신에게 연작시를 짓게 했다.(여기서 일등을 한 사람이 윤두서 사위의 동생인 신광하였다)



작자미상 <태평성시도>(부분)

그런데 아쉽게도 <태평성시도> 속의 도시는 한양이 아니다. 중국의 어느 대도시이다. 등장하는 사람들도 모두 중국 사람이다. 연희도 중국 연희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에는 한양을 그린 몹신 경관도는 없는 셈이다.

이것이 18세기 조선의 도시화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 속에서 그려진 미술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에 나와 있는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존재가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y)
(구영의 그림은 23일까지만 전시되고 반환됐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12.1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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