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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보 「남린(南鄰)」 - 성재후 <월하송별도>
  • 1334      
흰 모래에 푸른 대나무 그림자 드리우는 강촌의 저녁
그림과 시가 만났다고 해도 모든 그림에 빠짐없이 시가 들어가는 것은 19세기 말이 사정이다 그 이전에 시는 그림 속에 그저 듬성듬성 들어가는 정도에 불과했다. 즉 시의도를 그리는 화가는 매우 한정돼 있었다는 얘기이다. 시에 자신이 있고 또 이름이 있는 문인화가는 교과서 앞머리에 나올 법한 유명 시구로 그림을 그리는 일 따위는 그다지 즐겨하지 않았다. 이런 경향은 19세기 들어서 더욱 현저했는데 데 그 한 예가 앞서 이조묵 보다 조금 앞선 문인화가 성재후(成載厚)이다. 
그의 전기에 관한 기록은 아주 적어 생몰년조차 알 수 없다. 부친이 군수를 지낸 성광묵(成光默)이란 정도밖에는 개인적인 자료가 없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근역서화징』에도 이름이 수록되지 않다. 그러나 근년에 박물관 수장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1916년에 조선총독 데라우치가 기증한 유물 중 그의 작품이 포함된 것이 새로 알려지기도 했다.  

 
성재후 <월하담소도> 지본담채 28.5x20.5cm 선문대 박물관


전하는 작품도 통 털어 대여섯 점에 불과한데 그중에 뜻하지 않게 시의도 한 점이 들어있다. <월하송별도(月下送別圖)>이다. 이것은 원래 18세기의 大컬렉터로 이름났던 김광국(金光國, 호는 석농(石農) 1727-1797)이 모아놓은 화첩 속에 들어 있던 그림이다. 김광국은 대대로 어의를 지낸 의관 집안 출신으로 중국무역에 관여하면서 큰 부를 쌓았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그림들을 화첩으로 묶어 관리했는데 이 화첩에는 일본의 우키요에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탈리아의 동판화 작품까지 들어있어 후대인을 놀라게 했다. 더욱이 그는 수집한 화가들에 대해 자신의 평을 적어놓아 수집이 어디까지나 자신의 감식안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성재후의 이 그림에 대해서도 그는 한 마디를 적어놓았다. 

일전에 부채 그림에서 성재후 그림을 보았는데 소략하면서도 아취가 있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그림 하나를 구하게 돼 화원속첩에 넣는다. 
曾於便面見成載厚畵, 愛其疎雅. 爲求一紙 置諸畵苑續帖中. 

대컬렉터 김광국이 평한 성재후 그림은 약간 거친 가운데 우아한 맛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모았던 이 그림은 현재 선문대학교 박물관에 전한다. 그림은 달빛이 교교한 가운데 두 은자가 이별하는 장면을 그렸다. 달빛에 비친 하늘과 산 그리고 집 앞의 개울은 원래 은빛이었을 것을 그림 속에서는 푸른빛으로 바뀌어 있다. 바자울이 둘러쳐진 초가집은 아담하고 뒤로는 무성하게 보이는 키 큰 대나무는 운치 있는 은자의 집을 연상케 한다. 집 뒤로 보이는 산은 옅은 먹을 슬쩍 칠하는 것만으로 어둠에 휩싸인 어슴푸레한 모습을 그려냈다. 그러나 산자락아래에 보는 개울이나 집가의 개울가에 작은 나무다리에는 성긴 가운데에도 시선을 액센트가 담겨 있다.
그림 속 한 노인은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있어 서로 헤어지는 장면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림 위쪽의 시 구절은 이별의 내용에 대해 더욱 분명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시구는 ‘白沙翠竹江村暮 相送柴門月色新(백사취죽강촌모 상송사문월색신)’이다. 내용은 ‘흰 모래에 푸른 대나무 그림자 드리우는 강촌의 저녁 무렵 객을 배웅하는 사립문에 달빛은 더욱 새로워라’이다. 이 시는 두보가 특히 잘 지었던 칠언율시 중의 한 구절로 유명한 「남린(南隣)」의 마지막 구절이다. 
평생 표박의 일생을 보낸 두보에게 성도(成都) 시절은 가장 안정되고 평화로웠던 시대였다. 이때 그는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완화계(莞花溪)라는 개울가에 작은 집을 짓고 살면서 그곳을 완화초당이라고 부르며 동생 가족까지 불러 단란하고 행복한 한 시절을 보냈다. 이 시는 그때 지은 것으로 시 구절에는 곳곳에 평온한 삶이 만들어내는 작은 행복의 장면들이 가득하다. 

