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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철규의 한국미술명작선] ⑨ 퇴계ㆍ우암 모두가 겸재 정선의 화첩 속에 있네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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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보물 제585호 『퇴우 이선생 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 중 `무봉산중(舞鳳山中)`, 1746년, 지본수묵, 30.2×21.5㎝, 삼성미술관 리움.


정선이 금강산을 소재로 진경산수를 창안해낸 것은 무엇보다 그의 천재성이 빛을 발했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중국에서 전래된 화보였습니다. 화보에는 바위산을 그리는 법과 숲이 무성한 흙산의 묘사법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겸재는 따로 따로 있는 이 둘을 합쳐 한 폭에 담으며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일만이천봉의 바위 연봉을 그려내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의 천재적 창안은 단지 기법상의 조합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당시 그의 주변에는 새로운 문학운동을 벌이던 그룹이 있었습니다. 스승 김창흡(金昌翕ㆍ1653∼1722)을 중심으로 중국시의 모방에서 벗어나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통해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감정과 흥을 시로 표현하고자 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진시(眞詩) 운동이라고도 합니다. 이들은 시적 감정을 끌어내기에 적합한 이름난 명승지와 명소를 찾아다니며 감성 훈련을 계속했습니다. 자연히 금강산을 비롯해 국내의 유명 명승지를 탐방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겸재가 진경산수를 창안할 무렵 바로 이들 진시(眞詩)운동 리더들의 지도를 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그린 산수는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아닙니다. 진시 운동의 시인들이 명승을 보면서 시적으로 고양된 감흥과 감정을 끌어올리는 듯이 겸재는 그림으로 그려진 경치로 하여금 보는 사람에게 특별하게 고취된 감정을 느끼게 하고자 했습니다. 진경산수로 그려진 대상이 대부분 명소이며 명승지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를 위해서 방법적으로 그는 명승지의 절경 중에서도 눈을 감으면 저절로 떠오를 만한 시각적 이미지를 특징적으로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썼습니다. 어느 금강산 그림이든 내금강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는 장안사의 홍교와 이층 누각을 부각시켜 그린 것이나 금강산을 대표하는 봉우리인 비로봉을 인상적으로 그리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진경산수입니다.

겸재는 이런 진경산수를 그리면서 금강산 이외에도 눈길을 돌리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연히 주체적인 자각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러한 변화를 인물화에 적용한 것이 바로 이 '무봉산중(舞鳳山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까지 조선에서 그려지던 인물 그림들은 거의 모두가 중국 인물이 소재였습니다. 공자님에, 당나라 시인이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며 신선도 중국 신선일색이었습니다. 17세기 중반에 그려진 것으로 전하는 조속의 '금궤도'를 제외하면 한국 고유의 일화를 그린 그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겸재 역시 이런 중국의 고사나 일화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진경산수를 그리듯이 조선의 일화를 중국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의 위치까지 격상시켜 그린 것이 바로 이 '무봉산중'입니다. 이 그림은 다른 그림 3점과 함께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의 글, 친구 사천 이병연의 시 그리고 막내 아들 정만수의 글과 함께 표구된 『퇴우 이선생 진적첩』 안에 들어 있습니다.

정선, 보물 제585호 『퇴우 이선생 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 중 `계상정거(溪上靜居)`, 1746년, 지본수묵, 삼성미술관 리움.


이 에피소드는 퇴계 이황이 지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합니다. 주자는 고전 유학을 집대성하면서 인간 본래의 성(性)은 자연의 이치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 지극히 선(善)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성을 잘 수양하면 자연의 이치를 터득한다고 한 것입니다. 퇴계는 이런 주자학을 철학적으로 한 단계 심화시켰습니다. 인간 본성이 작용하는 과정을 기(氣)와 이(理)로 나눈 것입니다. 이런 대이론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자 저술을 꼼꼼히 읽고 요점만을 뽑아 책 한 권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입니다. 그리고 책을 펴내면서 서문도 지었는데 이 서문이 겸재 외조부인 박자진 손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박자진은 퇴계 후학을 자처하는 대학자 우암 송시열을 두 번씩이나 찾아가 이 서문을 보여주며 우암의 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퇴계 선생과 우암 선생의 글을 나란히 한데 엮어 서첩으로 만들어 집안의 보배로 삼았습니다. 이 서첩은 그후 겸재 집에 전해지게 됐는데 겸재가 이를 기념해 그 전말을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이 서화첩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 속에는 조선시대 그림으로는 유일하게 그림 속 인물로서 퇴계 선생과 우암 선생이 들어가 있게 됐습니다.

'무봉산중'은 겸재의 외조부 박자진이 무봉산에 은거중인 우암 송시열을 찾아간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때는 팔월 추석입니다. 수량 많은 계곡물이 콸콸 흐르고 있습니다. 멀리는 우람한 자태를 보이는 무봉산 봉우리가 보입니다. 개울가 정자에서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 가운데 사방관을 쓰고 흰 수염이 무성한 분이 우암 송시열입니다. 맞은편에 갖을 쓰고 공손히 앉아있는 사람은 외조부 박자진입니다.

이 화첩의 또 다른 한 장면은 퇴계 선생이 안동의 도산서원에서 『주자서 절요』를 집필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이 그림은 현재 천원권 지폐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겸재는 조선 유학을 대표하는 두 사람, 퇴계와 우암이 관련된 일을 중국 고사처럼 그림으로 남아 역사 속의 전설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보물 제585호 『퇴우 이선생 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 표지, 삼성미술관 리움.


정선(鄭敾ㆍ1676∼1759) 겸재의 그림은 당대부터 대인기를 끌었습니다. 이규상이 지은 『병세재언록』에는 ‘온 나라가 그의 그림을 구하려고 해 종이나 비단에 그린 그림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할 정도’라고 했습니다. 겸재 그림은 중국에서도 이름이 높았던 것으로 전합니다. 이웃집 사는 사람의 딸이 새로 장만한 치마에 장물을 쏟아놓고 울자 그의 아버지가 ‘정 겸재의 그림을 그려서 중국에 가져다 팔면 새 치마는 얼마든지 새로 살 수 있다’고 달랬다고 하며 실제로 겸재 그림을 그려 받아 중국에 가는 사신편에 보내 베이징에서 높은 값에 팔았다는 일화가 전해옵니다.

글=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ygado2@naver.com
한국미술정보개발원(koreanart21.com) 대표. 중앙일보 미술전문기자로 일하다 일본 가쿠슈인(學習院) 대학 박사과정에서 회화사를 전공했다. 서울옥션 대표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했다. 저서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역서 『완역-청조문화동전의 연구: 추사 김정희 연구』 『이탈리아, 그랜드투어』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097304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11.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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