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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시문화재단]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기념 전시 <세종대왕과 음·악, 황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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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황종(黃鐘)”을 묻다

세종특별자치시 대통령기록관
2018.10.6-10.31

 

‘황종’이란 무엇인가?
  황종(黃鐘)은 우리나라 전통음악에서 기준이 되는 음(音)이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기준이 되는 음을 황종이라 정하였다. 동양 음악의 12율(十二律)은 황종(黃鍾), 대려(大呂), 태주(太簇), 협종(夾鍾), 고선(姑洗), 중려(仲呂), 유빈(蕤賓), 임종(林鍾), 이칙(夷則), 남려(南呂), 무역(無射), 응종(應鍾)이다. 12율을 열두 달에 적용하면 황종은 양(陽)의 기운이 처음 생기는 11월에 해당한다. 따라서 황종은 모든 음들의 시작이며, 기준이 된다.
  전통사회에서 왕과 국가가 택한 기준은 ‘황종(黃鐘)’이었다. 중국에서는 새로운 왕조가 서면 황종음을 정하였다.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음의 12율 중 가장 기준이 되는 음을 지정한 황종을 제작함으로써 음의 높이와 길이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황종이란 악기이자 음의 이름이기도 하고, 도량형의 단위이기도 하다. 이것은 확장되어 기준을 의미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수치 이상의 것 즉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이렇게 오늘날 ‘표준음’이라 칭할 수 있는 황종은 왕조사회의 새로운 기운과 함께 지정되는 방식에 의해 ‘정치적인 이상’을 상징한다.


  세종대왕과 ‘황종’은 무슨 관계인가?

  세종대왕은 기준을 세워 그 어디에도 기울어지지 않은 상태, 즉 균형의 정치를 추구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는 이상적인 상태인 표준과 균형을 갈망하였는데, 악을 바로 세움으로써 그것을 이루고자 하였다.

“주척의 제도는 시대에 따라 모두 같지 아니하며, 황종의 관도 다르다. 옛사람은 소리에 따라 음악을 제작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소리가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옛 제도를 조사하여 관을 만든다 해도 올바르게 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니 옛 제도만 본떠 만들어서 뒷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느니 차라리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세종 10년 10월 18일) 


  세종대왕은 중국의 음악과 우리 음악이 다름을 언명하였고 그로 인해 표준음인 ‘황종’이 달라지는 합법성을 얻었다. 그리하여 세종대왕의 ‘황종률’ 제정은 중국식 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유포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중국과 다른 우리 식의 기준이 문자를 창제한 것이 한글이라면 우리의 소리에 맞는 황종 음을 제정하였다.


  ‘황종’은 어떻게 정하였는가?

  세종대왕은 박연으로 하여금 국내 남양에서 나온 돌로 편경을 만들도록 하였다. 세종15년 1월 1일 근정전에서 회례연을 베풀며 처음으로 국내산 악기를 사용하였다.

“중국의 경(磬)은 과연 화하고 합하지 아니하며, 지금 만든 경(磬)이 옳게 된 것 같다. 경석(磬石)을 얻는 것이 이미 하나의 다행인데, 지금 소리를 들으니 또한 매우 맑고 아름다우며, 율(律)을 만들어 음(音)을 비교한 것은 뜻하지 아니한 데서 나왔으니,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 다만 이칙(夷則) 1매(枚)가 그 소리가 약간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불안정한 음은 돌을 덜 연마해서 생긴 일이었으니, 음악연주를 즐기기 않은 세종대왕이었지만 오늘날의 절대음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산 돌로 만든 편경소리를 듣고 중국 것보다 더 ‘옳다’고 하였던 것은 중국에 비해 부족할 것이 없다는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을 왕 스스로 표명함으로써 주변에게 자긍심을 갖게 하는 말이었다.


  ‘황종’은 음악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국내산 경쇠를 다듬어 황종음을 얻고, 국내에서 생산된 크기가 가지런한 황해도 해주의 검은 기장을 사용하여 음의 길이를 표시하였다.

