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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와 김상숙 - 자료로 보는 조선 서예가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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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와 김상숙(坯窩 金相肅 1717-1792)

조선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이며 자는 계윤(季潤), 호는 배와 외에 초루(草樓)를 썼다.
대대로 명문가 집안으로 부친은 한성판윤을 지낸 뒤 영의정에 추증된 김원택(金元澤)이다. 모친은 한성우윤을 지낸 심정보(沈廷輔)의 딸이다. 형 김상복(金相福)은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또 서화 수장가로도 유명하다. 

1744년(28살)에 진사시에 합격했다. 벼슬은 1752년(36살)에 명릉 참봉부터 시작해 이후 낭천 현감, 양근 군수를 역임하고 공조정랑 등을 거쳐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서예가이자 이론가로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당시 유행하던 동국진체와 달리 종요체(鍾繇體)를 기반으로 한 직하체(稷下體)를 창안했다. 서예이론인 『필결(筆訣)』을 저술했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은 그의 행장에서 ‘서법이 종요를 닮았는데 사람들이 이를 직하체라 했다. 직하체라 한 것은 배와가 서울에 살던 마을이다’라고 했다.
이규상(李奎象 1722-1799)도 『병세재언록(竝世才彦錄)』에서 ‘배와의 종요체는 서찰이나 시전 및 소해(小楷)에 적합했는데 사람들이 다투어 본받아, 이를 가리켜 직하체라 했다’고 적었다.
 
강원도 양양의 신흥사사적비, 경기도 파주의 영상 황인보표, 경기도 이천의 이정보 묘갈 등을 썼다.


[자료] 서간 26x38cm(서울옥션 제공)

[社洞領議政宅 入納]
[黃衙 平書]
兄主前上書
阻信此久 伏未審體中氣候若何 溸慕之至 此中姑安 而小兒久寓外邨 甚難便.(부분)
[사동 영의정댁 입납]
[황주(黃州) 관아에서 보내는 안부 편지]
형님 전상서
이처럼 오래도록 소식이 없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그리운 마음 간절합니다. 이곳은 그럭저럭 편안합니다만 아이가 오랫동안 바깥마을에 기탁해 지내고 있어 매우 편치 않습니다.(부분, 탈초 번역: 김규선 선문대교수)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06.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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