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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션하우스의 명품들] 60. 백자청화 용호문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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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磁靑花 龍虎文 壺  높이36.5cm
2013년12월18일 서울옥션 제130회 미술품경매 No.296번, 8억5천만원 낙찰


백자 항아리에 용문은 많다. 하지만 호랑이 문양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특히 청화 안료를 사용한 청화백자에서 더욱 그렇다.


용이든 호랑이든 고대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 때문인지 용과 호랑이는 대형의 항아리에 많이 그려진다. 용의 경우는 두 자나 되는, 즉 60cm 가까운 것도 있다. 호랑이는 그처럼 큰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한 자(30.3cm)를 넘는 항아리는 몇몇 있다. 항아리를 제외하고 용이나 호랑이가 들어간 도자기는 거의 없다. 특히 호랑이 쪽이 더한데 사각 병에 그려진 케이스 정도가 알려져 있다. 
용이 항아리 문양으로 그려진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매우 일찍부터 이다. 호랑이는 이보다 뒤이다. 중국에서 호랑이가 도자기 문양으로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다분히 토착 사상이나 상징을 반영한 문양이라고 할 수 있다. 


백자철사 호로문(虎鷺文) 항아리, 17-18세기 전반 높이 31.0cm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실제로 호랑이 문양은 궁중과 관청 수요를 충당하던 관요(官窯)가 아닌 민간가마에서 먼저 제작됐다. 현재 17세기의 민간가마에서 제작된 용문 항아리가 전한다. 이때 문양을 그린 것은 중국제인 청화 안료가 아니라 국산의 철채(鐵彩)였다.
관요에서 호랑이 문양이 등장하는 것은 18세기 중반 이후이다. 광주 분원에서 호랑이와 까치, 호랑이와 소나무가 그려진 항아리가 만들어진 사례가 있다.
그렇기는 해도 관요건 민요이건 용이면 용, 호랑이면 호랑이로서 제각각 그려졌다. 사정이 이런 가운데 이 항아리에는 용이나 호랑이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특별하고 희귀한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백자청화 호작문(虎鵲文) 항아리. 18세기후반 높이34.0cm 국립중앙박물관
 

더욱이 이 항아리는 분원 제작의 호랑이 문양 항아리보다 연대가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멋을 부리지 않고 소탈 보이는 형태와 낮은 구연부, 그리고 백토의 질로 보아 제작 시기는 18세기 중반 전후로 여겨진다.


또 몸통 높은 위치에 2 줄의 청화선을 두르고 그 안에 별도로 구름 문양 외에 ‘수복강녕(壽福康寧)’이라는 문자를 적어 넣은 것도 단서이다. ‘수복강녕’으 문자문양이 적힌 도자기는 분원 설치(1752년) 직전에 제작된 것들이 많다. 즉 금사리에서 만들어진 추초문(秋草文) 항아리에 자주 보인다. 

18세기 중반에 용과 호랑이가 나란히 그려진 이 항아리는 몇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민간가마 문양의 관요에서의 수용이다. 도공들의 교류까지도 추측해보게 되는데 사정을 알 수 없다.
두 번째는 18세기 들어 꽃피운 문화의 자주적 정신과의 연관이다. 18세기는 조선 고유의 문화적 특색이 생활과 예술 각 방면에서 만개하던 시절이다. 당시 중국은 말할 것도 없이 만주족이 지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중화문화의 진정한 계승자는 조선이라는 인식이 널리 공유됐다. 그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진경산수의 탄생와 같이 토착적이고 조선적인 문화예술형식이 등장했다.
청화로 호랑이와 용을 나란히 그린 항아리는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유일한 사례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당시의 문화예술의 시대상까지 말해주는 귀중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8.09.1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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