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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기(史記) 내용 그대로 돌에 새겨 드러낸 공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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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산동, 공자와 그의 고향전
전시기간 : 2016.9.8 ~ 12.4
전시장소 : 서울 한성백제박물관

중국이 중공으로 불리던 시절, 그곳으로부터 정보가 미미하기 짝이 없었고 또 위험시되기도 했던 시절 화상석(畵像石)이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화상석이란 형상이 그려진 돌을 가리킨다. 주로 후한 때 묘 앞에 제사를 위해 돌로 집처럼 세운 사당의 내벽을 장식하던 것들이다.

화상석은 종류가 많지만 가장 내용이 풍부한 것으로는 산동성 가상현에 있는 무씨사(武氏祠)를 손꼽는다. 무씨사 화상석은 이미 북송 시대의 기록에도 등장한다. 무씨사란 무량(武梁)과 무개명(武開明) 형제와 무개명의 아들 무영(武榮) 등 3개 사당분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공자견노자도(孔子見老子圖), 후한 무씨사(武氏祠)출토 산동박물관

이들은 그후 범람한 강물에 휩쓸리면서 대부분 땅 속에 묻혔는데 이것이 1786년에 새로 발견됐다.(정조가 즉위한 해이고 추사 김정희가 태어난 해이다)산동의 제녕(濟寧) 부시장쯤 되는 황역(黃易 1744-1802)은 서화가이자 금석에 조예가 깊었다.


산동의 특징을 보여주는 세발 주전자(橙黃陶長流鬹), 신석기시대 높이40cm 산동박물관

그는 그해 8월 임지 인근의 가상현을 일부러 찾아가 조사하면서 반 쯤 파묻힌 20여개의 화상석을 찾아냈다. 이때 찾아낸 것은 아마도 청대 금석학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옹방강에게도 전해졌는지 그의 『양한 금석기(兩漢 金石記)』에 내용 일부가 보인다. 

이 때문인지 제녕 사람으로 옛 것을 좋아하던 이동교, 이극정, 남정염 등이 또 그곳을 찾아가 흩어져 있던 10여개를 더 찾아내게 됐다.(그 후에도 발견이 잇달아 오늘날 이들은 산동 박물관 외에 현지의 무씨묘군 석각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청동정(靑銅鼎), 상 높이23.0cm 산동박물관, 뚜껑 안의 금문(擧祖辛禹)

그런데 중공으로 불리던 시던 이 무씨 화상석이 관심을 끈 것은 무량사의 화상석 중에 단군신화의 일부를 나타낸 것이 있다고 김재원 박사가 주장(『단군신화의 신연구』)한 때문이다. 이때가 1947년인데 이 무렵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70년대 이 책이 복각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 시절 중공과의 자료교류가 원화할 수 없어 더 이상의 진척은 없었다.

그런데 이때 무씨 화상석에 새삼 주목했던 것이 미술계였다. 조선시대 옛 그림은 딱히 이름이 없었다. 그냥 그림이었다. 그런 것이 일제 식민지시대에 동양화로 불리게 된 것이다.(일제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의 장르 분류가 그랬다)


혼수용으로 사용된 청동항아리(公子土折壺), 춘추 높이44.0cm 산동박물관

그러던 것이 70년대 들어 민족주의 정신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중국은 국화라고 하고 일본은 일본화라고 하는데 한국만 계속해서 동양화라고 쓰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하면서 한국그림의 원류는 어디인가, 나아가 옛그림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모색하면서 화상석에 주목하게 됐다. 그렇지만 이것도 착상에 그쳤을 뿐 당시 미술쪽이라고 해서 중공에서 정보가 들어올 리 없었다. 그래서 무씨사 화상석은 학계와 미술계에서는 꿈속의 자료처럼 여겨지게 됐다.

무씨사의 화상석에 대해 한국의 관심은 이렇지만 중국은 훨씬 더 특별했다. 그것은 무씨사당 중 무영사(武榮祠)의 화상석 중에 <공자견노자도(孔子見老子圖)>가 있기 때문이다. (제목을 붙인 사람은 황역이다)


옥벽(玉璧), 춘추 지름 31.0cm 산동성 문물고고연구소

공자는 단순히 유교의 창시자가 아니다.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중국의 정신이자 문화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 문화와 중국어를 전세계에 소개하는 기관 명칭도 공자학원으로 돼 있다.

즉 공자는 서구식 문화와 다른 중국 독자의 문화를 단 한마디로 대변할 수 있는 상징이다. 그런데 역사상 처음으로 공자의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등장한 것이 바로 이 무씨사의 화상석인 것이다.(이후 발견된 후한 시대의 화상석에서 몇 점의 공자견노자도가 발견되기도 했다)


소 모양 술그릇(陶牺尊), 전국 높이27.0cm 산동성문물고고연구소

그런 만큼 무씨사 화상석이 특별한 가운데 더욱 <공자견노자도> 탁본에는 각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이번 교류전은 그것이 하이라이트가 된 전시라 할 수 있다.

그외 자료는 공자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산동지방을 무대로 생장 소멸한, 고대에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처 한대까지의 특징적인 문화 유물을 보여주는 내용들이다. 이들 가운데 옥기와 청동기와 국내의 어느 미술관이든 박물관이든 결코 견학할 수 있는 유물들이 아니다.(y)   


희평4년(175년)에 경전을 돌에 새긴 평석경 잔석(熹平石經殘石), 후한 산동박물관 
         

추기: 이들 화상석에 대해서는 일본의 미술사학자 소후카와 히로시(曾布川寬) 교수는 여타의 중국 고대도상과 마찬가지로 묘주(墓主)가 죽은 뒤에 신선의 나라로 가기를 바라는 바람을 담은 승선도(昇仙圖) 계통으로 해석하고 있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12.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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