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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섭 - 글 없는 그림 편지 <소가 오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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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2월 25일. 야마모토 마사코는 문화학원 재학생으로는 마지막 성탄절을 보냈다. 해가 바뀌면 3월에 졸업하기 때문에 학교 교정에서 그녀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이중섭은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렸다. 도쿄에서 도쿄로 편지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 편지에는 받는 사람 주소만 쓰고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쓰지 않기로 했다.
 
되돌아올 수 없는, 그래서 수신자가 꼭 받아야 할 이 엽서는 발신인 주소가 없다고 해도 우체국 소인은 찍혀 있었다. 이중섭이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에 분쿄구에 있는 기츠쇼지 우체국 소인이 또렷이 찍힌 것으로 보아 당시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보낸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1943년까지 보냈다. 야마모토 마사코는 자신을 향한 사랑의 온갖 그림 이야기를 받는 대로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이 편지의 특징은 글 없는 그림이다.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상징과 기호로 가득한 이 형상들은 23년 동안 감춰져 있다가 1979년 4월 이중섭 작품전이 열리던 미도파화랑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당시 88점이 출품되었고, 도록에는 72점만을 수록했다.
 
시기가 가장 이른 엽서 그림은 <소가 오리에게>인데 사랑의 대서사시를 시작하는 일종의 서장과도 같은 작품이다. 1940년 12월 25일 성탄절에 보낸 성탄절 선물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내는 청년의 마음인 만큼 <소가 오리에게>는 아름다운 한 폭의 환상이다. 소와 오리가 입을 맞추듯 구애를 하는데 소의 몸에 남성이, 오리의 몸에는 여인이 겹쳐 있고 소뿔에는 어린이가 매달려 있다. 산과 강, 물고기와 나비, 연꽃이 잔뜩 어우러진 이 세계는 이중섭이 만들어낸 낙원으로, 이중섭과 야마모토 마사코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정원이다.
 


이중섭 <소가 오리에게> 9x14cm 엽서, 먹지에 수채, 1940

 
이 작품의 도상은 1940년 제4회 미술창작가협회 경성전 출품작 <망월1>과 1941년 제5회 미술창작가협회전 출품작 <망월2>의 요소들과 겹친다. 특히 <망월2>와 비교해 보면 남과 여, 소와 오리, 산과 강, 물고기와 연꽃 등의 소재가 모두 같다.
 


이중섭 <망월1> 30F 천에 유채, 1940, 제4회 미술창작가협회 경성전

 


이중섭 <망월2> 유채, 1941, 제5회 미술창작가협회전(자유미협전)

 
아름답고 신비로운 <마사マサ>는 무엇보다 채색이 곱다. 푸른빛이 곱디고운 바다가 배경을 이루는데 평면의 거울처럼 평온하기 그지없다. 그 잎의 나무와 여성은 요정들의 신비한 세계다. 나무와 여성이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가지와 팔이 분간 없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또 한쪽은 악수하듯 잡고서 풍성한 꽃을 받치고 있다. 서명 옆에는 엽서 그림 제목을 써두었다. マサ(마사)라고 썼는데 이는 ‘야마모토 마사코’란 이름 가운데 ‘마사’를 일본어 문자 가타가나로 쓴 것이다. 그러니까 그 꽃나무의 요정은 곧 야마모토 마사코의 모습이다.
 


이중섭 <마사マサ> 14x9cm 엽서, 수채, 1941

 
바로 그 엽서를 그려 발송한 4월2일 수요일은 개학 바로 다음 날이었다. 봄의 꽃들로 뒤덮인 교정을 샅샅이 다녔지만 학교를 졸업한 야마모토 마사코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의 그림자와 향기만 가득할 뿐. 이중섭은 그 한 해 동안 매주 한 점씩 그렇게 날려보냈다.

글/ 최열 관리자
업데이트 2017.04.2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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