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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나긴 해외 유랑 끝에 마련한 물방울의 안식처 -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개관전 <존재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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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 세계로 단독 출정했던 청년의 50년 만의 귀거래사

글/ 김진녕(미술 저널리스트)

1.
잔칫날다운 흥겨운 말은 개관식 행사의 막바지가 돼서야 들을 수 있었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의 개관 기념 축사를 하기 위해 등장한 박서보 작가는 김창열 작가의 오랜 친구라고 한다. 
박 작가는 1931년생, 김 작가는 1929년생.
둘은 1950년대 후반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해 앵포르멜 운동을 함께 벌였던 동지이기도 하다. 
김창열은 1966년 수중에 단돈 4달러만 지닌채 뉴욕 공항에 내렸다. 세계라는 바다를 향해 단독 돌파에 나선 것. 김창열은 뒷날 뉴욕 시절을 얘기하면서 “6.25때와 똑같이 힘들었다”고 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어린 아이에 자신을 비교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힘들었던 뉴욕이나 파리 생활 초기에도 김창열 작가는 동료인 박서보 작가에게 작업에 정진하라는 격려 편지를 보냈다. 
박서보 작가는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어눌해진 걸음에도 그때 받은 편지 중 한통을 들고 기어코 제주도에 왔다. 젊은 시절의 편지를 읽는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너(박서보)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살고 싶은 의욕이 번쩍 번쩍 일어나는구나, 돼지야. 걸레만도 못한 나(김창열)의 작품을 뚜드려 메우느라 똥창이 뒤집혔겠구나. 시간으로 따지면 얼마만큼이나 우리가 자기 속에 몰입을 했겠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짓이기는 일이다. 하긴 그거면 다지. … 쉴레의 그림을 봐도 별거 없으니 작품을 절대 없애지 말라’라는 등의 구절을 읽으며 간간이 즉흥적인 유머를 곁들이기도 했다. 
근 50년 전 편지에 기록된 김창열의 말을 박서보가 읽어주는 것을 듣는 것은 두 사람의 ‘젊은 날의 초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김창열의 편지는 친구의 별칭을 부르며 이렇게 마무리됐다. 
  “정신 바짝 차리고 그림 그려라 돼지야.”
박 작가는 자신의 말을 한마디 더 보탰다. 
  “친구 김창열의 미술관 개관을 다시한번 축하합니다. 축하한다 창렬아”


2.
김창열미술관의 마지막 순서는 이 미술관의 주인공인 김창열 작가의 인사였다.
몸이 불편한 김 작가는 앉아서 자신이 쓴 인사말을 읽었다. 
그가 공들여 선택했을 단어와 문장이 그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저는 태어난 고향과 평양에서 16년을 살고 이남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때가 우리나라 해방 때였습니다.
서울에서도 십 몇 년을 살았고 제주도에서도 한 2년을 살았습니다.
그러고는 죽 외국에서 살았습니다. 뉴욕에서 5년, 프랑스에서는 45년쯤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돌아가야할 고향이 늘 그리웠습니다. 
외국 생활이란 결국은 유배지의 생활입니다.
평안남도의 제일 북쪽 맹산이란 곳이 저의 고향입니다.
산좋고 물좋은 것으로 이름난 산골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까지도 호랑이가 출몰하는 것으로 아이들을 겁주는 신비가 남아있는 곳이었습니다. 
번개가 한번 번쩍치면 이산 저산에서 우레소리가 울려나오고 신화가 살아있는 것 같은 고장이었습니다. 
제주도 역시 풍광이 수려하지만 자연이 우르르 쾅쾅하면, 화가 나면 사람을 꼼짝도 못하게 묶어놓습니다.

