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회화
  • 도자
  • 서예
  • 오늘의 그림 감상
  • art quiz exercise
타이틀
  • 이것은 어떤 책에 들어간 삽화일까요?
  • 195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해 세종 시대에 목판으로 편찬한 책 중 삽화로 들어간 장면들이다.




하나는 부부가 아이를 땅 속에 묻으려다가 땅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마당에 무릎 꿇고 앉아 자신의 손가락을 스스로 칼로 자르려는 장면이다.
둘은 서로 다른 이야기인데, 이처럼 어떤 목적에 의해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과 글로 설명한 책이다. 그런데 특히 이처럼 다소 끔찍하거나 특이한 상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어떤 이야기들일까? 어떤 책에 들어간 그림일까?












===================
첫 번째 그림은 중국 후한(947∼950)의 곽거(郭巨)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집안이 가난하여 아내와 품팔이를 하며 어머니를 모시고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세 살 먹은 아들이 있어 어머니가 먹을 것을 남겨서 손주에게 주는 것을 보고 곽거가 아내에게 “가난하여 먹을 게 부족한데 아이가 어머님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함께 가서 묻어야 되겠소”하니 아내가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자식을 묻기 위해(산 채로?) 땅 석 자를 파자 황금이 가득 들은 가마솥 하나가 나타났고 그 위에 글이 써 있기를 “하늘이 효자 곽거에게 주는 것이니 관가에서도 빼앗을 수 없고 다른 사람도 가져가지 못한다”고 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그림은 조선 시대 고산현,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에 살던 아전 유석진(兪石珍)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아버지가 나쁜 병을 얻어 매일 한 번씩 발작과 기절을 했는데 석진이 밤낮으로 곁에서 모시면서 하늘에 대고 통곡을 하고 의약을 구해도 차도가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산 사람의 뼈를 피에 타서 마시면 나을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곧장 왼손 무명지를 잘라 그대로 해서 바쳤더니 그것을 마시고 병이 곧 나았다고 한다. ‘석진단지’라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자식을 잃는 고통과 무시무시한 자해 행위도 부모님을 위한 것이라면 아름답게 포장될 수 있었던, 효를 강조하는 그 시대이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이밖에도 허벅다리 살을 베어 먹여 부모의 병을 고친다든지, 도적의 칼을 대신 맞고 아비를 구한다든지 하는 이야기의 예는 너무도 흔하다. 부모를 위해 자신과 자식마저 희생한다는 맹목적인 이야기들이 잔뜩 실린 이 책은 바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이다.

『삼강행실도』는 1434년, 임금인 세종의 명에 의해 처음 펴낸 책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문헌에서 삼강(三綱), 즉 부자, 군신, 부부 관계에서 모범이 될 만한 효자, 충신, 열녀의 행실을 모아 만든 교화서이다. 앞의 그림은 그중 제일 첫 번째인 효자 편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삽화이다. 그림이 중심이 되는 책이어서 삼강행실도가 곧 책의 제목이 되었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법으로 삼을 만한 충신, 효자, 열녀들의 걸출한 사적을 일에 따라 기록하고 아울러 시(詩)와 찬(贊)도 지어서 싣게 했다. 그러고도 어리석은 백성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그림을 그려서 붙이고 「삼강행실」이란 이름으로 널리 반포했다. 치밀한 성격의 세종은 ‘백성들이 문자를 알지 못하는데 책을 반포하여 내려 준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뜻을 알아서 지킬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백성들 중에서 학식이 있는 자를 찾아내어 모두 가르치도록 하라’는 교시도 남겼다. 「삼강행실도」의 편찬의도와 보급의 범위, 방식까지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처음 한문본에는 중국에서 우리나라까지 고금의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효자 충신 열녀 스토리를 모두 참조하고 그 중에서 효자·충신·열녀로 특출한 예를 각 110명씩 뽑아 그림을 앞에 놓고 행적을 뒤에 적은 뒤 찬시(贊詩)를 1수씩 붙이도록 했다. 언해본도 찍혀져 나오고 이후 요약본도 나오면서 여러 판본이 존재하고 있다. 

  조선은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 건국된 나라였기 때문에 조선 초기에 유교적 가치관으로 국가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삼강오륜이나 소학 같은 것들이 그 핵심 텍스트가 되었다. 
  
다른 편도 현대와 잘 맞지 않지만 특히 효자 편과 열녀 편은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옛날에 실제로 그런 일들이 많았으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잘 지키지 않을수록 더 강조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19.12.16 12:56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