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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철규의 '한국미술 명작선'] ④ 이성길을 대가로 만든 딱 한 점, '무이구곡도' (중앙일보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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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길,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1592, 견본담채, 33.5×398.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미술사에는 이름만 있고 실체에 해당하는 그림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화가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림이 전하지 않는 이유는 많이 있습니다. 자연 재해에 전란ㆍ화재 그리고 그림에 대한 몰이해나 부적절한 보존 등. 오랜 세월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을 것을 고려하면 그림이 온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단 한 점 전해진 그림이 관련 전시마다 또한 도록마다 빼놓지 않고 소개되고 있다면 그런 행운은 또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성길(1562∼1620년 이후)이 그린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가 바로 그런 케이스입니다. 이성길은 문인이자 화가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그림은 많이 그리지 않았습니다. 이 그림은 그가 임진왜란을 당해 군에 종사하고 있을 때 진중(陣中)에서 그렸다고 전합니다. 임진왜란은 특히 서화의 피해가 컸던 전쟁인데 아이러니컬하게 그때 부대 막사에서 그린 그림이 그의 유일무이한 작품이자 대표작이 된 것입니다.

이 그림은 남송 시대의 주자(1130∼1200)가 중년 이후에 제자를 가르치고 생활하던 곳을 그린 것입니다. 주자는 말할 것도 없이 신유학을 집대성하여 중흥시킴으로서 그의 이름을 딴 주자학을 세상에 남긴 대학자입니다. 그가 터를 잡고 신진들을 가르친 곳은 예전부터 중국에서 신선이 살았던 곳으로 이름난 명승지이며 또 주자로 인해 그 명성이 배가된 중국 복건성 숭안현에 있는 무이산의 아홉구비의 계곡입니다. 주자는 54살 되던 1183년에 이 구곡 중 다섯 번째 구비에 해당하는 은병암 밑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세우고 제자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후학 지도를 틈타 한가할 때면 배를 띠워 수려한 계곡의 경치를 감상하며 시를 읊었습니다. 10수로 된 그의 시는 문집에 실려 있습니다.

조선은 건국과 함께 유교를 국교로 삼으며 유교적 예악 실천을 국가 통치의 기본 철학으로 삼았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때 말하는 유학이 다름 아닌 주자가 집대성한 주자 성리학입니다. 조선 초기에 받아들인 성리학은 아직 설익은 이론에 가까웠습니다. 그렇지만 건국의 기틀이 잡히고 각종 제도가 정비되는 가운데 성리학 이해도 차츰 깊어지며 독자적인 해석 판단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지에 이른 대표적인 학자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입니다. 두 분은 중국학자도 놀란다는, 이와 기는 동시에 작용한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이나 기가 먼저 나오고 뒤에 이가 드러난다는 기발이이승설(氣發而理乘說)과 같은 심화된 이론을 수립하게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론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주자가 해석해놓은 유교 경전을 깊이 파고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자 의 위대함과 탁월함에 탄복하게 되었고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는 존경심을 품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시대 차이로 이 세상에서는 결코 만날 수는 없지만 그분이 학문을 완성하고 제자를 가르친 고장은 한번쯤 방문해 직접 눈으로 보고픈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려진 그림이 무이구곡도입니다. 무이구곡도는 주자의 명성이 높아지며 중국에서부터 그려졌습니다. 애초에 송나라 때 그려진 그림은 주자와의 관련보다 명승지를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원나라 때 들어 주자의 시를 그림 위에 적어놓는 등 주자성리학의 성지로서의 의미가 부각된 것입니다. 조선에는 이런 그림들의 카피본이 일찍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퇴계 선생도 생전에 이런 그림을 보았던 듯합니다. 그의 문인 이담(1510∼77)은 자기 집에 전해져 내려오는 중국본 ‘무이구곡도’를 베껴 그린 다음 이를 퇴계 선생에게 보여주면서 글을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퇴계 선생이 이를 보고 감동하자 그는 한 부를 더 그려 스승에게 드렸습니다. 퇴계 선생이 당시에 받았던 그림은 고맙게도 현재 영남대 박물관에 전합니다. 이 그림은 그다지 수준이 높지 않은 중국 그림을 여러 차례 베껴 그린 것인 때문에 그림이라고 하기보다 지도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그에 비하면 이성길의 이 그림은 매우 상세한 중국본을 바탕으로 한 듯합니다. 그림의 첫 부분에 보이는 넓적하고 높은 봉우리는 대왕봉입니다. 그 아래에 보이는 큰 집은 도교의 도관인 충우관(?佑觀)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넓적하게 높이 솟은 봉우리가 대은병(大隱屛)입니다. 주자가 계셨다는 무이정사는 그 아래쪽으로 담으로 둘러쳐진 집을 가리킵니다. 주변에 보이는 누각과 집들은 철적정, 만대정, 인지당 등 무이정사의 부속 건물들입니다. 바위 사이로 사람 둘이 그려진 것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바위가 있는 나한동(羅漢洞)을 그린 것입니다.