  “우리나라는 지역이 동쪽에 치우쳐 있어 중국 땅의 풍기(風氣)와는 전연 다르므로, 기운을 살펴서 음률(音律)을 구하려 하여도 응당 징험이 없을 것을 요량하고, 이에 해주의 거서(秬黍)의 모양에 의하여 밀[蠟]을 녹여 다음으로 큰 낱알[粒]을 만들어서 푼(分)을 쌓아 관(管)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우리나라 붉은 기장[丹黍]의 작은 것과 꼭 같았다. 곧 한 낱[粒]을 1푼으로 삼고 열 낱[粒]을 1촌(寸)으로 하는 법을 삼았는데, 9촌을 황종(黃鍾)의 길이로 삼았으니 곧 90푼이다. 1촌을 더하면 황종척(黃鍾尺)이 된다.” (세종15년 1월 1일)

  남양에서 난 ‘국내산’ 돌을 사용하여 우리의 음인 ‘황종’을 제정하였다. 황종음의 길이를 재어 만들어낸 단위가 황종척(黃鐘尺)이었다. 물론 황종음을 기본으로 하여 황종율관을 만들어 길이로 삼는데 ‘기장’이라는 식물의 알갱이 개수를 센다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론처럼 실제가 그리 쉽게 구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땅에서 생산된 곡식을 기준으로 도량형을 만들었고 해주산 기장 100알의 길이와 10알의 높이가 의미하는 것은 세종대왕의 황종척 제정 이후 국내산 ‘척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도량형의 통일은 합리적이며 평화로운 삶을 위한 기본적인 요소인데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경쇠,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기장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단지 우리 풍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우리의 소리’를 기반으로 한 자주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리에서 시작하여 부피와 길이로, 무형의 공간에 존재하는 파동이 입체가 되어 됫박에 넣어져 부피로, 자 위에 얹혀져 길이로 고정되었고 그러한 과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롭고 자주적인 삶의 확립이었다.


  세종대왕의 음악은 미디어이다!

  “나라를 다스림에 예보다 중한 것이 없으나 악의 소용 또한 큰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예는 중히 여기면서도 악에는 소홀하여 이를 익히지 않는 일이 많으니 가히 한탄할 일이다.” (단종 1년 7월 9일)

  제왕의 음악은 정치행위이다. 상징적으로는 예와 악으로 다스리는데, 예는 천하의 구별과 질서라면 악은 조화이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은 실질적으로 조회, 제사, 각종 국가적 행사에서 사용되는데 음악을 통해 왕의 이동을 알 수 있고 행사의 내용과 순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커다란 모니터나 무전기가 없던 당시의 음악은 일종의 미디어와 같은 것이었다.

“또 우리나라는 본디 향악(鄕樂)에 익숙한데, 종묘의 제사에 당악(唐樂)을 먼저 연주하고 삼헌(三獻)할 때에 이르러서야 겨우 향악을 연주하니, 조상 어른들의 평시에 들으시던 음악을 쓰는 것이 어떨지, 그것을 맹사성과 더불어 상의하라.” (세종 7년 10월 15일)

  이렇게 초헌, 아헌, 삼헌 등 잔을 올리는 순서에 따라 연주되는 음악이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제사에 향악이 세 번째에 가서야 등장하는 점을 지적하였고 제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아악은 본래 우리나라 음악이 아니니 평일 에 익히 듣던 것으로 제사음악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 음악의 실질적 기능과 상징성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국가가 없던 당시 국가적 기념일과 같은 행사에서 우리나라 음악이 연주될 때 느꼈을 자긍심을 헤아려볼 수 있는 것이다.
  새종대왕은 실지로 음악 자체에서도 아악을 존중하면서도 향악을 키웠고, 악기를 개량하고, 악보인 「정간보(井間譜)」를 만들었으며 심지어 세종대왕 스스로 「정대업」, 「보태평」과 같은 음악을 작곡하였다. 한 나라의 왕이 제사에 사용하는 음악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말은 그의 음악적 천재성을 알리는 것이 아니다. 세종대왕의 대표적인 음악적 업적은 당시 중국과의 관계 안에서 취한 정치적인 입장의 표명이다. 그것은 신생국가 조선이 중국식 예법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예법을 세우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었다. 세종대왕의 ‘음악’에는 국가의 자주성 유지라는 정치적 입장이 내재하여 있는 것이다.         

