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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철규의 '한국미술 명작선'] ② 동기들은 어디에-조선시대 과거 동기생을 그린 계회도 (중앙일보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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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 1542, 견본담채, 101.2×60.6㎝, 국립광주박물관

조선시대 동기생 모임을 그린 그림이 있다는 말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이런 말을 한 이상 그런 그림이 있기도 하며 또 전하기도 합니다. ‘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 절로 물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라는 시로 유명한 조선중기의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1510∼60)의 과거(科擧) 동기생 모임을 그린 그림입니다.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인 하서는 1531년에 사마시에 합격했습니다. 사마시는 합격하면 생원이 되는 시험으로 합격생은 대과를 위해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 역시 여기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이황이 먼저와 공부를 하고 있어 이때 두 사람은 서로 알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서는 10년쯤 지난 1540년의 별성 문과에 급제하면서 이른바 대과에 올랐습니다.

대과에 급제하면 고위 관리의 길이 열리는 데 이때 하서는 숭문원 정자(正字)라는 정9품의 관직에 됐습니다. 이를 전후해 1531년 사마시에 나란히 합격한 동방(同傍) 7명도 각기 대과를 패스해 여러 관청에 봉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자신들의 지난했던 과거공부 과정을 되돌아보고 또 신진 관료로서 의기투합하는 모임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런 모임을 계회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1542년의 어느 날 서로 모여 계회를 갖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나눠가진 것이 바로 이 '동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입니다.

조선 중기에는 이처럼 계회도(契會圖)를 그려 나눠 갖는 일이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기념사진을 찍듯이 나눠 갖는 계회도는 대개 같은 관청에 근무하는 동료들이 재직을 기념해 그린 게 보통이었습니다. 이처럼 이른바 고시패스 동기생들의 모임을 대상으로 그린 그림은 특별한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이 그림 역시 형식은 당시 유행하던 계회도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계회도는 특이하게 화면을 3단으로 구성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맨 위에 제목을 적고 그 아래쪽에 그림을 그립니다. 더러 그림 아래에 유명한 이의 서문을 받아 적은 것도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그 밑에 계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직위와 이름 본관 등 이른바 좌목(座目)을 적는 형식입니다.

하서가 참가한 계회도에는 서문을 적은 부분이 없고 대신 하서가 자필로 당시의 감회를 시로 그림 속에 적어놓았습니다. 시의 내용에는 그림이 그려지게 된 배경과 그날 행사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어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사에 동방(同榜)한 당년의 선비들이
십년을 전후하여 대과에 올랐구려.
벼슬길 함께 가니 새로 맺은 벗이 아니오
맡는 구실 다르지만 모두 다 말단일래.
만나는 자리마다 참된 면목 못 얻어서
한가한 틈을 타서 좋은 강산 찾아가네
진세의 속박을 잠시나마 벗어나니
술 마시며 웃음 웃고 이야기나 실컷 하세. (*참조: 『한국회화대관』중 신호열 번역)



지난 십년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과를 합격해 나란히 조정의 신하가 됐지만 아직은 미관말직이라 실력 발휘를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읊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경치 좋은 곳에서 세상사를 잊고 술잔에 빌어 웃고 떠들며 풍류를 한번 즐겨보자는 호기를 담았습니다.

그림을 보면 세속을 떠난 것처럼 흙다리 너머로 계회 장소가 펼쳐져 있습니다. 언덕마루 빈터에는 일곱 사람이 의관을 갖추고 앉아있는 모습인데 한쪽에는 시에서처럼 평상위에 술항아리가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경치 좋은 곳에서 술잔을 나누며 옛 정을 되새기는 야외의 동기회 모임에 딱 어울리는 묘사입니다. 시의 의미로 봐서는 도성 밖 어디쯤이 될듯한데 수직으로 치솟은 높은 봉우리와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 물줄기는 마치 심산유곡처럼 느껴집니다.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의 부분.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그림에는 좌목 부분에 대나무와 매화가 등장합니다. 조선에는 이런 사례가 없습니다. 다만 비슷한 시기의 일본에는 가운데 부처님을 그리고 양옆으로 대나무 등을 그린 3폭 구성의 그림이 더러 있습니다. 이런 그림에서 대나무나 매화는 대개 길상을 뜻하는 상징성을 갖습니다. 아마 하서 계회도 속의 대나무와 매화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축하의 의미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만 조선초기의 대나무 그림도 드믑니다. 여기 그려진 대나무는 가는 줄기 위에 작고 통통한 댓잎이 개(?)자를 거꾸로 세운 것처럼 빽빽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 그림이 그려진 연대와 더불어 조선 전기의 대나무 그림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그건 그렇고 이 그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모임이 펼쳐지고 있는 산수 공간입니다. 자세히 보면 이 공간은 조선초기 안견파가 주로 사용한 편파 2단구도로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편파라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산만 제외하면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형식은 이보다 1년 앞서 1541년에 사간원에 근무한 관리 7명이 재직 기념으로 그린 '하관계회도(夏官契會圖)'와 매우 흡사합니다.(이때 참가한 사람 가운데는 퇴계 이황도 들어 있습니다) 중간의 큰 산에 걸려 있는 폭포는 말할 것도 없고 섬처럼 떨어져있는 너른 대지와 이를 이어주는 흙다리 그리고 섬 한 귀퉁이 바위를 배경으로 서있는 두 그루 소나무도 흡사합니다.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는 작자미상이기는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당시 솜씨 있는 화원의 그림입니다. 화원 그림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이어서 답답해 보이는 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좋은 점은 바로 그 전통성입니다. 이 두 점은 전통을 지키고 있기에 자료가 부족한 조선전기의 미술사 재구성에 있어 적지 않은 힌트를 제공해줍니다. 즉 조선 전기는 이렇게 안견 화풍을 바탕으로 한 편파 2단구도의 산수화가 유행했다는 사실입니다.


하서의 생원동기생

그림 속 너른 언덕위에 그려진 인물은 모두 아홉 사람입니다. 술시중을 드는 두 사람을 제외한 7명이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넷, 셋으로 마주보고 앉아 있습니다. 아래의 좌목이 이들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나이순으로 정리하면 민기(閔箕, 1504∼68), 남응운(南應雲, 1509∼87), 이택(李澤, 1509∼73), 이추(李樞, 생몰년 미상 1539년 문과급제), 김인후( 金仁厚, 1510∼60), 윤옥(尹玉, 1511∼84)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박락으로 인해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그림은 당초 인원수대로 7점이 그려졌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재는 하서의 시가 적힌 이 그림만 남아있습니다.
시의 원문입니다.

衿佩當年一榜歡 科名先後十年間
朝端共路非新契 都下分司名未班
隨處未開眞面目 偸閑須向好江山
相從乍脫塵銜束 莫使奠前笑語?



작자미상 `하관계회도`(부분), 1541, 견본수묵, 97×59㎝,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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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koreanart21.com) 대표. 중앙일보 미술전문기자로 일하다 일본 가쿠슈인(學習院) 대학 박사과정에서 회화사를 전공했다. 서울옥션 대표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했다. 저서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역서 『완역-청조문화동전의 연구: 추사 김정희 연구』 『이탈리아, 그랜드투어』.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726192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07.23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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