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파리가 사랑한 동양미술관
  • 최열의 그림읽기
  • 영화 속 미술관
  • 조은정의 세계미술관 산책
  • 미술사 속 숨은 이야기
  • 경성미술지도-1930년대
  • 김영복의 서예이야기: 조선의 글씨
  • 한국미술 명작스크랩
  • 도전! C여사의 한국미술 책읽기
  • 왕릉을 찾아서
  • 시의도-시와 그림
  • 근대의 고미술품 수장가
타이틀
  • [한글날 특집] 16세기, 전쟁 중에 임금이 한글로 백성에게 내린 교서
  • 1292      


선조국문교서, 1593년, 75x48.8cm, 보물 951호, 개인 소장.


1593년 선조 임금이 백성들에게 내린 교지로 한글로 쓰여져 있다. 임진왜란 중 선조가 의주에 피난 가 있을 때인데, 한글 글씨를 쓴 사람은 명확치 않다. ‘유서지보(諭書之寶)’라는 어보가 세 곳에 찍혀 있다.

당시 임금은 의주로 피난 가 있었지만 의병의 봉기와 명나라 군대의 지원으로 평양·경성 등을 회복한 상태였고, 왜군은 남하하여 부산·동래 등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조선 백성들 중에는 왜군의 포로가 되어 그들에게 협조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백성을 회유하여 왜군을 돕지 말고 돌아오도록 백성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국문으로 교서를 내린 것이다.

당시 김해 수성장(金海守城將)인 권탁(權卓)이 이를 가지고 적진에 잠입, 왜군 수십 명을 죽이고 포로가 된 우리 동포 100여 명을 구출했다고 한다. 이 교서는 권탁의 후손에게 전해져 오다가 1854년(철종 5) 김해시 흥동에 어서각(御書閣)이 건립되면서 그곳에 보관되었다. 


'ᄇᆡᆨ셩의게 니ᄅᆞᄂᆞᆫ 글이라(백성에게 이르는 글이라)로 시작되며 10항에 걸쳐 내용이 적혀 있다. 내용인즉슨, 부득이 왜인에게 잡혀간 백성들의 죄는 묻지 않음은 물론, 왜군을 잡아오는 자, 왜군의 동태를 자세히 파악해오는 자, 포로가 된 조선 백성들을 많이 데리고 나온 자는 양천(良賤)을 구별하지 않고 벼슬을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이어서 아군과 명군이 합세하여 부산·동래 등지의 왜군을 소탕하고 그 여세를 몰아 왜국에 들어가 분탕하려는 계획도 알려주면서 그 전에 서로 알려 빨리 적진에서 나오라고 당부하고 있다.


한글은 1443년 12월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되어 1446년 9월에 공개된 이후 정음, 언문, 암클, 국문, 한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져 왔다. 지금이야 전 세계에서 한글의 뛰어남에 대해 찬양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여인네들이나 쓰는 글씨로 천대받아 왔고, 근근히 이어져 온 한글 서예의 맥도 가냘프기 그지 없다. 그러나 서예 기법 측면에서 한글 서체에 관한 연구는 아직 발전의 여지가 많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글 서체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훈민정음해례본을 기본으로 한 판본체(반포체), 한자 서체를 참고한 모방체, 궁체, 잡체 등으로 나뉘며 선조교지의 서체는 반포체 말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선조 임금의 한글 글씨는 어떠했을까?
전해지고 있는 선조 임금의 글씨 중에 딸에게 쓴 편지가 있다. 1603년 12월 19일 제3옹주인 정숙옹주에게 쓴 것으로, 내용은 제5옹주인 정안옹주의 두증(痘症: 천연두)에 관한 것이다. 서울대 도서관이 소장한 『인목왕후필적』집의 첫 장에 붙어 있었는데 이 편지를 전후해서 열흘 사이에 12건의 편지가 왕래된 것이 확인된다. 반포체 후기의 서체.


선조 임금이 정숙옹주에게 쓴 편지, 1603년, 서울대도서관.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2.06.29 15:26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