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에 찾아든 용꿈 <고사몽룡도> 2021.04.07
꿈 중에서 가장 좋은 꿈은 무슨 꿈일까? 돼지꿈도 좋지만 용꿈이 소원성취 대운이 들어오는 꿈이라고 한다. 특히 용이 승천하는 꿈은 유명한 사람이 될 아이가 태어나게 되는 태몽이라고.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고적도보』 14권 ‘조선시대 회화’ 편을 보면 영조의 총애를 받던 화원 김두량이 그렸던...
백로가 날아든 버드나무 2021.04.05
세상에 예쁜 빛깔들이 많지만 봄이 되어 나뭇가지로 번지는 연한 녹색의 상큼함은 기다린 사람을 만난 것처럼 설레게 하는 색깔이다. 촉촉히 연녹색이 번지는 요즈음의 버드나무는 일년 중 가장 빛난다.납작한 청자 편병에 상감으로 무늬를 새겨 넣은 고려 후반의 도자에서 중심 문양이 된 버드나무를 찾아보았다.마름모...
이야기가 숨은 그림 - 황창배의 '숨은그림 찾기' 시리즈 2021.03.24
황창배, 무제, 1987.부분먹과 분채로 그린 자연 속에 뭔가 사연을 담은 인물들이 또렷하게, 혹은 흐릿하게 스며들어 있다.전시 서문에서 1986-1987 사이에 제작된 황창배의 ‘숨은그림 찾기’ 시리즈에 대해 평론가 박영택은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다분히 즉흥적이고 무목적적인, 초현실적인 그리기를 통해...
조정의 사특한 마음을 먹고 사는 해태 2021.03.19
전국시대 제나라 선왕宣王이 숙맥선생 애자艾子에게 물었다."옛날에 해태란 짐승이 있었다던데 그것이 어떤 짐승인가?"애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요순시대의 신수神獸이온데 조정 안에 살면서 신하들 가운데 사악한 행위를 하거나 사특한 마음을 먹은 자가 있으면 대어들어 잡아먹어 버린답니다. 지금 세상에 그 짐승이...
매화나무 위에서 졸고 있는 새 2021.03.18
전염병이 돌든 황사가 오든, 시베리아 기단이 다시 확장되든, 날은 길어지고 매화는 피고, 낮에 졸음은 쏟아집니다. 아침에 나무에 앉은 새와 눈을 마주쳐, 새그림으로 유명한 조속, 조지운 부자의 숙조도 그림 중에 조지운(1637-?)의 그림 <매상숙조도>를 골랐습니다. 화조화로 유...
정상화의 푸른 균열 2021.03.17
이번 주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걸어서 10분 이내 강남 세 곳의 대형 전시장에서 김환기, 이우환,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 박서보, 김창열, 이강소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다.16일에 오픈한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의 <공명> 전, 17일(수)의 케이옥션 메이저 경매 프리뷰, 23일(화)에 열...
어약영일과 용문점액. 그 사이의 어딘가. 2020.12.30
심사정 <어약영일> 종이에 담채, 129×57.6㎝, 1767년, 간송미술관‘어약영일魚躍迎日’, 즉 물고기가 뛰어올라 해를 맞이한다는 뜻의 제목이 붙은 이 그림은 조선후기 문인화풍의 대가인 현재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환갑이 되던 해인 1767년에 지인을 위해 그려준 그림이다.옛...
오락가락하는 글자는 맨정신인가 놀이인가 2020.07.22
신윤복 <청금상련> 종이에 담채, 35.6x28.2cm, 간송미술관한여름 하면 생각나는 꽃은 많다. 그중 연꽃도 빠질 수 없다. 수만 송이 연꽃으로 유명한 양수리 세미원의 관리자는 ‘아무래도 7월 말 이후가 되어야 연꽃이 만개한다’고 말한다. 연못에 연잎만 가득하고 연꽃은 그 사이로 듬성듬성 ...
솔바람 솔솔 부는 솔밭 그림의 최고 명수는 2020.07.20
코로나로 인해 산과 숲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소식이다. 코로나 재난이 아니더라도 7월은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것을 빼놓으면 솔바람 솔솔 부는 솔밭이 절로 생각나는 시절이다. 조선 화가 가운데 솔밭을 가장 잘 그럴듯하게 그리고 가장 멋들어지게 그린 화가는 단연 18세기의 겸재 정선(謙齋 鄭敾)이...
한중(韓中) 인연 절정기에 그린 우의(友誼)의 흔적 2020.07.15
19세기 묵죽화의 대가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1847)의 장남이자 문인화가였던 신명준(申命準 1803-1842)이 그린 <산방전별도>이다. 그림은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산방에서 열린 전별연의 한 장면이다. 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고 한 사람은 서 있다....
맨드라미와 고추잠자리가 있는 작은 이야기 풍경 2020.07.06
붉은 맨드라미의 계절인가. 어디선가 귀청 떨어질 듯한 매미울음 소리가 들려준다면 저절로 여름날의 한 장면이 되는 그림이다. 조선 그림에 그림자까지 그려 넣기로 했다면 머리 위에서 내려꽂히는 직사광선에 꽃밭 맨드라미의 그림자는 작은 손바닥만 했을 것이다.그런 따끈따끈한 볕이 상상되는 한낮에 우리 검둥이는 ...
하와이언 셔츠가 어울릴 법한 시원한 종려나무 2020.06.29
올여름 무더위는 각오하라는 예고가 있다. 지난겨울이 그렇게 따뜻했던 만큼 여름 더위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더위 하면 산과 강이 먼저 떠오르나 이번 여름은 고민스럽게 됐다. 코로나 19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각하면 적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바이러스 재앙이 없던 조선 시대의 피서는 어땠는가....
소동파의 흥취를 시에 담게나 - 시령도 2019.12.04
밤인가, 낮인가. 먹으로만 그린 수묵화로는 그걸 알아보기 쉽지 않다. 그런데 오른쪽에 절벽처럼 보이는 산등성이 위로 해인지 달인지 알 수 없는 작은 원이 그려져 있다. 이는 달을 그린 것이다. 어째서 달이라는 것을 금방 단정할 수 있는가. 왼쪽 끝에 보이는 새 한 마리가 힌트다. 이 새는 끼룩끼룩 길게 ...
한국과 일본, 좋은 이웃(善隣)의 기억 - 통신사선도(通信使船圖) 2019.07.03
상가에 가서도 사람들은 밥을 먹는다. 죽은 사람 옆에서 놓고 밥숟가락을 들었다고 해서 망자에 대한 애도의 마음이 간절하지 않거나 옅다고는 할 수 없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0년이 되는 해에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보냈다. 포로로 잡...
설악산 웅장한 모습 고전적 준법에 세밀한 필치에 담아 - 설악산 2019.06.12
큰 나무 밑에 있는 작은 나무는 억울할 때가 있다. 혼자 놔두면 얼마든지 크게 자랄 수 있는데 큰 나무 그늘에 들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애초부터 뻗어나갈 기회를 빼앗긴 것이다. 산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금강산에 비하면 설악산이 그런 처지다. 금강산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