`무이구곡도` 부분, 무이정사와 나한동(羅漢洞)


`무이구곡도` 부분, 충우관(?佑觀)과 암벽 속에 보이는 가학선관(架壑船棺).


이렇게 보면 이 그림은 주요 봉우리나 건물 등이 꽤 자세하게 그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곳곳의 높은 봉우리에 동굴 같은 곳이 보이고 그 속에 통나무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표현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복건지방 소수민족의 풍장 풍습을 그린 것으로 배 모양처럼 생긴 관을 바위틈에 올려놓은 것, 즉 가학선관(架壑船棺)이 그린 것입니다. 이 정도까지 따라 그렸으면 이성길이 보고 그린 중국본은 꽤 좋은 본(本)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이는 이성길에게 따른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성길보다 150년 뒤의 문인화가인 강세황에게도 무이구곡도를 그린 것이 있습니다. 스승인 실학자 이익의 지시로 그린 것인데 이성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시 지도에 가깝습니다.

강세황이 ‘무이구곡도’를 다 그리자 이익은 퇴계 선생이 살았던 도산서원 일대도 그리라고 했습니다. 강세황은 어째서 스승께서 ‘무이구곡도’와 ‘도산도’를 그리게 했는지에 대해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

“천하의 아름다운 산수에 어찌 한계가 있겠는가만 지금 선생께서 유독 이 두 곳을 가리켜 병중에도 베껴서 그리게 한 것은 주자와 퇴계 두 선생을 중요하여 여기셔서 그렇게 시키신 것이 아니겠는가. 이를 보면 선생께서 선현을 존경하고 뒤따르며 도의를 좋아하는 마음이 황망한 병중에도 잊지 않고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무이구곡도’에는 이처럼 그림 본연의 뜻 외에 유교의 사상적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강세황의 ‘도산도’나 이후에 그려지는 것으로 율곡 이이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살았던 황해도 해주의 고산일대를 그린 ‘고산구곡도’ 역시 모두 ‘무이구곡도’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성길의 이 그림은 단 한 점 전하지만 영향으로 보아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그림이 된 것입니다.

이성길(李成吉ㆍ1562∼1620년 이후)

조선 중기에 활동한 문인화가로 자는 덕재(德哉)이며 호는 창주(滄洲)입니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해 진사시에 장원을 했으며 28살 때 증광문과에 급제했습니다. 문집이 전하지 않아 행적이 불분명한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북쪽 지방에 유배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후 곧 북평사 정문부의 막하에 들어가 종사관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1596년에는 함흥판관을 지냈고 전란이 끝난 뒤에는 여산군수, 합천군수, 사헌부 지평, 병조참판 등을 거쳤습니다.

그림은 어느 경로로 익혔는지 전하지 않으며 다만 그의 그림으로 전하는 단 한 점의 ‘무이구곡도’는 전란 중에 진중(陣中)에서 그린 것으로 전합니다. 그림 맨 왼쪽에 ‘만력이십년임진창주이성길(萬曆二十年壬辰滄洲李成吉)’이란 낙관이 있습니다.


글=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ygado2@naver.com
한국미술정보개발원(koreanart21.com) 대표. 중앙일보 미술전문기자로 일하다 일본 가쿠슈인(學習院) 대학 박사과정에서 회화사를 전공했다. 서울옥션 대표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했다. 저서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역서 『완역-청조문화동전의 연구: 추사 김정희 연구』 『이탈리아, 그랜드투어』

http://joongang.joins.com/article/793/16832793.html?ctg=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11.1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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