  세종대왕의 음·악 정치가 의미하는 것은 “조선이 중국에 견주어 부끄러울 것 없는 음악문화국가”라는 생각을 심은 것이었다. 그것은 바른 제도와 문화를 가진 정상적인 국가를 건설하였다는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속한 공동체인 자신의 국가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세종대왕이 이룩한 가장 큰 업적이었으며 그의 한글창제, 악기개량, 악보발명, 과학기기의 발명 등 모든 업적이 하나의 의지로 모아진다.



구현되는 황종

  전시는 작가들의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는지 직접 듣는 영상과 작품이 전시된 전시실의 감상영역, 관객의 세종대왕 시대 음악의 체험영역 그리고 세종대왕의 음악을 재해석한 EDM을 몸으로 만나는 강당 등의 공간에 흩어져 있다. 
 
  가. 로비에서
  관객은 대통령기록관 로비의 대형 스크린에서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생각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작가들의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은 ‘황종’에 대한 이해부터 전시의 의미 등을 새기어 가는 과정을 파악하게 한다.

  나. 구름다리
  대통령기록관 기획전시실은 로비에서 좁은 구름다리를 건너야 나오는 공간이다. 이곳 구름다리 위에 걸린 깃발을 통해 왕의 거둥 때 내리어졌던 화려한 깃발의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다. 휘날리는 깃발은 전시장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다. 전시실 입구
  기획전시실은 좌측에 카페, 정면에 수유실 등으로 열려져 있는 현관과 같은 구조를 띠며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전시실에 이른다. 이 영역을 나누어 관람객을 유도하기 위하여 기둥을 세웠다. 궁궐에서 볼 수 있는 둥근 기둥인데, 전시실의 벽면과 같은 흰색을 칠하여 전통과 현대, 실재의 공간과 전시실이라는 상징을 부여하였다.

  라. 전시실
  대통령기록관 기획전시실은 호형의 공간으로 한 면은 외부를 향해 창으로 열려진 공간이다. 내부 공간은 다른 미술관보다 훨씬 강하게 적용되는 소방법에 따라 공간 전체를 미술관처럼 밀폐된 공간으로 만들 수 없었다. 따라서 기둥이 선 궁전의 어느 영역을 돌아보는 것 같은 공간을 구현하려 하였다. 
  음악적 요소가 많은 작품들이므로 서로 다른 작품에 간섭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영상을 위한 방을 만들어 설치하였고, 입체 작품들은 동선을 유도하여 가며 세종시대의 음악과 황종의 현대적 의미를 경험하게 하였다.

   안정주, 강서경, 김효진, 감성복, 문준용, 강애란, 박준범, 오민 
 
  마. 복도
  대통령기록관의 로비에서 구름다리를 건너 기획전시실을 바라보면 호형의 기혹전시실 형태대로 복도가 연결되어 있다.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온 관객은 이곳 벽에서 조해리, 김기라x김형규 작품을 볼 수 있다.

  바. 강당
  이번 전시를 위하여 작가에게 주제를 주고 의뢰한 작품이다. 그것은 세종대왕시대 음악을 현대의 가장 최근의 음악인 EDM으로 구성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세종대왕이 만들어 내린 음악은 “신악”이었고 그 신악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사. 체험공간
  전통음악의 12율이 창제된 원리를 보여주는 공간에서, 세종시대 만들어진 여민락 등의 음악을 관객이 해드폰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다. 다양한 악기의 청각적 체험은 어렵고 듣기 힘들 것이라 무조건 생각하던 편견을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아. 부대행사
 
 ① 미디어 퍼포먼스 : 참여작가 김효진
   10월 5일  16:00–16:10
   10월 6일   16:00–16:20
   10월 13일 15:00–15:20
   10월 20일 16:00–16:20
   10월 27일 15:00–15:20

 ② 아티스트 토크
   10월 20일 15:00–16:00
  사회 : 조은정(전시감독)
  참여작가 : 김기라x김형규, 김효진, 박준범

③ EDM 공연과 미디어 퍼포먼스
  10월 20일 16:00–18:00
  김효진 미디어 퍼포먼스
  김기라x김형규 EDM 공연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18.12.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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