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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의 파리 근교, 임용련 <에르블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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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련 <에르블레 풍경> 1930, 종이에 유채, 24.2x33cm,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한 <내가 사랑한 미술관 : 근대의 걸작> 展에 전시 중인 작은 그림 한 점입니다. 오산학교 시절 이중섭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임용련(任用璉, 1901-1950이후?)의 유화 <에르블레 풍경>으로, 한국에 남아 전해지고 있는 임용련의 작품은 이 그림과 금강산을 그린 <만물상 절부암>, 드로잉인 <십자가의 상> 세 점 뿐입니다.


이 분은 당시로서는 드문 미국 유학파 화가로,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훌륭한 성적에 대한 부상으로 1년간 유럽을 여행할 수 있게 되어 간 여행길의 파리에서 화가 백남순(1904-1994)을 만나 결혼하고, 이 작품의 배경이 된 파리 근교 에르블레Herblay에서 신혼 생활을 보냈습니다.


유학시절


결혼 당시의 임용련 백남순 부부


<에르블레 풍경>은 1930년 그 당시의 그림으로 센 강과 주변의 풍경이 어우러져 소품이지만 숙련된 솜씨와 안정감, 세련된 색감을 보여줍니다.  그 해 11월 국내에 들어와 부부가 함께 전시회를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부부전에는 이 그림을 비롯해 드로잉 20점을 포함하여 모두 82점의 작품이 출품되었습니다. 



1930년 10월 29일 동아일보 2면 기사


이후 1931년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미술과 영어 교사로 일하다가 해방 후 남한으로 급히 내려오면서 작품을 모두 두고 오는 통에 작품이 모두 유실되고, 미군정 시절 재판정과 장관 고문을 지내다가 6.25 때 북한군에 잡혀가 이후 소식을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에르블레 풍경>이 그나마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부인 백남순이 전남 완도에 사는 절친에게 결혼 축하 선물로 보내준 두 점의 작품을 그 친구가 오래도록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81년 이구열 선생에 의해 공개되고 소장자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여 간간히 대중에게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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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련(任用璉, 1901-1950이후?, 임파) : 평남 진남포 출신으로, 서울 배재고보에 다닐 때 삼일운동에 가담했다가 수배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 난징(南京)의 진링대학(金陵大學)에 2년간 다니다가 1921년 ‘임파任波’라는 가명으로 중국 여권을 만들어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미술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최초의 부부화가전이었던 1930년 전시에 대한 평에서 춘원 이광수는 "취재나 구도나 색채나 운필에 가작(假作)이 없고 무리가 없고 모두 천연스럽고 조심스럽다"고 평했으며, 파리에 유학했던 이종우는 "임파의 색은 냉정하고 해농의 빛은 온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중섭의 전기에는 스승이었던 임용련이 습작의 중요성을 이중섭에게 수없이 강조하며 했다는 "밑그림을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더 많이 하여라. 그런 다음에 네 예술이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18.09.18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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