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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애 유성룡 - 자료로 보는 조선 서예가들 12
  • 1547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
12.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
조선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 이외에 운암(雲巖)도 썼다. 
16살에 향시에 합격했고 23살에 생원, 진사가 돼 성균관에서 수학한 뒤 25살인 1566년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벼슬은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치고 영의정까지 올랐다. 

임진왜란 때에는 평양까지 선조를 호종했고 영의정겸 도체찰사로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포은집』을 교정하고 발문을 지었고『퇴계집』을 편찬했다. 
  
글씨는 중국 축윤명(祝允明 1460-1527)의 서체를 잘 썼다. 

[자료 1] 
서간: 25x34.5cm(서울옥션 제공)
      1589년2월17일자 


奉復 
柴玉山栖
謹承遠書 慰慰 僕病甚艱保 尙未歸田 悶悶 示丁舍人誌文 謹受 鄙拙 何敢當此重寄耶 況在叢擾之中 尤難下手 他日南歸 或可勉耳(...)

답장 올림
시옥산서(柴玉山栖)
멀리서 보내신 편지를 받고 많이 위안이 됐습니다. 저는 몸이 많이 안 좋아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부탁하신 정사인(丁舍人)의 묘지문 관련 내용은 잘 받았습니다만, 미천한 제가 어찌 감히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경황없는 지금은 더욱이 착수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다음 남쪽으로 돌아갈 즈음에 혹시 힘써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파초 및 번역: 김규선 선문대 교수)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19.02.1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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