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일본미술관 with 한국미술관
  • 최열의 그림읽기
  • 영화 속 미술관
  • 조은정의 세계미술관 산책
  • 미술사 속 숨은 이야기
  • 경성미술지도-1930년대
  • 김영복의 서예이야기: 조선의 글씨
  • 한국미술 명작스크랩
  • 도전! C여사의 한국미술 책읽기
  • 왕릉을 찾아서
  • 시의도-시와 그림
  • 근대의 고미술품 수장가
타이틀
  • 이중섭 - 미도파화랑 작품전의 두 소
  • 498      

최열(미술평론가)

<흰 소>, <소와 아동>

1955년 1월 미도파화랑 이중섭 작품전에 출품된 <흰 소 1>은 <통영 붉은 소 1>과 더불어 절정의 걸작이다. 조정자의 조사 결과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으로 재료는 종이에 유채, 제작 연대는 서울 시절로 명기하였는데, 1972년 현대화랑 이중섭 작품전 때 간행한 『이중섭 작품집』의 표지화로 사용하였고, 그 재료를 좀더 세심하게 조사하여 ‘베니어판에 유채’, 제작연대는 통영 시절이라고 하였다. 특히 「작품해설」에서 “통영에서 그려가지고 올라왔었다고 한다”고 기록해둠으로써 이 작품은 통영 시절에 제작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1976년 효문사 간행 『이중섭』에서는 재료를 ‘합판에 유채와 에나멜’로 보충하고 제작 연도를 ‘1954년’으로 수정함으로써 서울과 통영 어느 한 시절로 특정하지 않았다.


이중섭 <흰 소1> 30x41.7cm 합판에 유채 1954하 홍익대박물관 


  <흰 소 1>은 많은 소 그림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다. 그 어느 소 그림보다도 힘에 넘치지만 또 그 어느 소 그림보다도 안정감이 충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멈춰 있지 않다. 그 비밀은 다리 동작에 숨어 있다. 앞다리와 뒷다리 한쪽씩은 내딛기 직전이며 또 다른 한쪽씩은 굳건하게 받치고 있어서 빠르게 달리고 느리게 멈추는 움직임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소 그림과 달리 평형감각이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중량으로 보면 소의 머리에서 어깨까지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데도 앞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까닭은 뒤로 쭉 뻗은 꼬리와 뒷다리가 지극히 경쾌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힘이나 무게로 평형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여백의 공간을 넘치도록 채우는 선묘의 기세를 사용하여 균형을 잡은 것이다.
  또한 단일한 색조를 유지하면서 소의 몸뚱이 전체를 묘사하는 데 어두운 선과 밝은 선을 겹으로 사용함으로써 활력과 깊이를 동시에 획득하고 있다. 이러한 단색의 효과를 기본으로 전제하면서도 화면 배경은 평면 상태를 유지하여 고요하고 아득한 깊이를 주되 상단에 밝은 줄, 하단에 어두운 줄을 빠르게 그어줌으로써 속도감을 주었다.
  


이중섭 <소와 아동> 29.8x64.5cm 판지에 유채 1954하 정기용


  미도파화랑에 걸린 또 한 점의 작품 <소와 아동>은 소의 머리를 밧줄로 묶어놓은 점에서 색다른 작품이다. 조정자는 정기용 소장품으로 그 제목을 <싸우는 소>, 제작 연대는 ‘서울 시절’, 재료는 ‘유화’(모두가미=두꺼운 종이)라고 썼다. 아마도 밧줄로 묶였다는 사실로부터 그 제목을 ‘싸우는 소’라고 본 것인데 다음 해인 1972년 현대화랑 작품전 때 제목을 <소와 아동>으로 바꾼 까닭은 소의 다리 사이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에게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작 연대를 ‘통영 시절’, 재료를 ‘베니어판에 유채’로 바꿔놓았다. 화폭 오른쪽에 지게가 놓여 있고 한 어린이가 소의 엉덩이 아래 앉아서 뒷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모습인데 여기까지만 보면 소와 아이가 어울려 노는 모습이지만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있으면서 자신의 목에 묶인 밧줄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 싸우고 난 뒤 묶인 모습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단순히 놀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고 할 수 없다. 선묘가 화려하다 못해 난삽하기까지 한 이 <소와 아동>은 소 그림 가운데 특이한 환상 세계를 구현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원고 출처: 최열, 《이중섭평전》, 돌베개, 2014)

최열 관리자
업데이트 2017.05.26 18:54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