초자연적인 힘이 살아있는 곳으로 두 곳은 통쾌하게 통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도에는 예지를 품은 아름다운 지명을 가진 곳이 참 많습니다. 
그 곳곳에 문화를 숭상하는 얼이 스며있습니다.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인문예술의 고도의 수준에 이른 선비들이 유배온데서 시작된 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오래 살아온 프랑스도 문화 예술을 숭상하는 고장이었습니다.
제가 제주도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도 자연의 신비가 남아있다는 것과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이 살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주도의 그 애정이 추사를 품어주었고, 저의 선배화가 이중섭을 비롯한 현존하는 많은 작가를 품어주었고 부족한 저 또한 품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의 이름을 내건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드디어 막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를 따라 유배지를 헤매던 저의 분신들이, 그림들이 드디어 안착할 곳을 찾았습니다.
그것들이 이제 찾은 제 자리에서 얼마나 제구실을 해주려는지 설레는 마음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원희룡 지사와 우근민 전 지사를 비롯한 여러 분들의 각별한 호의가 없었으면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두 분을 비롯한 모든 도민들과 앞으로도 수고해주실 미술관 식구들에게 그리고 이 자리를 축하해주시러 와주신 하객 여러분에게 일일이 큰 절을 올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3. 
이 인사말에서 다 드러나지 않는 그의 인생사 중 일부는 미술관 개관과 함께 나온 그의 평전격인 <형님과 함께한 시간들>(김창활 지음)이란 책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김창활 작가는 김 작가의 동생으로 이 책의 머리말에 “김 작가의 회고록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글 같은 것을 쓰실 때는 지나치게 공을 들이시는 분이라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이 책에는 김 작가가 분단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암시되고 있다. 
평양의 광성고보 3학년 재학 당시 해방을 맞았지만 반공주의자라는 이유 때문에 수감됐다 풀려난 뒤 월남했지만 전쟁이 터진 뒤 피난길에서 가족과 이산가족이 된 뒤 길거리에서 의용군으로 끌려간 스물한살의 김창열, 용케 의용군에서 탈출한 뒤 군대 대신 가게 된 경찰전문학교의 간부 후보생, 그러다 1951년 1.4후퇴 때 피난지 수원에서 열여섯살의 나이로 죽은 누이의 무덤 앞에서 제주도로 부임하기 직전 휴가를 나와 하루 종일 울어 대던 스물두살의 청년 김창열, 전쟁이 끝난 뒤 복학(서울대 미대)을 신청했지만 전쟁 전 월북화가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 다닌 것이 문제가 되어 복학이 불허돼 1961년까지 부평에 있던 경찰전문학교의 도서주임이란 적을 두고 경찰신문에 삽화를 그리고 미술 시간 강사를 하며 미술을 향한 끈을 놓지 않았던 서른이 되기 전의 청년 김창열의 삶의 단편이 담겨 있다. 
이 책에는 이제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개관으로 제주도와 남다른 인연을 맺게 된 김창열 작가가 경험했던 청년 경찰 김창열이 경험했을 제주 시절의 에피소드는 담겨져 있지 않다. 
다만 그가 제주도 시절 제주에 피난 와 있던 소설가 계용묵과 그 주변의 문학청년들과 교류하며 <흑산호>라는 동인지를 냈었고 이 동인지에 <동백꽃>이란 시를 실었다는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김창열 작가가 제주에서 경찰로 복무할 때 제주는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4.3사건의 한복판이었다. 김창열의 표현대로 ‘풍광이 수려하지만 자연이 우르르 쾅쾅하면, 화가 나면 사람을 꼼짝도 못하게 묶어놓는’ 폐쇄된 공간인 제주도에서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학살이 이어진 야만의 시간이었다. 
   
4. 
9월24일 개관식 행사는 미술관 야외특설무대에서 진행됐고 원희룡 제주지사와 정병국 국회의원(전 문화체육부 장관), 제주가 지역구인 오영훈 의원도 축사를 했다. 
개막식에는 김창열 작가의 가족과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과 배순훈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부부, 김창열 작가의 가족, 김 작가가 오래 활동한 프랑스의 갤러리를 포함한 국내외 미술계 인사들 500명이 참석했다. 
초대미술관장에는 김선희씨가 임명됐다. 


5.
지난 2013년 5월 김창열 작가가 제주도에 200여 점의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작품 기증 협약식을 맺은 뒤 구체화된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건립 프로젝트는 미술관은 2014년 4월 기공식 이후 2년여 만인 지난 5월 완공됐다. 총 사업비 92억원을 투입해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 문화지구내 대지 4천990㎡에 지상 1층, 전체면적 1천587㎡ 규모로 지어졌다.
김창열 작가는 이 미술관에 기증 당시 최소 평가액만 2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220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건축가 홍재승이 설계한 미술관은 ‘물방울을 매개로 곶자왈에 분출한 화산섬을 표현했다’고 한다. ‘신전’ 혹은 ‘무덤’ 같으면 좋겠다는 김 화백의 요청이 있었고 홍재승 건축가는 직선으로만 구성된 자디잔 나뭇결 문양의 검회색 콘크리트로 마감된 안식처를 만들었다. 곶자왈 지형답게 미술관 터는 움푹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주변의 산책로가 묏터의 활개처럼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산책로에서 건물 옥상이 수평의 다리로 이어진다. 건물 중정에 제주 화산석을 다듬은 검은 돌에 크리스탈 물방울이 올려져 있는 김 작가의 설치 작품이 놓여있다. 이곳에 실제 분수대까지 설치한 것은 동어반복, 중언부언이라는 느낌을 줬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은 내년 1월22일까지 개관전 <존재의 흔적들>이 열린다.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7.12.1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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