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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진규 8 - 추상과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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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문회관에서 열린 제1회 개인전 개막식에서 가운데 선 권진규. 1965년 9월 1일


1965년 9월1일부터 열흘간 한국신문회관 화랑에서 열린 권진규의 첫 개인전은 ‘아시아의 유물을 연상시키는 원시형태를 현대에 투영’한 테라코타 45점으로 가득했다. 권진규는 이 개인전을 통해 회심의 역작을 선보일 자신이 있었고, 신예 화상이 나서서 마련한 초대전으로 수익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었다. 어떤 언론에서도 흔해빠진 평론가의 단평 하나 실어주지 않았다. 화랑의 보도자료에 기대서 쓴 『경향신문』의 기사 「고대의 비전을 즐긴 수법」만 있었을 뿐이다. 
  권진규는 냉담한 반응 앞에 좌절하지 않았다. 도모와의 합의 이혼을 선택하여 조국에 남았다. 그러나 다음해 1966년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 외면과 이별이 한 예술가를 짓누르게 되었다. 
  당시 『경향신문』의 보도에는 ‘일본에서 귀국해서 소문 없이 지내온 때문에 국내 미술계에 전혀 알려진 적이 없는 조각가’라고 소개했다. 특히 기사는 ‘테라코타로 작업함으로써 한국에서 새로운 조각 분야를 제시하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씨의 테라코타는 고대 지중해 문명의 폐허에서 주워다 놓은 듯한 점토 조각판 위에서 인물, 마상을 고대극처럼 등장시키는 일련의 부조형식의 벽걸이 작품과 원시문화의 토우를 연상시키는 마두, 조류 혹은 입상 인물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고대 중근동 문명과 그 밖의 선사문화의 소박하고 고졸한 분위기 및 형태를 짙게 유지하는 특색을 갖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그것을 닮은 인물의 특이한 얼굴이며 동물의 출현은 동양에서라기보다는 분명히 저쪽의 색채이고 저쪽의 신화를 뒤로 갖는 것이었다.”

기사에서는 권진규 작품의 연원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테라코타의 질감과 색채, 짐승과 변형된 사물의 형상 등은 서양의 색채와 주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글쓴이는 권진규가 서양은 물론 동양의 고대 유물에 담긴 형상을 한껏 수용해왔다는 것과, 동양의 토기와 도자에도 테라코타가 있음을 몰랐을 뿐이다. 


<두 사람> 테라코타, 69.7x97cm, 1964년


이 전시회에 선보인 작품 중에는 점토나 건칠을 재료로 삼아 판에 맞게 조각조각 나눠 다시 합친 화판부조라는 아주 특별한 형식이 있다. 이 시기 권진규의 화판부조는 크게 두 갈래의 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춤추는 무희를 단순화한 추상 <춤>에서 시작하여 <작품> 연작으로 이어진 극도의 추상 계열이고, 또 하나는 <곡마단>과 같이 인물 형상을 우화풍으로 묘사한 변형 계열이다. 하지만 어느 계열이건 모두 인물, 사물을 소재로 취하여 변형 및 추상을 꾀하고 있으므로 권진규는 절대추상의 조형을 지향하거나 추상표현주의를 수용하는 당시의 흐름과 달리 전설과 신화세계 또는 현실을 은유하는 우화와 그 근원 세계를 강력하게 추궁하려고 하였다.


<전설> 테라코테에 채색, 90x68x7cm, 1966년


1966년의 작품 <전설>은 고대 토기를 소재로 삼은 걸작이다. 두 개의 길고 날씬한 받침 위로 그믐달과 같은 형상이 얹혀 있고 복판에 둥근 구멍을 뚫어 놓았다. 달의 배경에는 쫙 펼쳐진 네모 천막을 배치하여 하늘을 상징하였다. 어떤 전설일까. 고구려 벽화의 견우와 직녀 또는 신라시대 연오랑 세오녀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부부로서 우주의 근원이며, 그 가운데 달은 우주의 힘을 주관하는 여성으로 생산의 풍요로움과 생명의 조화로움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외로움과 슬픔과 같은 서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권진규가 어떤 전설을 새겨 넣고자 했는지 알 수 없으나 해와 달의 신성함과 절대자를 향한 영원을 찬미하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코메디> 테라코타에 채색, 68x95x8cm, 1967년


추상계열이 사물의 질서와 그 생명을 상징했다면 변형계열의 화판부조는 현실이 머금고 있는 모순을 희극으로 전화시키는 주제를 갖추고 있다. 생명을 조소하는 우화로서 <코메디>는 불균형과 부조화로 가득한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망향자> 건칠에 채색, 91.5x92x7cm, 1960년대


  용맹, 공포, 놀라움과는 거리가 먼 공허와 탄식의 우화는 <전설>은 물론 추상계열의 여러 <작품>과 변형계열의 <망향자望鄕者>가 공히 갖추고 있는 주제의식이다. 슬픔이 짙게 묻어나는 이 어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아주 오래된 듯한 배 한 척을 뒤에 둔 채 두 팔 벌리고 선 이 여인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 ‘망향자’이다. 더는 갈 수 없는 곳이 고향이라면 고향은 슬픔이다. 

글/ 최열 관리자
업데이트 2017.11.1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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