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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대한 자연의 파노라마 속 인간 군상 <강산무진도>
  • 1782      

이인문(1745-?) <강산무진도> 비단에 수묵담채, 44x856.6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 가장 뛰어난 화가 중 하나로 꼽히는 이인문이 그린 8미터가 넘는 긴 두루마리 그림 강산무진도가 2019년에야 국가적 문화재(보물 제 2029호)로 공식 지정된 것은 늦은 감이 있다. 김홍도와 동갑내기 친구였던 이인문은 김홍도와 비교했을 때 조선을 대표할 만한 개성을 드러내지 못했던 탓인지 조금 밀리는 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를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것은 공평치 못하다. 진경산수를 아주 적게 그리고 풍속화는 전혀 그리지 않았다는 것,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조선스러운 그림이 아닌 치밀한 구성과 세밀한 필치 때문에 중국 화풍을 잘 소개한 기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일 뿐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이인문이라는 화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떠나 <강산무진도> 자체는 조선시대 회화의 중요한 결실 중 하나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자연과 인간 군상의 모습은 감상자를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강산무진도>는 크기 세로 44cm, 가로 856.6cm의 두루마리(횡권) 그림이다. 추사 김정희가 예전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림에 찍힌 인장들로 알 수 있다. 이후 1908년 이왕가박물관이 靑木文七이라는 일본인 거간으로부터 300원에 구입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림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흐름은 끊김 없이 자연스럽고 강약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내러티브가 우에서 좌로 장대하게 펼쳐지는데, 전체적인 주요 경물의 높낮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시대의 이점이지만 두루마리를 오른쪽은 말고 왼쪽은 펴면서 흐르듯 감상할 수는 없게 되어 이 그림의 원래 감상 방식대로 보기는 어려워졌다. 

두루마리의 첫 부분은 40cm 가량의 긴 여백이 있다. 비워진 화면에서 서서히 강산의 모습이 짙어진다.


1. 첫번째 눈에 띄는 경물은 언덕 위 다섯 그루의 나이 든 소나무. '고송유수관도인'의 그림 시작이 고송(古松)인 것은 자연스럽다. 소나무들은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언덕에 따라 리듬감 있게 배치됐다. 원경의 건물들, 아래쪽에 여행을 떠나는 두 노인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앞으로 등장할 그림 내에 다른 인물들보다 약간 크게 그려져 있다.


2. 풀어졌던 그림이 진행방향으로(왼쪽으로) 상승하는 언덕에서 다시 뭉쳤다. 이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절벽을 만나게 된다. 강 건너에도 절벽이 있어 그 앞쪽으로 돌아 나가는 강을 표현했다. 세차게 흐르는 물가 왼쪽에 지어진 건물 안쪽에 사람들이 들어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나무, 버드나무, 활엽수의 붉은 잎 등이 세밀한 필치로 표현되어 있다.


3. 이런 식으로 화면을 나눠서 감상한다면 이 장면은 강을 주제로 한 화면이 된다. 제각각의 모양과 기능을 지닌 듯한 많은 배들이 떠 있는데 크기가 달라 원근/화면의 깊이를 나타내는 효과를 준다. 오른쪽 하단에는 이인교 가마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인물 행렬이 보이고 왼쪽으로 가면서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 나무 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동자를 대동하고 이들을 찾아가는 사람, 어깨에 짐을 지고 가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들이 보인다. 


4. 강으로 열려있던 공간의 마무리 단계인 듯하다. 고깃배가 수없이 흩어진 강물이 멀리 펼쳐지고, 낚시하는 어부, 계곡 위로 높이 솟은 교각, 물가로 내려가는 돌계단 등의 디테일이 재미있다.


5. 강한 부벽준의 바위로 조용하던 그림에 강세를 주었다. 오주석 선생은 이 짙은 부벽준의 바위가 '충실공간으로 바뀌는 총돌격의 신호탄'이라고 표현했다. 역방향으로 흘러내리는 계곡물의 힘찬 물줄기의 표현도 눈에 띈다. 


6. 절벽들이 가득 들어찬 깊고 험한 산이 끝나는 절벽 높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시장인 것처럼 사람들과 짐을 실은 나귀들이 보이고, 오른쪽 아래에서 그 높은 곳으로 오르고 있는 일련의 무리들도 있다. 이 절벽 끝에 그 유명한 도르래가 보인다. 그 아래쪽에 두 그루의 소나무 뒤로 작은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도르래 맞은편의 기암괴석 절벽이 마을을 아늑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7. 봉우리들이 밀집된 험한 계곡.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뒤로 나귀타고 가는 여행자도 보인다. 왼쪽 상단에 잔도같아 보이는, 매우 좁은 길에도 여행자들이 그려져 있다.


8. 전체 그림을 이야기 구조라고 한다면 절정을 앞두고 드라마틱하게 상승하는 장면이 될 것 같다. 기괴한 골산과 비현실적으로 크고 험한, 꺾어진 암산이 화면을 가득 메우는 가운데 여기에도 구름다리를 건너고 좁은 잔도를 돌아가는 사람들이 자잘하게 꽤 많이 오가고 있다. 먼산이 흐릿하게 배경을 채우는 가운데 거세게 몰아치는 산세를 다양한 스타일의 필법으로 채우고 있다.


9. 중앙의 암산은 사람들이 뭔가 닮았다며 이름을 지어주었을 법한 요상한 모양인데, 붓질이 주변 암산과 달라 돋보이게 만들어주었다. 


10. 먼 데 몰골의 원산의 채색이 원색은 아니라도 다채로와서인지 전체적으로 다채로운 분위기의 그림으로 보인다. 마지막 풍경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성벽 위 마을, 사원인 듯 탑 형식의 건물들도 다수 보인다. 여전히 계곡 중간에 난 길에는 오가는 여행자들이 가득하다.


11. 절벽이 끝나고 낮은 산이 둘러싼 평지에 커다란 마을이 나타났다. 이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데 오히려 아스라이 안개가 자욱하고, 수많은 소나무들이 빼곡이 그려졌다. 


12. 강가 장면으로 화면의 밀도가 낮아지며 그림이 끝이 난다. 특별한 주제가 될 만한 경물은 없지만 겹으로 배치된 봉우리들이 각각 다른 채색과 밀도와 붓질로 되어 있어 균형있는 마침표를 찍었다. 가장 하단의 짙은 먹의 작은 언덕 위에 어리고 단단해 뵈는 소나무들이 눈에 띄어 시작에서 보았던 노송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 물의 흐름이 그림을 이끌어가면서 기괴하고 거친 암산 계곡의 모습, 그리고 작지만 그 틈으로 비집어 들어간 인간들의 모습이 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다. 

* 올 여름 국립중앙박물관 <신국보보물전>(2020.07.21.~2020.09.27.)의 주인공 중 하나가 될 예정이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2.08.0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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