錦裡先生烏角巾 園收芋栗未全貧 금리선생오각건 원수저율미전빈 
慣看賓客兒童喜 得食階除鳥雀馴 관간빈객아동희 득식계여조작순
秋水纔深四五尺 野航恰受兩三人 추수절심사오척 야항흡수양삼인
白沙翠竹江村暮 相送柴門月色新 백사취죽강촌모 상송시문월색신  

완화계의 금리선생은 새까만 오각건   
뜰에 토란 밤 넉낙하니 빈한한 것만은 아니네 
언제나 찾아오는 손님에 아이들 기뻐하고 
작은 새들 놀라지 않고 섬돌에서 모이를 쪼네 
가을 물 깊이는 겨우 사오척
두셋 타는 작은 배 떠있네  
백사 취죽의 강촌의 저녁 
길손 보내는 사립문 달빛은 새롭기만 하네 
          
시속의 금리 선생은 두보의 완화초당의 이웃으로 은자 같이 안분자족하면 살던 사람이다. 오각검은 검은 각건을 말하며 각건이란 사방이 각진 두건으로 흔히 은자가 쓰는 것이었다. 야항은 농가에서 쓰는 작은 배를 가리킨다. 
두보는 어느 날 금리선생 집을 찾았다가 평온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돌아오면서 이 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때는 760년. 두보 나이 49살이었다. 나이 들면 더욱 새로워지는 게 친구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나이 들어 만나는 푸근한 옛 친구는 매일처럼 만나지만 매일같이 서로 헤어지기가 아쉬울 때가 있다. 두보시의 마지막 구절은 바로 이런 마음을 시로 읊은 것으로 예부터 매우 유명했다. 
그림 속에는 저녁 무렵보다 훨씬 지난 듯 달이 높이 휘영청 떠있다. 무대가 가을인 그대로 집앞의 큰 활엽수는 누런 잎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뒤를 돌아보는 장면은 바로 ‘사립문 위를 비추는 달빛이 새롭기만 하다’는 심정 그대로이다. 


작자미상 <시문신월도(柴門新月圖)>(부분) 지본수묵 129.4x31cm 후지타(藤田)미술관   


우아한 남자들의 세계를 상징하는 한 장면 같은 달밤의 이별은 예부터 그림의 소재가 돼왔다.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시대에 벌써 이 소재로 그린 수묵화가 있다. 일본 국보인 <시문신월도(柴門新月圖)>는 1405년에 그려졌다. 이 그림은 특이한 형식을 띠고 있는데 전체의 1/3 부분에 그림이 있고 그 위쪽에는 여러 사람의 시가 가득 적혀있다. 이런 형식을 특히 일본에서는 시화축(詩畵軸)이라고 부르는데 이 그림이 바로 이와 같은 시화축 형식으로는 가장 앞서 그림이란 점에서 국보로 지정돼 있다. 그림의 작자는 알 수 없지만 13명의 시를 적고 있다. 시의 작자는 모두 당시 교토의 유명 사찰인 난젠지(南禪寺) 절과 관련이 깊은 스님들이다. 서문은 당시 교토 난젠지(南禪寺)의 주지를 지낸 교쿠엔 본포(玉腕梵芳 1348-1420년 이후)가 지었는데 여기에 ‘두소릉의 시에 백사취죽강촌모 상송시문월색신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그림인즉 실제 경체를 본 듯이 그려냈다(杜少陵詩, 白沙翠竹江村暮, 相送柴門月色新, 乃描出實景可觀)’라고 돼 있다. 즉 이 그림 역시 두보 「남린」의 한 구절을 가지고 그린 것이다. 
19세기 조선의 문인화가가 그보다 300년 전에 그려진 일본의 수묵화를 봤을 리는 없다. 그러나 같은 시구를 가지고 그린 두 그림 사이에는 한국과 일본이란 차이 외에도 승려 세계의 취향과 문인 세계의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가를 말해주기도 한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06.2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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